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규의사기념사업회 강인섭 회장 ⓒ천지일보(뉴스천지)

“청년의 정신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교육은 국가의 백년대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아

[천지일보=김지윤 기자] “강우규 의사의 행적을 잘 아는 사람은 드물어요. 젊은이들에겐 그 이름마저도 생소할 겁니다. 강 의사는 일제의 문화통치를 통렬하게 비판했습니다. 그리고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선 청년들이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자주독립을 꾀할 수 있는 건 교육밖에 없기 때문이죠.”

지난 2009년 강인섭(76) 전 의원이 강우규의사기념사업회장으로 선임됐다. 진주 강씨라는 것 외엔 강우규 의사와 이렇다 할 관계는 아니지만 오직 강 의사의 업적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광화문에 위치한 사업회에서 강 회장을 만났다.

―강우규 의사는 윤봉길, 안중근, 이봉창 의사처럼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분이다.

한국 독립을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 안중근, 윤봉길, 강우규를 3대 의사라고 부른다.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고, 독립운동에 미친 영향을 보고 정한 것 같다. 세 열사 가운데 강 의사 정보가 가장 덜 알려졌다.

―독립운동가들 가운데 강 의사가 눈에 띄는 점은 고령이라는 점인데.

맞다. 노인이라는 점이 독특하다. 게다가 안중근, 윤봉길 의사는 외국에서 의거했지만 강 의사는 국내 서울 한복판에서 의거해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의열투쟁의 시초라고 볼 수 있다. 또한 3.1운동이 비폭력적이고 평화적으로 항쟁운동을 펼쳤다면, 강 의사는 치열하게 강력하게 투쟁했다. 그렇다고 단순히 행동만 앞선 운동가는 아니었다. 그는 사상가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바로 ‘청년 교육’을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장사로 번 돈으로 학교를 건립하는 등 교육 진흥에 힘썼다. 이처럼 강 의사는 조국과 그 미래에 몸과 마음을 던졌다. 가족을 뒤로한 채 말이다.

―그 시대의 진정한 어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오늘날 이 시대엔 강 의사처럼 학생이나 젊은 층에 본보기가 될 만한 어른을 찾는 게 쉽지 않다. 덧붙여 강 의사를 계몽가, 산 교육인으로 볼 수 있겠는가.

행동 지표로 삼을 만한 어른이 없다는 말인가. 일단 그때와 지금의 상황이 많이 다르지 않나. 하지만 큰 틀에서 봤을 때 ‘교육’이라는 면에선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겠다. 강 의사가 청년들의 장래를 굉장히 걱정했다. 아들 중건에게 남긴 유언에도 청년의 미래를 걱정하는 구절이 있다. ‘내가 자나 깨나 잊을 수 없는 것은 우리 청년들의 교육이다. 내가 죽어서 청년들의 가슴에 조그마한 충격이라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나의 소원하는 터이다. 언제든지 눈을 감으면 쾌활하고 용감히 살려는 전국 방방곡곡의 청년들이 눈앞에 선하다’고 말했다.

요즘 일어나는 왕따, 학교폭력 등은 개인적인 문제에서 출발하지만 1919년 당시 개인보다 민족적인 문제가 시급했다. 일제가 문화정책을 펼치자 강 의사는 청년들이 민족혼을 잃을까 걱정했다. 그 시대와 오늘날 문제의 본질은 다르지만 청년이 역시 희망이고 이들의 정신이 살아야 한다는 점에선 같은 선상에 있다고 본다.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와 목표가 올바르게 설정돼 있는지 되돌아 봐야 한다. 요즘 교육은 이기적인 사람으로 만들고 있다. 남을 짓밟고라도 자기만 목표를 달성하면 된다는 식의 교육환경에서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잘 자라겠는가. 모두의 반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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