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유밸디에서 총기난사 희생자를 위한 기도회가 열린 가운데 희생자들 중 한 아이의 할머니가 손녀의 사진을 들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출처: 뉴시스)
25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유밸디에서 총기난사 희생자를 위한 기도회가 열린 가운데 희생자들 중 한 아이의 할머니가 손녀의 사진을 들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출처: 뉴시스)

코로나 100만명·총격 4만명

“예방 가능한 죽음 반복…

바꾸지 않고 용인하고 있어”

 

‘학습된 무력’도 비극 원인

“공직자들에게 정책 따져야”

과거 아동 노동·근로법 사례

[천지일보=이솜 기자] “미국인들은 항상 높은 비율의 죽음과 고통을 참아왔다. 그러나 예방 가능했던 사망자의 수, 변하지 않는 정책은 문제를 제기한다. 미국에서는 이제 대규모 사망이 받아들여지고 있는가?”

미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누적 사망자가 100만명을 넘어서고 뉴욕주 버팔로의 한 슈퍼마켓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한 주의 주말인 지난 21일(현지시간) AP통신이 제기한 의문이다.

보도 후 사흘 만에 텍사스 초등학교에서 총기 난사 사건으로 어린이 18명과 성인 2명이 숨지는 참사가 빚어지며 질문은 다시 던져졌다. 이제 미국에서는 이런 대규모 사망을 일상적으로 받아들이는가.

25일(현지시간) 폴리티코의 타일러 와이언트는 “대규모 총기 난사 사건은 미국의 비극이 복사 붙여넣기된 것”이라며 “장소, 마을, 사망자 및 부상자 수만 바뀐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생명을 잃고 다시는 돌아올 수 없으며 국가만 무감각하게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버팔로에서 총격 사건이 발생한 지 며칠 만에 텍사스주에서는 한 남성이 18살 생일(5월 16일) 다음 날 AR-15 반자동 소총 스타일의 돌격용 무기 1정과 AR 돌격용 소총 1정, 탄약 375발을 합법적으로 구입했다. 그리고 초등학생들에게 난사했다. 지난 사건 후 겨우 열흘 만이었다.

AP통신은 미국 사회가 코로나19로 인해 예방 가능했던 아이들의 죽음도 받아들이게 됐다고 지적했다. 소아과 의사 마크 W. 클라인은 최근 한 칼럼에서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자료를 인용해 코로나19가 어린이들에게 ‘무해하다’는 신화에도 미국 어린이 1500명 이상이 코로나19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클라인은 “소아과에서 아이들이 죽으면 안 되는 시기가 있었다”며 “허용할 만한 소아 사망자 수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라잔 교수는 코로나19에 대한 미국의 대응과 총기 폭력 확산에 대한 대응 사이에는 많은 유사점이 있다고 한다. 그는 “우리는 오랫동안 이 나라에서 대규모 죽음을 정상화시켜 왔다”며 “총기 폭력은 수십년간 공중보건 위기로 지속돼 왔다. 매년 10만명이 총격을 받고 4만명이 사망할 것으로 추산된다”고 전망했다.

그레그 곤살베스 미국 예일대 교수는 미국이 앞으로도 이와 같은 대규모 사망 사건을 용인하고 넘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곤살베스 교수는 AP통신에 “이 증거가 틀림없고 꽤 명확하다고 생각한다”며 “우리는 미국에서의 엄청난 수의 대학살과 고통, 죽음을 용인할 것이다. 지난 2년간 그래왔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25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의 국회의사당에서 총기 규제를 요구하는 시위가 열린 가운데 시위대가 피켓을 들고 있다. (출처: 뉴시스)
25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의 국회의사당에서 총기 규제를 요구하는 시위가 열린 가운데 시위대가 피켓을 들고 있다. (출처: 뉴시스)

◆“죽음 막기 위해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

미국에서 특히 사망률이 높은 지역들이 있다. 사망률을 연구하는 미네소타대 사회학 교수인 엘리자베스 리글리필드는 “미국에는 심각한 인종·계급 불평등이 있으며 죽음에 대한 관용은 부분적으로 누가 위험에 처해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어떤 사람들의 죽음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한탄했다.

관계 당국에 따르면 버팔로에서 총격범은 차별주의자로 가능한 한 많은 흑인을 죽이려고 했다. 이번 사건이 발생한 초등학교는 라틴계 주민이 모여 사는 텍사스주 소도시 유밸디에 위치해 있었다. 인종차별적인 사건은 아니었으나 희생자들은 4학년인 어린 아이들이었다.

버팔로 슈퍼마켓에서 숨진 희생자 중 한 명인 루스 휘스필트의 아들은 “당신들은 우리가 이런 일을 계속해서 당하기를 기대한다”라며 “우리가 선출하고 신뢰하는 이 나라의 공직자들은 우리를 보호하지 않고 우리를 평등하게 여기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비판했다.

폭력이 반복되는 동안 정치인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이런 인식은 많은 미국인들이 공유하고 있다.

학교 폭력을 연구하는 컬럼비아대 소날리 라잔 교수는 “주민들의 건강과 안녕을 돌볼 힘을 가진 선출직 공직자들이 어떤 정책을 내놓고 있는지 물어보는 게 중요하다”며 “어떻게 이런 책임이 포기됐는지 놀라울 따름”이라고 지적했다.

총기 폭력과 코로나19 모두 연구한 바너드대 라지브 세티 경제학 교수는 작년 미국에서 총기로 인한 살인 수(1만 9천명)보다 자살 수(2만 4천명)가 더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며 수정헌법 제2조의 범위 내 도움이 될 수 있는 정책 제안이 있음에도 총기 논쟁은 정치적으로 고착돼 있다고 말했다. 세티 교수는 “결과는 아무것도 안 했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브라운대 메건 래니 박사는 이를 ‘학습된 무력감’이라고 불렀다.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 총기 폭력 연구를 했던 응급실 의사인 래니는 “일각에서는 이런 것(총격, 코로나19 사망)이 불가피하다고 지속적으로 말해왔다”며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은 우리를 갈라놓는다”고 비판했다. 그는 사람들이 총, 코로나19, 오피오이드로 인해 사망한 사람들의 수를 정말로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전했다. CDC는 작년 10만 7천명 이상의 미국인이 약물 과다복용으로 사망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고 지난달 밝혔다.

래니 박사는 지난 세기에도 아동 노동법, 근로자 보호, 생식권 등에 대한 비슷한 논쟁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1980년대 에이즈 위기 때에도 백악관에서부터 이를 두고 농담을 했지만 운동가들이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도록 요구하고 정치인들에게 그들의 운영 방식을 바꾸도록 촉구하는 대중 운동을 벌였다고 역사를 강의하는 링글리 필드는 전했다.

필드는 “그것들(대중 운동)이 지금 테이블에서 제외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언제 나타날지 확실치 않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규모 사망에 대한) 포기가 영구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면서도 “그러나 이것이 지금 우리의 처지”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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