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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남승우 기자] 17일 오전 ‘역무원 스토킹 살인사건’이 발생한 서울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 앞에 마련된 추모공간에서 한 시민이 추모 문구를 보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천지일보 2022.09.17

서울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동료 마련 추모 공간에 ‘발길’

스토킹범죄 처벌법 개정 촉구

 

계획적 살인 정황 속속 확인돼

살인혐의→보복살인혐의 변경

 

서울 지하철 성범죄 970여건

피해 1285명 중 1113명 여성

 

‘여성혐오 범죄 아니다’ 논란

“망언한 여가부장관 사퇴하라”

 

경검 스토킹 대응 협의체 신설

“수사 스토킹 사건 ‘전수조사’”

[천지일보=최혜인·홍수영·홍보영 기자, 김한솔 수습기자] 최근 서울지하철 신당역 화장실을 순찰 중이던 서울교통공사 여성 역무원 A(28)씨가 평소 스토킹하던 직장 동료인 남성 전모(31)씨에 의해 살해당하는 사건과 관련해 시민사회 반발이 거세다. 피해자가 속한 노동조합 노동자들이 19일부터 추모행동에 돌입한 데다 시민단체와 정당도 이날 여성가족부 장관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서울교통공사노조는 이날부터 추모주간을 선포하고 근무 시 전 직원 추모 리본 패용, 사업장 내 분향소 설치, 기자회견, 시민과 함께 하는 추모제, 안전대책 수립 촉구 등 추모행동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법원은 영장실질심사를 기각했고 수사당국은 범죄가 계속되는 중에도 보호조치나 잠정조치를 시행하지 않았다”며 “지속적인 고통을 호소했던 피해자가 형사 소추된 피의자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법·제도를 이제라도 바로 잡아 줄 것을 간곡히 부탁한다”고 호소했다.

이날 전국여성연대 등 시민사회단체와 진보당·녹색당 등 진보성향 정당도 기자회견을 열고 “올해 사법처리된 20대 스토킹 피해자 1285명 중 1113명이 여성”이라며 “여성가족부 장관이 이번 사건을 두고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다’란 망언을 내뱉었는데 이 사건을 젠더폭력이 아니면 도대체 무엇으로 볼 수 있단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여성이 적대감을 표출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겨지는 한 A씨가 아닌 다른 여성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범죄였다”며 “장관은 수많은 여성들이 지금도 겪는 구조적 성차별과 성폭력이 무엇인지 제대로 공부하고 당장 망언에 대해 사과·사퇴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에 따르면 피해자 A씨와 입사 동기로 서로 알고 지낸 사이였던 전씨는 불법 촬영 영상을 유포하겠다며 A씨를 협박하고 만남을 강요한 ‘스토킹’ 혐의로 이미 두차례 고소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이 최종 변론 기일에서 전씨에 대해 징역 9년을 구형했으며, 소송과정에서 전씨는 A씨에게 합의를 지속 요구해왔다. 그리고 법원 선고가 내려지기 하루 전날인 14일 전씨는 위생모를 쓰고 1시간 10분가량 기다린 뒤 여자화장실을 순찰 중이던 A씨를 뒤따라가 살인을 저질렀다. 이처럼 불법 촬영과 스토킹에 이어진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하자 신당역 여자화장실 앞에는 오늘도 추모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추모 물결

“한 송이 꽃이 안타깝게 져버렸네요… 지켜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A씨가 사망한 14일부터 사건 당일 조촐하게나마 마련된 신당역 사건 현장에는 이날도 추모의 발길이 이어졌다. 취재진이 찾은 여자 화장실로 들어가는 한쪽에 마련된 추모 공간 벽에는 ‘시민 여러분이 참여하는 추모의 공간입니다’라는 글귀 아래 시민들이 손수 적은 추모의 글 수백개가 포스트잇으로 붙어있었다. 포스트잇에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부디 안전하고 존중받는 곳에서 행복하시기를, 같은 여자이자 노동자로서 간절히 바랍니다’ ‘가슴이 먹먹합니다. 피해자분 추모합니다’ ‘편히 영면하소서’ 등의 추모 글이 기록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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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남승우 기자] 17일 오전 ‘역무원 스토킹 살인사건’이 발생한 서울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 앞에 마련된 추모공간에 시민들의 추모 메시지가 적힌 포스트잇이 가득 붙어 있다. ⓒ천지일보 2022.09.17

그 밑에 놓인 테이블 위엔 국화꽃 여러 송이와 커피, 빵, 마카롱 등 간식류 등이 있다. 추모 공간은 피해자의 동료들이 마련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다른 역에서 퇴근하고 추모하러 왔다는 이가영(가명, 32, 여)씨는 “피해자 여성이 순회 점검하는 근무 패턴을 알고 있어 더욱 마음이 아프다”며 “피해자가 겪은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음에도 개선하지 못하고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순찰 돌 때 취객이 남녀 직원 상관없이 폭력까지 행사한다. 경찰도 2인 1조로 순회하는 데 피해자처럼 역무원은 1명이 순찰하며 호신 장비도 경관봉만 들고 간다”며 “노인에게 지팡이로 맞은 적도 있고 동료 직원들도 이미 폭행을 많이 당했다. 인력을 충원해달라고 회사에 말했지만 들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평소 신당역 지하철을 자주 이용한다는 이지형(27, 여)씨는 테이블 위에 국화꽃을 둔 뒤 “피해자가 비슷한 연령대라 이 사건에 대해 안타까움이 크다”며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면 안 된다”고 했다. 주민 이희준씨도 “2016년 강남역 화장실 사건의 그 추모와 ‘온전한 우리의 밤을 되찾자’라는 외침으로부터 벌써 6년이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법과 정부는 여성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고 지적했다.

진보당 윤희숙 상임대표도 “스토킹 범죄자에 대해 피해자로부터 격리하고 피해자 의사와 상관없이 처벌해야 한다”며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삭제하고 접근금지 명령을 위반할 시 징역형으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의사불벌죄란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처벌할 수 없는 범죄를 뜻한다.

◆가해자 강력한 처벌 촉구

“‘스토킹방지법을 보완하고 피해자 보호에 만전을 기하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말이 성난 여론을 잠재우려는 임시방편이 아님을 증명하라. 여성살해를 가능케 한 우리 사회의 성차별과 여성혐오를 국가가 용납하지 않음을 명확히 하라. ‘국가가 죽였다’는 외침에 책임을 다하라.”

이번 사건을 불법 촬영과 스토킹에 이어진 여성 혐오범죄라고 보는 시각이 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씨가 범행 직전 피해자가 살았던 옛 거주지를 찾고 심지어 A씨로 본 다른 여성을 미행하기도 하는 등 계획범죄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가해자는 직위해제가 됐지만 공사 내부망인 ‘메트로넷’을 통해 피해자의 정보에 접근하고 스토킹을 지속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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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당과 녹색당, 전국여성연대, 불꽃페미액션 회원들이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신당역 살인사건 관련 김현숙 여성가족부장관의 발언을 두고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전씨가 범행 8시간 전쯤 집 근처에서 본인 명의의 예금 1700만원을 인출하려 한 정황도 포착되면서 범행 후 도주 자금으로 사용하려 한 것은 아닌지 조사 중이다. 게다가 범행 당일 오후 3시께 정신과 병원을 찾아 진료받은 이력도 확인됐는데, 사법 처리 과정에서 심신미약을 인정받아 형량 감경 등을 주장하려는 계획이 있는 건 아니냐는 추측도 제기된다. 이처럼 최소 11일 전부터 범행을 계획한 정황이 확인됨에 따라 전씨 죄명도 살인 혐의에서 특가법상 보복살인혐의로 변경됐다. 보복살인은 살인혐의보다 최소 5년 이상 형량이 더 높아질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도 일방적인 전화, 불법촬영, 협박 등 강력범죄 전조가 이어졌지만, 지난해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된 이후로 가해자 분리 등 피해자 안전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0월 법원은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을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첫 고소가 접수된 이후 한달간 112 시스템상 안전조치 대상자로 등록한 게 전부였다. 경찰 측은 “한달간 별 징후가 없었고 피해자가 기한 연장을 원치 않아 안전조치를 해제했다”고 해명했다.

사건이 터지자 그제야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선 정부와 경찰 등에 대한 비판과 함께 스토킹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실효성 있는 대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경찰청은 신당역 스토킹 살인과 같은 범죄가 재발하지 않도록 검찰과 관련 협의체를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이날 검찰총장과 만난 뒤 “대검찰청은 경찰청과, 지역단위에서는 지청과 해당 경찰서가 협의체를 만들 것”이라며 “법원이 영장을 발부하고 잠정조치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훨씬 현실을 알고 판단하게 될 것이고 영장 발부율도 높일 수 있을 것 기대한다”고 밝혔다. 또 전국 경찰이 수사 중인 스토킹 관련 사건을 전수조사하겠다고 발표했다. 전수조사 대상은 서울 기준으로만 약 400건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원석 검찰총장도 이날 첫 출근길에서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된 지 아직 1년도 되지 않아 부족한 점이 많지만, 피해자 안전을 중심에 두고 어떻게 법률을 운용할지 경찰청과 긴밀히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여가부도 이날 “가해자의 처벌을 강화하는 스토킹처벌법 개정안이 발의돼 국회 법사위에 계류된 상태인데, 개정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법무부에 건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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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행위와 스토킹처벌법. ⓒ천지일보 2022.09.19

◆‘반의사불벌죄 폐지’ 추진

‘신당역 살인사건’으로 여성들이 다시 불안에 떠는 가운데 법무부가 스토킹처벌법의 반의사불벌죄 폐지를 신속히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스토킹 범죄’는 ‘스토킹 행위’를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하는 것을 말한다. 상대 의사나 감정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 감정표출과 집착은 공격적이고 강제적이라는 점에서 스토킹범죄 처벌이 생겨났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지하철에서 발생한 성범죄 신고 건수는 972건에 달한다. 올해 들어 7월까지 발생한 서울 지하철 성범죄도 628건으로 전체 지하철 범죄 신고의 36%에 이른다.

현행 스토킹처벌법은 소관부처에 따라 처벌법(법무부)과 피해자보호법(여성가족부)을 분리하는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 법에는 피해자가 구체적으로 밝힌 의사에 반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고 규정해놨다. 이 때문에 가해자의 보복이 두려운 피해자들이 처벌을 원치 않을 시 스토킹범을 기소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특히 반의사불벌죄로 규정돼 있다 보니 초기에 수사기관이 개입해 피해자를 보호하는 데 장애가 있고, 이번처럼 가해자가 합의를 목적으로 피해자에게 2차 스토킹범죄나 피해자에게 위해를 가하는 보복범죄를 저지르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에 법무부는 과거 반의사불벌죄 폐지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내기도 했으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부입법을 통해 반의사불벌죄 폐지를 적극 추진할 방침이다.

◆피의자는 31세 전주환 ‘신상공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화장실에서 전 동료 역무원을 살해한 피의자 신상이 공개됐다. 이번 사건의 피의자는 31세 전주환이다.

서울경찰청은 19일 오후 신상 공개 심의위원회를 열고 “사전에 계획해 공개된 장소에서 피해자를 잔인하게 살해하는 등 범죄의 중대성·잔인성이 인정되고 증거가 충분하다”며 “스토킹범죄 등 유사 범행에 대한 예방 효과와 재범 위험성 등 공공의 이익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밝혔다.

신상공개위는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특정강력범죄법)에 따라 ▲범행 수단의 잔인성 ▲국민 알권리 ▲재범 방지 및 범죄예방 등 공공이익 등을 감안해 공개 여부를 결정한다. 앞서 노원구 세모녀 살해 사건 김태현(25), 스토킹 범죄로 신변 보호를 받던 전 여자친구를 살해한 김병찬(36) 등도 지난해 신상공개위 결정에 따라 신상정보가 공개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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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공개된 ‘신당역 스토킹 살인’ 피의자 전주환(31). (제공: 서울경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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