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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 화장실에서 20대 동료 여성 역무원을 살해한 전주환(31)이 21일 오전 서울 중구 남대문경찰서에서 출감된 뒤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전주환은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특가법) 보복살인 혐의로 검찰에 구속 송치됐다.

‘스토킹처벌법’ 신고 2만여건

법원, 구속영장 33% 기각처리

경찰 구속수사 220건에 불과

 

재신고의 80% 현장조치 종결

위반사례 중 94% 불구속송치

“보호명령·조건석방 도입해야”

[천지일보=최혜인 기자] “한 민원인이 애인이 있는지 묻고 같이 식사하자거나 퇴근 시간이 언제인지 계속 묻습니다. 너무 괴로워 관리자에게 알리고 부서를 변경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연락이 오더라고요. 무슨 일을 당할까 너무 두려운데 주변 동료들은 ‘좋아해 그러는 거’라면서 아무 일이 아닌 듯이 말해 정말 힘듭니다.”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은 다른 젠더폭력과 같이 원치 않는 구애와 스토킹에서 시작됐다. 젠더폭력은 상대 성(性)의 의사를 무시하고 신체적·정신적·사회적 자유를 구속하는 것으로 자신의 욕구가 수용되지 않은 것에 대해 약자에게 행하는 분노에 기인한다. 그러나 주변에서는 소개된 사례처럼 ‘좋아해서 그래’라고 2차 가해를 하며 피해자를 더욱 고립시키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 결과 강압적 구애와 악의적 추문 유포, 불법촬영 등 스토킹에 이어 일터 내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처럼 세상에 드러나지 않더라도 대한민국의 많은 여성들은 일상화된 ‘직장 내 젠더폭력’을 경험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여수진 노무사는 “직장에서 상사나 동료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백할 수는 있지만 고백을 거절하면 거기서 멈춰야 한다”며 “그런데 직장에서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연애를 강요하고 정규직 채용을 미끼로 괴롭히고 악의적으로 소문을 퍼뜨린다. 직장 상사가 가해자인 경우 퇴사를 강요하고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보복사례도 나온다”고 전했다.

이어 “신당역 살인사건은 젠더폭력이 직장 내 안전에 큰 위협이 된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스토킹처벌법이 발의 후 시행까지 22년이나 걸린 것은 우리 사회와 직장이 젠더폭력의 위험을 과소평가하고 방관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울교통공사는 가해자가 스토킹처벌법으로 기소되고 9년이나 구형받은 것을 알면서도 법원의 판결만을 기다리며 사내망 접속을 차단하지 않아 사건의 빌미를 제공했다”고 지적했다.

실제 이번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에서도 일방적인 전화, 불법 촬영, 협박 등 300여 차례 이상 스토킹을 당하면서 강력범죄 전조가 이어졌지만, 구속영장 기각 이후로 가해자 분리 등 피해자 안전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0월 법원은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을 ‘증거인멸·도주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기각한 바 있다. 영장 기각 이후 올해 2월까지 가해자 전주환(31)은 합의를 요구하는 등 피해자 A(28)씨에게 20여 차례 문자를 보내며 스토킹을 이어갔다.

그러나 첫 고소가 접수된 이후 한달간 112 시스템상 안전조치 대상자로 등록한 게 전부였다. 경찰 측은 “한달간 별 징후가 없었고 피해자가 기한 연장을 원치 않아 안전조치를 해제했다”고 해명했다. 현행 스토킹처벌법은 피해자가 구체적으로 밝힌 의사에 반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고 규정해놨다. 이 때문에 가해자의 보복이 두려운 피해자들이 처벌을 원치 않을 시(반의사 불벌죄) 스토킹범을 기소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이는 초기에 수사기관이 개입해 피해자를 보호하는 데 장애가 되고, 이번처럼 가해자가 합의를 목적으로 피해자에게 2차 스토킹범죄나 피해자에게 위해를 가하는 보복범죄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영장 기각 이후 전씨가 범행을 저지르기 전 A씨 옛집에 4차례나 접근했던 것을 두고 ‘피해자를 살릴 4번의 기회를 사법당국이 놓쳤다’며 허술한 신변보호부터 재판 관행까지 전방위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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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남승우 기자] 17일 오전 ‘역무원 스토킹 살인사건’이 발생한 서울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 앞에 마련된 추모공간에서 한 시민이 추모 문구를 보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천지일보 2022.09.17

◆범죄 증가해도 처벌은 미온적

이처럼 스토킹 범죄는 매년 증가하는데 처벌은 미온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실제 경찰청에 따르면 경찰에 접수된 스토킹 신고 건수는 지난해 10월 스토킹 처벌법이 시행된 후 총 2만 2721건에 달한다. 이는 스토킹 처벌법 시행 전 3년간 신고 건수를 모두 합친 1만 8809건보다 큰 규모다. 범죄피해자 안전조치(신변보호)를 받던 스토킹 피해자가 스마트워치·112신고·고소 등을 통해 재신고한 건수는 지난해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총 7772건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이 중 경찰의 가해자 입건 수는 1558건에 그친 데다 구속수사는 221건으로 단 2.7% 수준에 불과했다. 반면 스토킹 피해자가 재신고한 건에 대해서는 80%가 현장 조치로 대부분 종결됐다. 현장 조치는 경찰 현장 도착 시 이미 떠났거나 피해자 안전 확인 후 종결해 입건에 이르지 않고 현장에서 마무리한 경우다. 위반사례에 대해 경찰이 검찰로 송치한 건수는 총 4016건으로 확인됐다. 구속 송치된 건수는 단 238건에 불과했고 불구속송치가 94%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지난해 10월부터 지난달까지 스토킹 범죄 구속영장 377건 중 32.6%인 123건이 법원으로부터 기각된 것으로 나타났다. 성폭력 범죄 구속영장 기각률(17.1%)의 2배에 달한다. 성폭력 범죄와 관련된 구속영장은 지난 2019년부터 올해 8월까지 총 6695건 신청됐고 그중 5511건 발부, 17.7%인 1184건이 기각됐다. 성폭력 피의자는 82.3%가 구속되는데 스토킹 피의자는 67%만 구속된 것이다. 피해자가 처벌 의사를 포기해 처벌받지 않는 경우도 빈번하다. 일례로 광주에서만 해도 지난해 14건과 올해 43건이 처벌 의사 포기로 사건 처리가 무산된 바 있다.

여 노무사는 “젠더폭력은 구조적 불평등에서 기인하는 문제다. 한 명의 여성이 극단적 젠더폭력으로 희생되기까지 수많은 여성들이 겪는 일상의 크고 작은 젠더 폭력이 그 배경에 있다”며 “일터가 젠더폭력에서 결코 안전한 공간이 아니라는 사실이 증명된 만큼 이제부터라도 직장 내 불평등과 조직문화 개선 등 구조적 문제에 대한 대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종엽 대한변호사협회장은 “법원이 스토킹 범죄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할 땐 가해자의 활동 반경을 제한하고 위치추적 전자장치를 부착하는 등 공권력의 선제적 개입과 제한조치를 감수하도록 하는 ‘조건부 석방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피력했다. 그러면서 “피해자가 수사기관을 거치지 않고도 법원에 직접 신청해 보호받을 수 있도록 강화된 ‘피해자 보호명령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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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남승우 기자] 17일 오전 ‘역무원 스토킹 살인사건’이 발생한 서울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 앞에 마련된 추모공간에 시민들의 추모 메시지가 적힌 포스트잇이 가득 붙어 있다. ⓒ천지일보 2022.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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