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유학생 결집 민족의식 고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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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지광 12호 (1917년) 1914년 4월 재동경조선유학생학우회의 기관지로 창간되어, 문예·학술·교육·사회·경제 등 다양한 분야의 글을 실었다. (제공: 독립기념관) ⓒ천지일보 2022.09.30

[천지일보=박주환 기자] 독립기념관(관장 한시준)이 국가보훈처, 광복회와 공동으로 재일유학생을 결집하고 민족의식을 고취한 이옥·유원우 선생을 2022년 10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다음과 같이 개최한다. 

전시회는 10월 한달간(1일~31일) 독립기념관 야외 특별기획전시장(제5·6관 통로)에서 ‘학지광 12호’ 등 9점을 전시한다.

일제강점기 고등교육의 기회가 흔치 않았던 한국인들은 배움에 대한 열망을 품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대조선인일본유학생친목회가 1895년에 설립된 이후 다양한 유학생 단체가 생겨났으나, 1910년 강제병합에 저항하며 다수의 유학생이 한국으로 돌아가면서 활동이 정체됐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1912년 재동경조선유학생학우회(在東京朝鮮留學生學友會)가 출신 지방별 유학생 친목회의 연합체로 설립돼 동경지역 유학생을 망라하는 대표조직으로 성장했다. 

기관지 학지광(學之光) 발행, 운동회·강연회·웅변회 개최 등의 활동을 통해 재일한인을 결집시키는 구심점이 됐다. 특히 1919년에는 2.8독립선언을 주도해 3.1운동의 기폭제를 마련했다. 1931년 2월 스스로 해체를 선언할 때까지 유학생 단체를 넘어 독립운동단체로서 일본 지역에서 활발히 활동했고, 올해로 설립 110주년을 맞이했다.

이옥은 1895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 이후 경북 안동 지역의 유력가 및 학교, 종교 등을 조사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보고하는 조사원으로 활동했다. 1920년 일본 와세다대학 정치경제과에 입학하였고 이듬해 재동경조선유학생학우회의 서무부장과 총무로 활동했다.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에는 유학생들의 피해상황을 조사·지원하기 위해 서울에 꾸려진 동경지방이재조선인구제회(東京地方罹災朝鮮人救濟會) 상무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유학생 조직 재건을 위해 힘썼다. 일제는 동경지역 독립운동을 주도하는 인물 중 하나로 이옥을 지목, 요시찰인물 ‘을호’로 지정하고 감시와 경계를 계속했다. 1924년 대학 졸업 후에는 국내로 돌아와 시대일보 이사, 신간회 간사 등으로 활동했다. 정부는 이옥의 공훈을 기려 2009년 애국장을 추서했다.

유원우는 1901년 경상북도 상주에서 태어났다. 1927년 일본 와세다대학 정치경제과 재학 중 재동경조선인단체협의회 실행위원, 신간회 동경지회 초대총무간사로 선임되어 재일 독립운동단체의 통합을 위해 노력했다. 

당시 동경지역에는 재동경조선유학생학우회를 비롯해 노동, 청년, 여성 등 다양한 분야의 한인단체가 있었는데, 이 단체들의 연합체로 재동경조선인단체협의회가 탄생했고 이를 바탕으로 신간회 동경지회가 조직될 수 있었다. 1929년에는 학우회 대표로 피선돼 일본 전국에 신간회 조직을 확대하려다가 일제에 붙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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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회 동경지회 성명서(1928년) 일제에 대항해 치안유지법 철폐,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등을 요구하는 성명서이다. (제공: 독립기념관) ⓒ천지일보 2022.09.30

한편 유원우는 농촌 지역의 개선을 위한 협동조합 설립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1927년 유학생들이 조직한 협동조합운동사의 재무부 위원을 맡았고, 협동조합의 내용을 알리는 국내 순회강연에 참여했다. 정부는 유원우의 공훈을 기려 1990년 애족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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