▲ 인천 차이나타운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김명화 기자] 한국에서 제2의 삶을 살아가는 외국인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법과 제도는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이 같은 사례는 특히 교육과 행정에서 많이 발생한다. 대한민국이 세계 속으로 뻗어 나가고는 있지만 정작 세계를 끌어안지 못한다는 지적이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이에 본지는 화교 등 체류 외국인과 다문화 가정에 대한 정책의 실효성을 짚어봤다.

전학·입학 불가능, 상급학교 진학 시 어려워

한중 수교 20년을 맞아 경제‧문화적으로 양국 간 관계가 긴밀해지고 있지만 화교학교 학력 불인정, 차별적 호적법 등으로 중국 이민자인 화교들의 인권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화교학교 학력과 관련된 문제는 이미 수차례 논의돼 왔으나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마련돼 있지 않다.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조사에 따르면 2012년 5월 기준으로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144만 278명으로 전년 5월 대비 6.4% 증가했다. 이 중 중국인 체류자는 69만 6975명으로 전체 외국인 중 가장 많은 인원을 차지했다.

이와 같이 중국인 체류자가 급속히 늘고 있는 실정이지만 한국에 존재하는 화교학교는 학력 인정을 받지 못한다. 문제는 학력 인정을 받지 못하면 타 학교로 전‧입학이 불가능하고 상급학교로 진학할 때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점이다.

특히 화교학교가 한국에서 차별을 받고 있는 이유는 화교학교의 교육과정 자체를 한국에서 인정받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와 시도교육청이 요구하는 조건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일반적으로 화교학교는 대만 학제를 따라 교육과정을 운영한다. 이는 그들이 비록 한국에 거주하고 있지만 소수민족으로서 자신의 문화와 전통을 교육을 통해 이어가기 위함이다. 하지만 교과부에서는 대만 학제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교과부는 지난 2003년 외국인 학력 인정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 내용에 따르면 외국인학교는 한국어‧한국문화‧역사를 구분해 주당 각 1시간 이상, 또는 통합해 주당 2시간 이상(연간 102시간)의 교육과정을 운영해야 학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

이에 대해 화교학교 관계자는 “실질적으로 소학교(초등학교)에서는 교과부가 요구하는 시수를 채우기 어렵다. 하지만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는 학생이 원하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현재 한국 교사를 채용해 한국어‧한국문화‧역사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교육감이 손 들어줘야 비로소 통과

문제는 교과부가 요구한 사항을 모두 준수했음에도 불구하고 학력 인정을 거부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수원화교학교의 경우가 이 같은 사례다. 지난 2010년 수원화교학교는 교과부가 요구한 사항을 준수한 후, 해당교육청과 교육인적자원부 등을 찾아가 학력을 인정해 줄 것을 수차례 진정했지만 별다른 이유 없이 거절당했다.

확인 결과 2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경기도교육청은 무관심으로 일관, “협의 중이다” “수원교육지원청에 문의하라”며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하다.

이에 대해 교과부는 외국인 학교가 학력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한국어‧한국문화‧역사 교육을 연간 102시간 동안 교육하는 것 이외에도 시도교육감이 학력 인정이 가능한 학교인지 적합성 여부를 판단해 결정한다는 또 다른 이유를 덧붙였다.

결국 교과부가 요구한 사항을 모두 지킨다고 해도 각 시도교육감이 부적합하다는 쪽에 손을 들면 허가가 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하지만 교육 전문가들은 현재 각 시도교육감의 판단 기준이 얼마나 명확하며 객관적인가에 관해 의문을 제기한다.

◆ 박정희 정권, 심각한 경제적 차별과 법적 제한 가해

사실 화교는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 때 한국에 파견된 청나라 군인을 따라 상인 40여 명이 입국하면서 이주하기 시작했다. 당시 청나라는 조선에 통상조약을 강요해 화교 유입의 길을 터놓았고, 이에 따라 인천공원 부지에 화교 거주지가 본격적으로 형성된다.

한국에 화교학교가 들어선 시기는 청일전쟁 이후다. 한국 사회의 근대화에 따라 현대적 학교를 세워 새로운 교육을 추진하자는 논의가 나타나자, 이에 따라 인천에 거주하는 화교들이 자금을 모아 1902년 한국 최초의 화교학교인 인천화교소학교를 창립하게 된다.

이후 1909년 한성화교소학교, 1910년 부산화교소학교 등이 차례로 문을 연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서 화교교육은 쇠퇴의 길을 걷는다.

특히 박정희 전 대통령이 화교에게 심각한 경제적 차별과 법적 제한을 가하자 많은 화교들은 한국을 떠나게 된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토지 취득 및 관리에 관한 법, 중국집 쌀밥 판매 금지령, 서울 도심 재개발 사업 등을 제정해 그나마 요식업으로 경제활동을 이어가던 화교들의 삶의 터를 빼앗았다.

게다가 ‘외국인학교’를 ‘외국인단체’로 바꿔 등록해 한국인을 학생으로 받을 수 없도록 만들어 놓기도 했다. 이 정책으로 인해 한성화교소학교에서는 256명의 한국인 학생이 퇴학을 당했다.

이러한 불합리한 제도를 수정하기 위해 지난 1999년 한국 정부는 외국인 교육제도를 개정해 화교학교의 학력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했지만 화교들은 여전히 인종 차별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실정에 대해 국립민속박물관 강경표 학예연구사는 “화교에 관한 연구를 한 결과, 화교가 한국 사회에 잘 적응해 나가야 다른 다문화도 이들과 같이 잘 적응할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며 “그 이유는 화교가 가장 오래된 다문화의 견본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화교학교와 교과부가 서로의 주장만 내세우기보다 교과과정을 융통성 있게 조율해 나가는 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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