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우 부산환경교육센터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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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차나 전기차 보급을 늘리는 것보다 이산화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더 저감시킬 수 있는 전략이 없을까? 자전거 도로 시클로비아(콜롬비아에 있는 세계 최고의 차 없는 거리)나 오픈 스트리트를 손꼽는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걷기나 자전거와 같은 무동력 이동수단 만큼 좋은 게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에 못지않은 아이디어가 나왔다. 바로 주4일 근무제다.

최근 영국의 환경단체 플랫폼 런던은 “시간을 멈춰라(STOP THE CLOCK)-노동시간 단축의 환경적 혜택”이라는 리포트를 통해 아주 흥미로운 결과를 발표했다. 영국이 주4일 근무제로 전환하면 2025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연간 약 1억 2700만톤 가량을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는 영국 전체 온실가스 배출의 21.3%에 해당하는 양이며 개인승용차 2700만대가 도로에서 사라지는 것과 같은 효과라고 보고서는 추정했다.

주4일 근무제가 시행되면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분야는 출퇴근의 교통이었다. 런던의 경우 자전거길이 잘 발달돼 있지만 직장인 3분의 1이 이상이 승용차로 출퇴근하고 있다고 한다. 잉글랜드와 웨일스 지역의 노동자 63%도 자동차를 이용해 출퇴근을 하고 있다. 그런데 주4일 근무제로 전환하면 출퇴근 자동차의 운행거리가 매주 9억㎞ 줄어들 것으로 추정됐다.

보고서는 또 전력 소비량도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주4일 근무제를 도입함으로써 공장이나 사무실을 하루종일 완전히 닫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영국의 한 민간기업은 주중과 주말의 전기 소비 양태를 분석해, 주말 휴일이 3일로 늘어나면 에너지 소비 절감으로 매주 11만 7천톤의 온실가스가 추가로 줄어들 것으로 추산했다. 연간 1300만대의 자동차를 거리에서 줄이는 것과 같은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사실 근무시간 축소가 온실가스 배출을 감소시킬 것이라는 연구는 이미 2007년에 발표된 적이 있었다. 미국 워싱턴 경제정책연구소는 2007년 ‘국제보건서비스저널’에 미국이 유럽 수준으로 노동시간을 줄이면 온실가스 배출을 크게 감축할 수 있다는 내용의 연구 논문을 게재했었다. 반대로 유럽 사람들이 미국 사람들만큼 노동을 하면 에너지를 25% 더 사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세계 노동자들이 미국식 노동시간제를 따르면 유럽식을 따랐을 때에 비해 2050년까지 15~30%의 에너지를 더 소비할 것이고, 이를 이산화탄소 배출로 환산하면 지구 평균기온을 1~2도 높일 수 있는 양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2015년 스웨덴에서도 비슷한 연구가 있었다. 스웨덴 가정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노동시간이 1% 줄면 에너지 소비는 0.7%, 온실가스 배출은 0.8%가 줄어든다고 밝혔다. 결국 긴 노동시간은 더 많은 소비와 연관되고, 이는 이산화탄소 배출 증가로 이어진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다. 레딩대 연구에서 사람들은 추가 휴일이 주어지면 가족과 함께 지내거나 공원에 가고 봉사활동을 하며 심부름을 갈 때 차를 타는 대신 걸어가는 등 탄소를 덜 배출하는 활동에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시간의 단축은 장시간 노동에서의 해방을 통해 일과 삶의 균형, 일자리 나누기, 소득재분배, 노동자들의 집중력을 높이고 원기 회복에 도움을 줘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데도 매우 효과적이다. 게다가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강력한 대체 수단으로도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사실 본질적으로 따지고 보면 기후위기의 주범은 브레이크 없는 인간의 물질적 욕망과 이에 따른 자본주의적 생산활동과 삶의 양식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생산활동과 노동시간을 줄이면 그만큼 온실가스의 배출량도 줄어들 것이다. 적게 일할수록 그만큼 생산과정이 줄어드니 탄소발자국 또한 적어지는 건 상식이다. 이처럼 노동시간 단축은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효과적인 사회정책수단인 셈이다.

이러한 연유로 주4일 근무제에 대한 관심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유럽에서 가장 선발 주자는 아이슬란드라고 한다. 스페인은 전국적으로 시범에 들어갔으며, 스코틀랜드도 시범 도입을 자원한 수십개 회사들에 보조금을 주는 방식으로 실험을 하고 있다. 미국을 비롯 영국과 벨기에, 스페인, 아이슬란드 등은 주4일 근무제 법제화를 고려하고 있다.

또한 일본의 일부 금융기업, 마이크로소프트나 영국의 기업 유니레버는 일부 매장에서 주4일 근무제를 도입했다. 주요 동인은 직원들의 복지 차원이지만, 일부 회사들은 환경 영향을 감소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고 플랫폼 런던 보고서는 밝히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에듀윌, 카카오게임즈 등이 현재 주4일제를 추진하고 있다.

이제 우리도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탄소중립 실현과 워라벨(Work-life balance)을 통한 삶의 질 향상이라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기대되는 주4일 근무제를 진지하게 검토해볼 시기가 온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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