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스포츠 칼럼니스트·스포츠학 박사

배구 감독으로 청춘을 바친 뒤 ‘교장 선생님’이 됐다. 취재 기자 시절 인연을 맺었던 그를 최근 배구 지인의 결혼식장에서 수십년 만에 우연히 만났다. 그는 전국체육대회와 CBS배 전국남녀중·고배구대회 등 고등부 전국대회에서 남성고 배구 감독으로만 51승을 거둔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특히 전국체육대회 5연패 등 전국체전에서만 금메달을 무려 10개나 따내는 등 고등학교 배구 사상 전무후무한 금자탑을 세운 살아있는 레전드다. 배구계에 수 많은 제자들도 길러냈다. ‘갈색 폭격기’ 신진식을 비롯해 많은 스타를 배출하며 한국 배구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그는 전북의 사학 명문 남성고 김은철 교장이다.

김 감독은 지난해 3월 남성고 교장에 취임했다. 1946년 익산에서 개교한 남성고는 전주고와 함께 전북의 명문교로 이름을 날렸다. 국회의원과 장·차관, 교수, 판·검사, 의사 등 수많은 사회 주요 인사를 배출해 왔다. 체육교사 출신이 교장으로 임명된 것은 77년 남성고 역사상 처음이다.

모교 출신인 김 교장은 “학생 위주의 교육 외에 평균 40대 초반으로 구성된 교사들의 사기진작과 실력 증진에 아낌없는 지원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4년 전 자사고에서 일반고로 전환한 학교를 “실력과 비전, 올바른 인성을 지닌 남성인 육성이라는 기치 아래 끊임없이 전진해 나가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남성고 재단 측이 배구감독이자 체육교사 출신인 그를 학교장으로 선임한 것은 감독으로서의 뛰어난 지도역량과 성실성, 소통 능력 등을 높이 산 때문이라고 한다.

그동안 호남 지역에선 배구인 출신 교장 선생님이 여러명 배출됐다. 국내에서 스포츠 종목 중 학교장을 가장 많이 배출한 종목이 배구이며, 특히 호남 지역에서 가장 많은 교장 선생님이 탄생했다고 한다. 명문 목포고 교장을 역임한 고 박평환씨는 배구 국제심판 출신이다.

조선대 시절 배구를 뒤늦게 시작한 박평환 교장은 국내외 배구대회에서 20여년 활동하다 2006년 추계대학배구연맹전에서 심판 정년 나이인 55세 규정에 따라 심판 은퇴를 하게됐다.

한국배구연맹(KOVO) 심판위원장을 역임한 서태원씨도 교장선생님 출신이다. 서 전 심판위원장은 순천출신으로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배구선수로 활동 대학졸업 후 목포대학교와 첫 인연을 맺은 계기로 그동안 목포고, 목포여고, 목포상고, 하의종고 등 전남 지역에서 38년간 후학 양성에 힘쓰다가 금산 제일 초등교 교장 등을 역임했다.

호남 지역에서 배구인 출신 교장 선생님이 많이 나온 이유는 체육 교사를 하면서 감독이나 심판 업무를 겸하며 학생들의 운동 환경 개선에 노력하고, 면학 분위기 조성에도 힘을 쓰고 학생들의 선택의 폭을 넓히는 데 기여했기 때문이라는 게 교육계의 평가이다. 특히 호남 지역에선 심판 생활을 하며 교감, 교장으로 승진하는 선배들의 모습을 후배들이 롤모델로 삼는 성공 방식을 따랐다.

1990년대 예전 취재 기자 시절 호남 출신 심판이 유독 많았던 생각이 난다. 학교 선생님이 대부분이었던 이들은 바쁜 학교 생활 속에서도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배구 대회에 심판을 보기 위해 주중, 주말 짬을 내 열심히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학교 교장 선생님이 된 호남 배구인들은 다른 누구보다도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학교 최고 책임자인 교장 선생님으로 오르기까지 적지않은 어려움을 이겨낸 이들은 교육자로서 명예와 사명감을 깊게 품고 있었다. 존경할 만한 선생님이 드문 요즘 교육계에서 배구인 출신 호남지역 교장 선생님은 우리 사회에 귀감이 될 만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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