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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개정됐지만 아직 갈길 멀어… 보안책 필요

[천지일보=박수란 기자] 지난해 또 한 번 우리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일명 ‘도가니’ 사건. 작년 9월 장애인학교 교직원의 장애인 성폭행사건을 다룬 영화 <도가니>가 개봉된 후 그 파장은 일파만파로 커져 실제 사건이 벌어졌던 인화학교가 폐쇄되고, 장애인 성폭력 관련법들이 개정되는 등 큰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장애인 여성 성폭력에 대한 대책이 미비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 ‘도가니법’ 이후 여전히 솜방망이 처벌?

도가니 사건을 계기로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강화된 법안이 마련됐다. 2011년 11월 17일부터 시행된 일명 도가니법인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에 따르면 장애를 가진 여성에 대한 강간, 준강간 등 성폭행범죄의 공소시효가 폐지됐다. 장애인 보호·교육 시설의 장(長)이나 직원이 장애인을 성폭행하면 가중처벌한다. 또 7년, 10년 이상의 유기징역 외에 최고형도 무기징역까지 처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이렇게 처벌이 강화됐지만, 수사기관이나 법원 등은 성범죄에 대해 여전히 관대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5월 대전에서 지적장애를 앓는 여중생을 고교생 16명이 잇따라 성폭행한 ‘대전판 도가니 사건’. 당시 대전 지역 4개 고교 2년생 16명은 채팅을 통해 만난 지적장애 3급 여중 2학년생을 한 달간에 걸쳐 성폭행했다.

가해자들은 사건 발생 이후 대전지법 형사부에 배정됐으나, 법원은 피고인들이 청소년이라는 이유 등으로 사건을 가정지원 소년부로 송치했다. 이 과정에서 재판부는 가해 학생들이 수능 시험을 앞두고 있어 수능과 정시모집이 끝나는 이후로 선고를 연기해주기도 했다.

작년 12월 27일 대전법원가정지원은 이들에게 소년보호처분을 내리는 것에 그쳤다. 이에 55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지적장애여성 성폭력사건 엄정수사 처벌촉구 공동대책위원회’는 솜방망이 처벌을 주장하며, 이들을 형사법원으로 송치하라고 요구하는 등의 진정서를 냈지만 소용이 없었다.

서울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 관계자는 “이런 사례뿐만 아니라 법 개정 이후 성폭력 사건에 대한 법집행 결과를 보면, 가해자에 대한 양형만 높아졌지 실제로 법적용은 잘 이뤄지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여성장애인의 신체적·정신적 장애로 인한 피해 특성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고려 없이 여전히 수사기관과 법원은 가해자들에 대해 관대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 관계자는 성폭력범죄의 표적이 되는 장애인 중 70~80%가 지적장애인이 차지하는데, 이 경우 겉으론 멀쩡하고 말도 잘 해서 수사기관이 지적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판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해가 수반되려면 사건을 담당하는 수사기관 등이 장애인을 많이 만나봐야 특성을 파악할 수 있다”며 경험·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 “고립된 시설 아닌 지역사회 서비스 기반 필요”

또 하나의 변화는 ‘공익이사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이 오는 8월 5일부터 시행된다는 것이다. 사회복지사업법은 법인 시설 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으로, 법인 이사 증원·외부 추천이사 도입, 법인 감사 자격 강화, 인권 침해 시 법인 취소·시설 폐쇄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을 지역사회와 단절시켜 고립된 시설에서 단체생활을 하도록 하는 것 자체가 변화하지 않고는 제2, 3의 도가니가 계속 발생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일고 있다.

여준민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상임활동가는 “시설이 아니더라도 지역사회에 서비스 기반이 있어 언제든 다른 곳에 살 수 있도록 주거가 마련돼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성폭행 등 인권침해를 당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지만, 시설을 나가면 갈 곳이 없어서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시설 운영자와 장애인의 권력관계가 바뀌지 않는 한 이 같은 일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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