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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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 고개’를 한자어로는 ‘맥령(麥嶺)’이라고 했다. 가난했던 시절 초여름 식량사정이 가장 어려웠을 때를 지칭한 말이다. 필자와 비슷한 나이를 지닌 세대들은 혹독한 보리 고개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게다.

사실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초근목피로 연명해 얼굴이 붓는 부황(浮黃)에 걸린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노인들로부터 전해들은 얘기로는 일제 강점기 보리 고개에는 산에서 소나무껍질을 벗겨 지게에 지고 와 끓여 먹었다고 한다.

세종 때 만들어진 ‘구황벽곡방(救荒辟糓方)’은 솔잎을 이용한 기아 대처방안이었다. 1541년 충주에서 지방관으로 재직하던 안위는 처음으로 ‘충주구황절요(忠州救荒切要)를 만들었다. 이 책에도 솔잎은 중요한 구황 식품으로 기록돼 있다.

송죽은 솔잎을 절구에 찧어 즙을 빼고 덩어리를 지은 후 이를 온돌이나 양지에 말렸다가 다시 찧어 가루를 낸다. 이를 곡식가루와 섞어 죽을 쑤어 먹는 것이다. 그런데 솔잎만을 먹으면 변비가 생겨 굶주린 백성들의 고통이 심했던 모양이다.

중중 때 패관잡기를 쓴 어숙권(魚叔權)의 ‘고사촬요(攷事撮要)’에는 ‘구황방’이 개선됐다. 솔잎 사용법 외에 다양한 식물을 소개했는데 요즈음 현대인이 즐겨 먹는 건강식품이 망라되고 있다.

도라지를 밥 위에 쪄서 먹는 방법, 메밀의 어린 줄기를 베어 볶아 미숫가루로 만들어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칡뿌리 껍질을 벗겨내고 무르게 찧은 다음 쌀과 함께 죽을 쑤어 먹는 방법, 또 소화에 좋은 냉이죽도 소개하고 있다.

우암 송시열이 벼슬을 버리고 사저인 회덕에서 물러나 있을 때 혹독한 가뭄이 들었다. 우암은 백성들의 고난이 임금이 덕이 없음임을 지적하고 선정을 베풀어달라고 호소했다.

‘사방 이웃이 굶주림에 울고 또 세금 수탈에 고달파하고 있는데, 이를 편안하게 할 계책을 올리지 못하니, 가엾은 우리 백성이 매우 급하고도 위태롭습니다.… 바라옵건대 임금께서 능히 덕을 힘써 참으로 낮은 백성을 화평하게 하고 천심을 받드시면, 신은 배를 주리고 구덩이에 굴러 떨어져 죽더라도 전혀 한탄할 것이 없겠습니다.’

필자는 얼마 전 다산 정약용 선생의 간찰 한 점을 고증 할 일이 있었는데 보리 고개 백성들을 걱정하는 충정이 담겨있었다.

‘…흉년을 당해 묵은 곡식(穀食)은 다 떨어지고 보리는 아직 익지 아니해 농민(農民)이 곤궁(困窮)하게 지내는 보리 고개에 장차 무엇으로 견뎌 나갈지 다만 간절히 받들어 생각할 뿐입니다. 이 사이에 새로이 백가지의 감회가 더욱 성해 끝없이 아득합니다.(…窮春 將何以賴遣只切奉念而已此間 逢新百感益復罔涯…)

우상호 민주당 비대위원장이 최근 ‘공무원 피살 사건 자료 열람 동의 요청에 협조할 생각이 있느냐’는 야당 질문에 ‘민생이 굉장히 심각한데 지금 그런 걸 할 때냐’면서 ‘협조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우 위원장은 ‘윤석열 정부의 국정 우선 과제 중 피살 사건이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 먹고 사는 문제가 얼마나 급한데 이게 현안이냐’고 덧붙였다고 한다.

먹고 사는 문제가 중요하지만 우리나라 공무원이 북한에게 총격을 받고 사살된 사건을 월북하다 피격당한 것이라고 뒤집어씌운 것을 그냥 눈 감자는 얘기인가. 정부 발표를 보면 문재인 청와대가 정부가 북한의 눈치를 보고 사실을 왜곡 은폐한 것이다. 야당은 국민들의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책임소재를 철저하게 가려 관련자를 문책해야 한다. 야당은 보다 적극적으로 진실규명에 응해야 하며,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서는 여당과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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