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전 주러시아 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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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은 10일 윤석열 대통령이 6월 말 마드리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한다고 발표하면서 회의에 참석하는 우크라이나 측과의 양자 접촉 가능성을 비쳤다. 지난주 이준석 여당 대표의 우크라이나 방문 때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윤 대통령의 방문을 희망했다고 하는데 아마도 나토정상회의에서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회동이 이루어질 수도 있어 보인다. 이러한 행보는 지난달 국방부가 부인하고 있으나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우회 지원하기로 한 방침에 이어 한국이 점점 더 러시아에 대해 비우호적인 행동을 취하는 것이다. 이제 한국 정부는 아예 러시아를 적으로 돌리기로 작정한 것인가?

이 대표의 우크라이나 방문이 한때 정부와도 의견 조율 없이 이루어진 것으로 이해됐는데 방문 후 드러난 바에 따르면 사전에 정부와의 협의가 있었고 외교부 1급 간부가 동행했다. 이제까지 영국 총리, 폴란드 대통령 등이 키예프를 방문했는데 이들 국가는 러시아를 적대시하겠다는 뜻을 분명하게 표명한 국가이다. 한국 여당 대표가 자신의 방문이 평화 메시지일 뿐이라고 주장해도 집권여당 대표인 만큼 국제사회가 그렇게만 이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여당 대표의 우크라이나 방문에 이어 한국 대통령의 나토정상회의 참석은 한국의 대러시아 적대시 정책을 공식 천명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번 나토정상회의는 우크라이나에 대해 인도적 지원이 아니라 군사적 지원을 논의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크라이나 사태 발발의 복잡한 배경을 잘 모르는 한국 국민이 우크라이나에 대해 강한 동정심을 갖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으나 사태를 객관적으로 보면서 국익을 챙겨야 할 정부마저 그런 수준의 접근이라면 심히 우려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우선 러시아 내 우리 국민과 기업들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는가? 중국이 사드 배치 결정과 관련해 중국 내 우리 기업들을 야비하게 괴롭혔는데 러시아도 그런 조치를 취할 가능성은 없는가? 한국이 서방의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 동참하자 러시아는 한국을 비우호국으로 지정은 했으나 비자면제협정을 유지하는 등 본격적인 보복 조치는 자제하고 있다. 한국의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에 대한 의존도는 심각한 수준은 아니어서 당장은 문제없고 현재까지 러시아가 발표한 원자재 등 전략물자 수출 제한으로 인한 타격도 크지 않다고 하나 앞으로 제한품목이 확대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기 어렵다. 최근 러시아는 일본에 대해 어업협정을 정지시켜 러시아 수역에서 일본 어선들의 조업을 금지했다. 러시아가 한국과의 어업협정을 정지시킨다면 거의 전량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는 국민 생선 명태의 공급에 비상이 걸릴 것이다. 국내 시멘트 제조업체가 러시아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유연탄 수입이 막히면 건설 현장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국내 조선 3사가 러시아 기업과 맺은 LNG운반선 공급 계약 규모는 총 7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계약이 해지되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정부가 미국의 요구를 전면 수용하는 것이 한미동맹의 강화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일까? 우크라이나 사태와 한미동맹은 법적으로는 연관이 전혀 없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의 나토정상회의 참석은 가치와 규범을 토대로 하는 국제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나토 동맹국, 파트너국과의 협력을 강화한다는 데 의미가 있고 글로벌 중추국가로서 우리나라의 역할을 확대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참으로 한가한 이야기이다. 이번 나토정상회의 참석은 한국의 안보 비용을 증가시킬 것이 뻔하다. 주러시아 북한 대사가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을 다녀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러시아는 그간 자제했으나 북한에 대해 첨단 재래식 무기의 제공을 재개할 수도 있다. 나아가 러시아는 한반도의 안정을 위한 역할을 방기할 수도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러시아를 비롯한 유라시아 지역과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설치했던 북방경제협력위원회가 폐지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간 이 위원회가 얼마나 성과를 내었는지에 관계없이 그 존재 자체가 러시아에게는 의미가 있었다. 새 정부가 보여주고 있는 일련의 대러시아 행동으로 보아 노태우 대통령 시절부터 면면히 내려온 대러시아 정책의 기조가 무너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한국의 외교사고에서 러시아는 사라지고 있는 것인가? 9월에 박근혜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동방경제포럼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열리고, 11월에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G20 정상회의가 개최된다. 윤 대통령은 앞으로 푸틴 대통령을 만날 생각이 전혀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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