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한국 산업 근대화의 주역’ ‘세기의 도전자’ ‘위기의 승부사’ 등 다양한 수식어가 방증하듯 현대경제사와 궤를 같이한 한국의 대표 기업가다. 아산이 일군 현대그룹은 자동차와 조선, 건설, 유통, 자재, 금융 등 주요 산업을 아우르는 글로벌 기업들로 성장해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정치적으로 한국 사회에 큰 족적을 남겼다. 1990년대 정몽헌 당시 현대전자 대표이사가 직접 스카우트해 현대전자에도 몸 담았던 박광수 칼럼니스트가 올해 75주년을 맞은 현대그룹을 파헤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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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수 한국과학기술원 자문위원은 학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삼성전자와 LG전자, 현대전자 등에서 40년간 근무했다. 연구개발·생산기술·기획·품질관리·영업·구매 관련 분야를 망라한 것은 물론 영어와 일어에 능통해 미국 일본 등 해외주재원으로도 활동했다. 현재 기업경영 컨설턴트, 기업초빙강의 전문가와 신문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천지일보 2022.08.12

 

<14>정몽구 현대차 명예회장의 품질경영

J.D 파워사 품질 테스트 결과 ‘충격’

현대자동차 품질평가서 ‘꼴찌’ 차지 

자동차 품질강화에 직접 나선 정몽구

 

품질상황실 설치 및 24시간 운영

고객의 불만사항 일일이 접수 처리

품질목표 관리로 ‘품질패스제’ 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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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공장을 방문해 현장 임직원들을 격려하고 완벽품질의 자동차 생산을 독려하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 (제공: 현대차그룹)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은 1938년 3월 18일 부친 정주영 회장과 모친 변중석 사이의 8남 3녀 중 이남으로 강원도 통천에서 출생했다. 신장이 부친을 닮아 177cm에 75kg의 건장한 체격으로 서울 경복고 재학시절 운동을 좋아해서 과격한 운동인 럭비팀 주장으로 활동했다. 경복고 재학 시 손병두 호암재단 이사장과 동기로 공부만 하던 가냘픈 체구의 친구인 그를 불량서클 학생들로부터 보호했고, 거구에 강골을 자랑하며 팔순 고령인 지금도 어깨가 떡 벌어질 정도로 체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고교 졸업 후 한양대 공과대학 공업경영학과를 1967년 졸업했다. 

◆‘갤로퍼 신화’로 부친에게 경영능력 인정받아

정몽구 회장은 1970년 2월 현대자동차에 입사해 1974년 2월까지 현대자동차 이사로 근무했다. 1977년 현대정공(現 현대모비스)을 설립하고 당시에 다소 생소하지만 SUV의 원조인 4륜구동의 현대 갤로퍼 자동차를 출시하면서 출시 두 달 만에 33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공전의 히트차가 됐다. 현대 갤로퍼가 단숨에 쌍용자동차의 코란도를 시장에서 앞지르면서 갤로퍼 신화를 일으키자, 부친 정주영 회장이 정몽구 회장의 경영능력을 비로소 인정했다.

갤로퍼는 미쓰비시 자동차의 유명 4WD 모델인 1세대 구형 파제로를 1990년 3월 기술도입 계약을 체결하고, 라이센스로 받아 1991년 9월 16일 갤로퍼(1991~1997)로 모델명을 변경하고 출시했다. 디젤 롱버디를 먼저 선보이고 11월 자동변속기모델, 12월에는 V6 3.0 가솔린 엔진 롱버디와 터보디젤엔진 모델을 연달아 출시했다.

출시 첫해 3000대 판매실적을 올렸고, 1992년에는 2만 4000대를 판매하며 국내 4WD 시장의 52% 시장 점유율을 보였으며, 출시 3년간 10만 여대의 판매실적을 기록했다. 특히 유라시아 7만㎞를 고장 없이 완주하면서 고객들로부터 품질인증을 받았다. 

또한 신사업으로 추진한 컨테이너사업은 1981년 1억 달러 수출을 기록했고, 1983년에는 일본기업을 이기고 세계 1위를 달성했다.

그리고 사실상 장자인 정몽구 회장에게 현대자동차 경영을 인계하고자, 정주영 회장이 현대 포니의 명성을 불러일으킨 동생 정세영 회장을 불러 정몽구 회장에게 현대자동차 경영권을 넘겨주라고 지시했다. 정세영 회장은 별다른 불협화음 없이 당시 세계 11위까지 성장한 현대차를 1999년 정몽구 회장에게 미련 없이 넘기고 건설사인 현대산업개발을 인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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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로퍼. (제공: 현대차그룹)

◆이건희 회장의 ‘품질경영’ 벤치마킹

정몽구 회장은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표방한 ‘품질경영’을 벤치마킹하면서, 향후 현대차는 품질을 향상시켜야 진정한 자동차 강국이 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게 됐다. 그 계기가 된 것은 1998년 미국 시장조사회사인 J.D 파워사가 평가한 자동차 품질 테스트에서 현대자동차가 품질평가 꼴찌를 차지한 것이었다.   

이 결과에 큰 충격을 받은 정몽구 회장은 자동차 품질강화에 직접 나섰고, 향후 현대차의 운명은 품질향상에 있다고 굳게 결심하고 자금이 많이 들어가도 좋으니 품질개선에 총력을 기울였다. 

또 2001년 서울 양재동 신사옥으로 이사한 현대차는 정몽구 회장 지시로 1층 로비에 ‘품질상황실’ ‘품질회의실’ ‘품질확보실’을 설치했다. 당시 품질상황실이 24시간 운영되면서 세계 각국 주요 지역에 펴져 있는 자동차 딜러들과 치밀한 에프터 서비스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품질과 관련된 고객의 불만사항을 일일이 접수 처리했다. 여기서 수집된 품질정보보고서(QIR)로 작성한 데이터를 생산 현장 임직원들이 100% 정보를 공유하면서 현대차는 점진적인 개선을 해나갔다. 

품질회의실과 품질확보실에서는 글로벌 유수의 완성차업계 차종을 모조리 가져다 비교분석했고, 관련 품질회의를 월 평균 2회 이상씩 진행시켰다. 그리고 정몽구 회장이 품질 및 연구개발, 생산담당 임원들을 수시로 소집해 회의를 직접 주재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런 결과로 나온 것이 현대차의 ‘품질패스제’이다.

‘품질패스제’는 정몽구 회장이 확실한 품질이 확보되지 않으면 제품 개발과 생산을 더 이상 추진하지 말라고 지시한 제도이다. 현대자동차의 대표적 베스트 셀링카인 ‘NF소나타’도 이런 엄격한 품질과정을 통과해서 출시했다. 이외에도 정몽구 회장은 약 1000억원을 투자해 각국의 생산 공장마다 전수검사 시스템을 도입하고, 현대차 제품의 제품 불량을 대대적으로 줄여 가는데도 노력을 기울였다. 이런 진정성 있는 노력으로 정몽구 회장의 품질경영 성과는 기술혁신과 전사적인 협력사 관리를 통해 가시적으로 가능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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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을 방문한 정주영 회장과 정몽구 회장. (출처: 아산정주영닷컴)

◆협력업체 기술개발 지원 등 품질개선 앞장

현대그룹에서 분리되기 전인 1996년 정몽구 회장은 현대종합기획실(삼성의 비서실 기능과 동일)에 ‘현대기술의 날’을 선언하고 ‘현대기술상’을 제정했다. 이와 함께 그룹 차원의 연구개발을 총괄하는 ‘연구개발인재육성위원회’를 설치하고 중소기업 기술개발을 확대 지원하기 위해 ‘현대기술상’ 수여 대상을 협력회사로까지 확대시켰다. 

특히 전 세계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자동차부품산업재단’을 설립하고, ‘5스타제도’를 도입해 협력업체의 품질개선에 앞장섰다. 

이런 시행의 결과로 2004년 J.D파워사가 선정하는 자동차 초기품질지수조사에서 일본 도요타에 이어 2위에 이름을 올리는 성과를 냈으며, 정몽구 회장은 비즈니스위크로부터 자동차 부문 세계 최고 CEO로 선정됐다. 2009년에는 미국자동차 매체인 모터트렌드가 선정하는 ‘자동차회사 파워리스트 50’서 6위까지 올랐다. 

한때 현대기아차가 미국 등 주요국가에서 리콜(쏘올과 쏘렌토 3만 5000대)과 국내에서 쏘올,쏘렌토, 모하비, K7 등 1만 8272대가 리콜문제로 홍역을 치르지만, 이 원인은 모두가 배선용접 불량으로 실내등이 켜지지 않고 화재위험성이 크다는 이유로 밝혀졌다. 그러면서 기존에 판매된 자동차에 대해 전수 리콜조치를 즉각 실시하고, 소비자 불만을 단숨에 잠재우는 놀라운 순발력과 기치를 발휘하며 경영위기에서 벗어났다. 

또한 다시 한 번 ‘품질경영’을 강조하며 불량 없고 가치 있는 자동차 생산에 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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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9일 오후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제네시스 EQ900 신차발표회’에서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과 황교안 전 총리가 제네시스 EQ900과 함께 포토타임을 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품질개선 대표작 ‘현대 제네시스’ 탄생

현대차는 마침내 품질개선의 대표작인 최고급 승용차인 ‘현대 제네시스’를 출시했다.

현대 제네시스는 일관제철소인 현대제철에서 생산하는 자동차 전문용 초고강력 강판이 대거 적용되고 현대자동차 최초로 4륜 구동(H-Trac) 기술을 접목한 것과 방청기능이 한 단계 더 강화된 LF소나타의 듀얼 로어암 등의 채택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2014년 J.D파워가 발표한 신차품질조사(IQS, Initial Quality Study)에서 현대자동차가 일반 브랜드부문 20개 브랜드 중 일본 도요타자동차를 이기고 1위에, 기아자동차는 도요타와 근소한 차이로 3위에 선정되는 쾌거는 지난 30년간 품질의 중요성을 강조한 정몽구 회장의 집념의 결과물이라고 필자는 판단한다.

이런 결과 현대자동차는 2010년 미국 포드자동차를 제치고, 현대·기아차그룹을 글로벌 누적 판매대수 5위를 기록하는데 이 결과도 정몽구 회장이 강조한 ‘품질경영’ 때문이라고 필자는 판단한다.

그리고 1999년 IMF 외환위기 당시 부도처리 된 기아자동차를 인수해 성공적으로 회생시켰고, 부도 처리된 한보철강을 2004년에 인수한 뒤 사명을 현대제철로 변경하고 글로벌 철강 일괄생산 체제를 구축했으며, 부친 정주영 회장의 숙원사업(쇳물에서 자동차 철강 생산 확대)을 마무리했다. 2011년 4월 유동성 위기로 경영난을 겪고 있는 현대그룹 모기업 현대건설을 인수해 세계적인 회사로 다시 육성했다.

2009년 9월 기준 현대자동차를 포함 10개 계열사의 자산규모는 14조 400억에 불구했으나, 2018년 기준으로 54개의 계열사와 총 356조 5823억원의 자산과 254조 7976억원 매출액을 달성하며 당시 기준 국내 2위의 재벌기업으로 당당하게 이름을 올렸다.

이런 현대기아차의 발전은 미국 포춘지에서 발전 속도가 너무 빨라서 속도위반 딱지를 부여 해야 한다는 평가를 내렸다.

2년 6개월 만에 필자가 2022년 7월 유럽출장 중 주차장에 빼곡하게 들어찬 벤츠, 도요타, 아우디, 폭스바겐 자동차들 틈에 자주 보이는 현대자동차들을 발견하고, 세계 5위의 현대기아차의 위상을 다시 한 번 가슴속 깊이 간직하는 느낌을 누릴 수 있었다.

주야로 노력한 정몽구 회장의 집념이 오늘의 현대·기아차를 만든 장본인이라고 판단한다.

끝으로 현대·기아자동차가 대폭적인 해외투자로 조만간에 자동차 1위 회사인 일본 도요타자동차를 이기고 세계 1위 자동차회사가 되길 소망해 본다.

(정리=유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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