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전 주러시아 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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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대통령이 한국에 도착하기 전에 선발대로 먼저 한국에 들어와 있던 미 국토안보부 산하 비밀경호국(SS) 소속 직원이 19일 오후 외부에서 술을 마시고 숙소인 용산구 하얏트호텔로 돌아와 택시에서 내리는 과정에서 택시기사와 택시에 탑승하려던 한국인 2명과 시비가 붙었다고 한다. 당시 호텔 보안 직원이 개입하고 폭행 신고를 접수한 경찰이 현장 출동했고 다음날 아침 경찰 조사를 받았으나 이렇다 할 조치는 없었다고 한다. 그 직원은 경찰 조사를 받은 후 미국 측에서 업무에서 배제하고 바로 귀국시켰다고 한다. 경찰에 따르면 문제의 SS 직원에 대해 폭행 혐의 적용 여부를 검토하고 있으며 혐의가 인정되면 검찰에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송치될 것이며 그 후에는 국제형사사법공조 절차에 따라 사법처리가 진행된다고 한다. 이번 일과 관련해 먼저 경찰의 조치가 적절했는지 질문이 나온다. 왜 구금하지 않았나? 왜 출국하도록 놔뒀나? 답은 경미한 폭행 혐의자에 대한 구속은 극히 이례적이며, 이번과 같은 혐의에 대해 출국 금지 조치를 한 예도 없다이다. 이번 사건에서 피의자가 외국인이라고 해서 내국인과 달리 처리한다면 오히려 법의 일반원칙인 형평에 어긋난다. 따라서 경찰의 조치를 문제 삼는 것은 맞지 않다고 할 수 있다.

1966년 한미 양국이 체결한 주한 미군 지위협정(SOFA)에 따라 살인, 강간 등 중대범죄를 제외하고는 미국 측이 관할권을 행사하게 돼 있어 과거 주한 미군 장병들이 범죄를 저질렀을 때 우리 측이 관할권을 행사하는 경우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그 결과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 혐의가 있는 미군 장병에 대해 한국인들의 법 감정에 상응하는 처벌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사례가 적지 않아 오래전부터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를 비롯한 100여개의 시민단체와 종교계가 불평등한 SOFA 조항을 전면 개정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한 관점에서 우리 사회에서는 이번 사건에서 범죄 혐의자가 주한 미군도 아니고 ‘외교 관계에 관한 비엔나 협약’상 특권과 면제를 누리는 주한 미국대사관의 공관원도 아니어서 명백히 우리 쪽이 관할권을 갖는데도 혐의자가 도주(?)하도록 내버려 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번 사건의 처리 과정에 관련 법규로만 따질 때 하자는 없어 보인다. 다만 한국의 동맹국인 미국의 대통령이 왔는데 이런 문제로 시끄럽게 할 수 없다는 외교적 및 정무적 고려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질문은 나올 수 있다. 또한, 근무 중은 아니더라도 대통령 경호를 담당하는 직원에게 요구되는 처신이라는 게 있는데 술을 마시고 부적절한 행동을 한 것은 그냥 넘어가기 어려운 면이 있다. 한국 경찰의 조치에 아무런 법적 하자가 없다 하더라도 미국 측에서 유감 표명 또는 사과를 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이번 미국 대통령의 방한 중에도 예외 없이 반미 시위 등이 있었다. 정상회담이 열리는 용산 대통령 집무실과 숙소인 하얏트 호텔 인근에서 반미투쟁본부,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 참여연대 등 단체가 기자회견과 시위를 벌이면서 “북침 핵전쟁 책동 바이든 방한 반대한다” “한미동맹에 반대한다” 등 구호를 외쳤다. 한국 사회에서 상식과 분별이 있는 사람들은 종북좌파들의 말이 안 되는 이념적 구호에 호응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미국에 대해 굴종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으로 보일 경우 한국 정부, 나아가 미국에 대해 반감을 갖게 된다. 대표적인 예로 2002년 6월 여중생 2명이 미군 장갑차에 치여 사망했던 사고를 들 수 있다. 그 사고는 엄밀히 말하면 차량 운행 중에 일어난 단순 과실치사이지만 주한 미군 지위협정에 따라 우리 쪽이 관할권을 행사할 수 없었고 더욱이 미군 당국이 무죄를 선고함으로써 국민들이 분노했으며 그 결과 미국에 대한 인식에 상당한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 당시 정부는 자존심이 상한 국민의 마음을 보살피는 노력이 미흡했다. 그간 주한 미군 범죄 처리에 대한 원성이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쌓이고 쌓여 반미 정서의 형성에 일조했음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미동맹은 지난 70년간 북한의 태도에 의미 있는 변화가 없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우리에게 필요불가결한 것이다. 우리에게 소중한 한미관계를 잘 유지하려면 국민들의 미국에 대한 태도 또는 인식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이 발생할 때 정부는 신속하고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 우리 국민감정에 유의해야 한다. 정부가 미국 앞에서 작아지면 작아질수록 결과는 반미를 부추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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