왈우 강우규 의사 생전 모습 ⓒ천지일보(뉴스천지)

◆오랜 준비, 그 안에 깃든 정신

강 의사의 의거에서 또 하나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젊은이 같은 혈기로 순간적인 충동에 의해 행동을 개시한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준비해 왔다는 점이다. 청년교육에 힘써 왔다는 점만 봐도 알 수 있지만, 이보다도 그가 평소 주장한 ‘동양평화론’을 통해서도 가늠할 수 있다. 10년 전 안중근 의사가 동양평화를 저해한다는 이유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다고 밝혔듯이, 강 의사 역시 사이토 총독을 죽이려 했던 이유도 동양평화론에 바탕을 뒀기 때문이었다.

1920년 4월, 강 의사는 법정 최후진술에서 신임 총독을 없애려는 목적이 ‘동화평화’를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사이토 마코토를 “저의 나라의 황명을 거역한 역적이요, 동양평화를 깨뜨리는 사람”이라고 지칭하면서 동양3국의 평화와 조국을 위해 의거를 한 것이라고 당당하게 그 정당성을 말했다.

주목할 점은 안 의사가 천주교에 바탕을 둔 동양평화론을 내세운 것과 같이 강 의사 역시 자신이 신봉하고 있던 기독교 교리를 들어서 종교적인 면으로도 사이토의 부임을 전면 비판했다는 부분이다.

기독교 장로교 교인이었던 그는 신임 총독 부임이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늘의 계명을 어긴 것이라며 일제의 잘잘못을 가려냈다. 곧 사이토의 내임은 하늘의 뜻에 어긋나며, 민족자결주의와 인도정의로 성립한 평화회의를 어지럽힌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를 보더라도 그가 왜 사이토를 암살 대상으로 삼았는지, 또한 즉흥적으로 움직인 것이 아닌 주도면밀한 준비 과정을 통해 의거에 나섰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또 그는 동료들이 서울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붙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해외에 있다가 친히 서울로 잠입해 의거에 박차를 가했다. 그의 의협심까지 느껴지는 대목이다.

행적에 대해선 의견 분분

3.1운동 이후 일제의 강압적인 탄압에 의해 애국운동의 열기가 잠시 시들 즈음 노구의 몸으로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의거를 펼친 강 의사의 행동은 조선 민중의 심지(心志)에 ‘애국심’을 다시금 새겨주는 촉매제가 됐다. 특히 조선 청년 학생들에게 큰 감동을 줬다. 1920년 1월 14일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 한민학교에서는 강 의사의 의거를 연극으로 공연했는데 이를 본 많은 학생이 감동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한편 서울역 의거를 바탕으로 한 강 의사의 행적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의견이 분분하다. 이를 테면 강 의사가 폭탄을 투척한 뒤 도망쳤다는 설과 도망치지 않았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사건 이후 일제의 끈질긴 수사 끝에 체포됐다는 설과 강 의사가 직접 경찰서에 찾아가 자수했다는 설이 있어 정확한 사실은 모른다.

특히 강 의사의 의거에 주목할 것이 하나 있는데, 이는 폭탄으로는 최초로 시도한 의거라는 점이다. 김상구 역사복원국민운동본부 집행위원은 “이전까지는 폭탄을 구하기 어려워 권총을 사용한 의거 중심이었다. 강 의사가 의거를 일으킬 당시 상황도 마찬가지로 폭탄을 구하기 어려웠던 시기였다”며 “강 의사가 어떤 경로를 통해 폭탄을 얻게 됐는지는 아직까지도 수수께끼”라고 말해 그의 행적은 아직도 일부가 베일에 감춰져있다.

또 일각에서는 폭탄을 던진 이는 다른 청년이었고, 강 의사가 이 청년을 대신해서 자수해 투옥되었다는 설도 있다. 일부 의견이 분분한 그의 행적 중에서 의거 뒤에 체포돼 붙잡힌 것이 아니라 자수했다는 이유를 뒷받침하기 위한 추측이다. 강 의사가 특별한 이유 없이 자수했다는 점이 의문으로 남기 때문이라는 것.

정확한 사실은 알려진 바 없지만 혹 그게 사실이라 할지라도 나이든 자신보다 젊은 청년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더 필요한 존재라는 생각을 한 건 아니었을까. 그렇기에 자신이 희생한 것으로 여겨진다. 설이야 어떻든 간에 그가 조국의 독립과 청년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동상에는 강 의사의 이름과 순국 직전에 남긴 유시만 있을 뿐 업적에 대한 소개가 전혀 없다. 그의 정신이 느껴지는 간단한 행적이라도 있다면 강 의사의 동상이 왜 이 자리에 있는지 의미까지 전달할 수 있건마는 전혀 없으니 아쉬울 따름이다. 동상이 세워졌어도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쉽게 지나칠 수 밖에 없다.

거사를 치른 뒤 서대문형무소에서 장렬하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왈우 강유규 선생. 그가 오늘을 살아가는 청년들에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청년이여 조국의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자신의 열정을 바칠 줄 알아야 한다. 옳고 그름의 기준을 바로 세우고, 마음에는 사랑을 담고, 머리로는 지혜를 구해 이 위기에서 조국과 민족을 구해내라! 조국의 미래는 청년의 의식이 좌우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 서울역광장에 서 있는 강우규 의사 동상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