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교통공사 등 대책 마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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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남승우 기자] 17일 오전 ‘역무원 스토킹 살인사건’이 발생한 서울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 앞에 마련된 추모공간에 시민들의 추모 메시지가 적힌 포스트잇이 가득 붙어 있다. ⓒ천지일보 2022.09.17

[천지일보=최혜인 기자] 최근 서울지하철 신당역 화장실을 순찰 중이던 서울교통공사 여성 역무원 A(28)씨가 평소 스토킹하던 직장 동료인 남성 전주환(31)씨에 의해 살해당하는 사건과 관련해 피해자가 속한 노동조합 노동자들이 추모행동에 돌입한다.

서울교통공사노조는 19일부터 추모주간을 선포하고 근무 시 전 직원 추모 리본 패용, 사업장 내 분향소 설치, 기자회견, 시민과 함께 하는 추모제, 안전대책 수립 촉구 등 추모행동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법원은 영장실질심사를 기각했고 수사당국은 범죄가 계속되는 중에도 보호조치나 잠정조치를 시행하지 않았다”며 “지속적인 고통을 호소했던 피해자가 형사 소추된 피의자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법·제도를 이제라도 바로 잡아 줄 것을 간곡히 부탁한다”고 호소했다.

이어 “서울시는 교통공사의 직접적인 감독기관이자 사실상 모든 감독·지시·승인하는 실질적인 사용자”라며 “겉으로 안전을 얘기하면서 은근히 공사 뒤로 숨지 말고 사고 진단, 재발방지, 대처방안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 “서울교통공사도 작업자의 안전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며 “이번 사고 이전에도 역무원들은 주취자, 악성민원인 등으로부터 위해와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다. 이런 환경을 개선하지 않고 현실과 괴리된 면책성 대책만 나열했던 것을 반성함과 동시에 실효성 있는 모든 대책을 제시해달라”고 촉구했다.

이번 추모주간에 전 직원은 검은색 추모 리본을 근무 시간에 패용하기로 했다. 공사 사업장 내에는 분향소도 설치해 피해자 넋을 기릴 예정이다.

◆‘신당역 여성, 국가가 죽였다’

“‘스토킹방지법을 보완하고 피해자 보호에 만전을 기하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말이 성난 여론을 잠재우려는 임시방편이 아님을 증명하라. 여성살해를 가능케 한 우리 사회의 성차별과 여성혐오를 국가가 용납하지 않음을 명확히 하라. ‘국가가 죽였다’는 외침에 책임을 다하라.”

경찰에 따르면 피해자 A씨와 입사 동기로 서로 알고 지낸 사이였던 전씨는 불법 촬영 영상을 유포하겠다며 A씨를 협박하고 만남을 강요한 ‘스토킹’ 혐의로 이미 두차례 고소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이 최종 변론 기일에서 전씨에 대해 징역 9년을 구형했으며, 소송과정에서 전씨는 A씨에게 합의를 지속 요구해왔다. 그리고 법원 선고가 내려지기 하루 전날인 14일 전씨는 위생모를 쓰고 1시간 10분가량 기다린 뒤 여자화장실을 순찰 중이던 A씨를 뒤따라가 살인을 저질렀다. 

이번 사건을 불법 촬영과 스토킹에 이어진 여성 혐오범죄라고 보는 시각이 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씨가 범행 직전 피해자가 살았던 옛 거주지를 찾고 심지어 A씨로 본 다른 여성을 미행하기도 하는 등 계획범죄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가해자는 직위해제가 됐지만 공사 내부망인 ‘메트로넷’을 통해 피해자의 정보에 접근하고 스토킹을 지속할 수 있었다. 

전씨가 범행 8시간 전쯤 집 근처에서 본인 명의의 예금 1700만원을 인출하려 한 정황도 포착되면서 범행 후 도주 자금으로 사용하려 한 것은 아닌지 조사 중이다. 게다가 범행 당일 오후 3시께 정신과 병원을 찾아 진료받은 이력도 확인됐는데, 사법 처리 과정에서 심신미약을 인정받아 형량 감경 등을 주장하려는 계획이 있는 건 아니냐는 추측도 제기된다. 이처럼 최소 11일 전부터 범행을 계획한 정황이 확인됨에 따라 전씨 죄명도 살인 혐의에서 특가법상 보복살인혐의로 변경됐다. 보복살인은 살인혐의보다 최소 5년 이상 형량이 더 높아질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도 일방적인 전화, 불법촬영, 협박 등 강력범죄 전조가 이어졌지만, 지난해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된 이후로 가해자 분리 등 피해자 안전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0월 법원은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을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첫 고소가 접수된 이후 한달간 112 시스템상 안전조치 대상자로 등록한 게 전부였다. 경찰 측은 “한달간 별 징후가 없었고 피해자가 기한 연장을 원치 않아 안전조치를 해제했다”고 해명했다.

사건이 터지자 그제야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선 정부와 경찰 등에 대한 비판과 함께 스토킹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실효성 있는 대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경찰청은 신당역 스토킹 살인과 같은 범죄가 재발하지 않도록 검찰과 관련 협의체를 신설하겠다고 19일 밝혔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이날 검찰총장과 만난 뒤 “대검찰청은 경찰청과, 지역단위에서는 지청과 해당 경찰서가 협의체를 만들 것”이라며 “법원이 영장을 발부하고 잠정조치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훨씬 현실을 알고 판단하게 될 것이고 영장 발부율도 높일 수 있을 것 기대한다”고 밝혔다. 또 전국 경찰이 수사 중인 스토킹 관련 사건을 전수조사하겠다고 발표했다. 전수조사 대상은 서울 기준으로만 약 400건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원석 검찰총장도 이날 첫 출근길에서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된 지 아직 1년도 되지 않아 부족한 점이 많지만, 피해자 안전을 중심에 두고 어떻게 법률을 운용할지 경찰청과 긴밀히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여가부도 같은날 “가해자의 처벌을 강화하는 스토킹처벌법 개정안이 발의돼 국회 법사위에 계류된 상태인데, 개정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법무부에 건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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