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고온에 탄저병 유행
1만 5천년 전 바이러스 발견
“미생물에 유전자 전이 가능”
모기 생존 확률 53% 증가
동물 바이러스 옮길 가능성
“치료제없는 전염병 생성가능”

image
지구와 바이러스. (캡쳐: 온라인 커뮤니티) ⓒ천지일보 2022.07.13

[천지일보=홍보영 기자] “수십년간 우린 경고를 받아 왔습니다. 지구 온난화는 대재앙이고 현실입니다.”

한 여자의 이마에 조그만 구멍이 생긴다. 그 구멍에서 애벌레 같은 것이 왔다 갔다 한다. 영화 ‘더 소우-해빙’ 도입 부분이다.

빙하기인 약 2만년 전에 살았던 맘모스가 지구 온난화로 인해 녹으면서 그 속에 있던 고대 기생벌레들이 함께 해빙된다. 기생벌레는 사람의 몸을 물고 들어가거나 상처를 통해 몸에 기생하면서 알을 까며 여러 증상을 일으키다 사망에 이르게 한다. 또 기생한 생물이 알을 까고 그 알이 부화하면서 이런 과정이 계속 반복된다. 마지막에 기생 벌레는 조류를 통해 인류가 많이 살고 있는 곳으로 넘어가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기후위기는 폭염, 가뭄, 한파, 홍수, 빈번한 태풍 등 기상이변이나 해수면 상승으로 수몰 위기를 불러오는 것만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가 바이러스 전파의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으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 대유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고대 바이러스 깨어나다

영화에서 나올 법한 일들이 현실세계에도 발생했다. 바로 만년설, 영구동토(2년 이상 모든 계절 동안 결빙되는 땅), 빙하 속에서 동면하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로 인해 고대 바이러스가 깨어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바이러스로부터 우리는 공격받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6년 전 처음으로 잠자던 바이러스가 영구동토층에서 깨어나 인간과 동물에게 치명적임을 보여 준 사건이 발생했다. 2016년 여름, 러시아 시베리아의 한 마을에서 12살 소년이 감염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며칠 후, 약 20명의 주민이 소년과 같은 증상에 시달렸고, 순록 2300마리도 떼죽음을 당했다.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그해 여름, 러시아 시베리아에는 이례적으로 35℃까지 오르는 이상 고온 현상이 나타났다. 이에 따라 급격한 기온 상승으로 얼어 있던 시베리아 동토가 해빙되자 75년 전에 죽은 순록의 사체가 얼음 위로 드러난 것. 그 사체 속에는 어마무시한 바이러스가 숨어 있었다. 바로 일명 좀비균으로도 불리는 ‘탄저균’이다.

이로 인해 수십명의 감염자와 사망자가 발생했다. 시베리아 역병으로 불리는 탄저병이 1941년 이후 75년 만에 다시 발생하게 된 원인은 기후변화로 당시 매장된 사람과 동물의 사체에서 묻어있던 균이 해빙되면서 깨어났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과 중국 공동 연구진이 5년 동안 연구한 결과 1만 5000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원 빙하에서 현재까지 알려지지 않은 고대 바이러스가 33개 발견됐다. 이 가운데 28개는 완전히 새로운 바이러스인 것으로 전해졌다.

많은 과학자는 기후변화로 인해 빙하 속에 얼어 있던 고대의 바이러스가 되살아나는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2013년에 우리나라 극지연구소팀이 남극 빙하 속에서 30만년 전 박테리아를 추출해 배양했더니 다시 활동하기 시작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상훈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 박사는 “오래된 고대 미생물들이 풀려 살아난다면 현생에 존재하는 미생물들한테 유전자가 전이될 가능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빙하 속 세균이 인간의 면역이나 기존 치료약이 듣지 않는 새로운 전염병을 불러오는 최악의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image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감염도. (캡쳐: 온라인 커뮤니티) ⓒ천지일보 2022.07.13

◆모기와 인수공통감염병 확산

지구 온난화로 인한 고대 바이러스의 등장뿐 아니라 모기의 활동 시기가 길어지는 점도 문제다. 모기는 뎅기열, 말라리아, 웨스트나일열, 황열 등 다양한 감염병 매개체 역할을 해 매년 약 70만명의 목숨을 앗아가기도 한다. 가디언에 따르면 온실 가스 배출량을 줄이지 않는다면 2080년까지 80억명 이상이 말라리아와 뎅기열의 위험에 처할 수 있다. 또 미국 다트머스대 연구팀은 북극의 기온이 2도 높아지면 모기 생존확률은 53% 늘어난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지구온난화는 인수공통감염병도 불러일으킨다.

최근 20년간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됐던 질병들은 2003년 사스(SARS, 박쥐), 2009년 신종플루(H1N1 influenza, 돼지), 2015년 메르스(MERS, 낙타), 2019년 코로나19(COVID-19, 박쥐), 원숭이두창(Monkeypox, 원숭이)까지 모두 인수공통감염병(Zoonosis)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최근 20년간 사람에게 발생한 신종 전염병 중 60%가 인수공통감염병이며, 이 중 75%가 야생동물로부터 유래했다.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할수록 앞으로 이러한 질병들이 더 많이, 더 심각하게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 조지타운 대학교를 비롯해 여러 기관의 학자들이 연구해 영국 저널 ‘네이처’에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최소 1만개의 바이러스가 인간을 감염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대다수는 여전히 야생 포유류에서 조용히 순환하고 있다. 하지만 지구 온난화로 인해 일부 야생 동물은 더 시원한 서식지로 이동하고 다른 종과 처음으로 만나면서 바이러스의 종간 전염이 많고 경우에 따라 일부 바이러스는 인간에게 전염될 수 있다.

특히 바이러스를 보유한 포유류 중 가장 주목받는 종은 박쥐다. 2012년, 2015년, 2019년 등 세 번의 코로나바이러스 유행과 2014년 서아프리카에서 수많은 사망자를 낸 에볼라바이러스 역시 박쥐가 매개체 역할을 했다.

박쥐는 전체 포유류 종의 약 20%에 해당할 만큼 많은 수를 가지며, 종류도 1000여종에 달해 바이러스의 숙주가 될 확률이 높다. 특히 포유류 중 유일하게 날 수 있는 종으로 이동반경이 1300km까지 가능하다. 또한 박쥐는 군집생활을 해 바이러스가 한 번에 많은 숙주를 공략할 수 있는 매우 유리한 환경을 충족한다. 멕시코자유꼬리박쥐의 경우 가로 세로 높이 각각 30㎝인 작은 공간에 300마리가 모여 잠을 잔다.

아울러 박쥐의 몸속에는 최대 200종의 바이러스가 서식한다. 이들 바이러스는 스스로 면역반응을 조절하는 완벽한 숙주인 박쥐의 몸속에서 끊임없이 돌연변이를 일으키며 언제든 인간에게 옮겨갈 준비를 하고 있다.

조영광 수의미래연구소 공동대표는 “지구온난화로 인해 박쥐 등을 포함한 동물들의 서식지가 점차 사람들이 거주하는 공간까지 접해지면서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다”며 “아울러 무서운 것이 바이러스는 계속 변이를 일으키는데 코로나바이러스만 하더라도 고양이에 경우 복막염을 일으키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거와 달리 반려동물을 껴안고 잠을 잘 만큼 동물들이 우리 생활에 가까이 와 있는데 야생동물과 반려동물 사이 접점이 가까워지면서 바이러스를 옮기고 변이도 일으키면 사람들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