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5월을 상징이나 하듯 5일 어린이날을 맞았다. 소파 방정환 선생은 1921년 천도교 소년회를 조직해서 국내 처음으로 ‘소년 운동’을 펼쳤다. 아이들도 인격을 갖춘 사회 구성원으로서 존중돼야 한다는 의미로 ‘어린이’라는 개념도 도입했다. ‘어르신’에 대비되는 아이들의 존칭으로 ‘어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새싹이 돋아나는 5월의 첫날을 어린이날로 정했다가 해방 이후 5월 5일로 변경돼 오늘에 이른 것이다. 딱 100주년이다. 엄혹했던 일제강점기에 어린이들에 대한 사랑과 존중을 인식하고 직접 행동으로 옮긴 소파는 참으로 훌륭한 선각자였음에 분명하다.

1957년 2월 발표된 ‘어린이헌장’은 어린이들의 인권과 복지, 나라의 미래를 이끌 성장상 등을 제시하고 있다. “모든 어린이가 차별 없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니고, 나라의 앞날을 이어나갈 새사람으로 존중되며, 아름답게 씩씩하게 자라도록 함을 길잡이로 삼는다”고 밝히고 있다. 지금 읽어보면 너무도 당연한 얘기 같지만, 일제강점기 때의 소년 운동, 한국전쟁 이후의 고달팠던 국민의 삶을 감안한다면 감동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어린이날 100주년을 맞은 2022년 오늘의 우리 현실은 너무나 열악하다. 어린이헌장의 그 간명한 선언마저 이상적으로 보일 정도다. 물론 선진국이 된 대한민국의 어린이를 100년 전의 모습과는 비교할 수도 없다. 문제는 엄청난 학습과 지나친 경쟁에 내몰리면서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우리 어린이들의 비율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점이다. 심지어 아동학대나 생활고에 내몰린 아이들도 적지 않다. 그리고 이들에 대한 사회복지 투자는 OECD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어린 시절의 행복은 커서 어른이 돼서도 삶의 행복을 말하는 바탕이 된다. 아동기의 행복이 인생의 기초를 형성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그렇다면 어린이는 당연히 행복해야 한다. 인권과 복지는 물론 반듯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담보돼야 한다. 어린이헌장의 취지도 이와 같다. 어린이가 행복하면 어른들도 행복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현실은 우리 아이들의 행복을 저해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무엇보다 맘껏 뛰어놀 수 있는 조건이 되질 않는다. 무한경쟁과 혹독한 학습량은 스트레스 그 자체일 것이다. 당연히 어린이들도 시간이 없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어른들의 관용도 부족하다. 특히 인권과 복지, 사회적 관심의 사각지대에 있는 어린이들도 적지 않다. 아동폭력 사건은 끊이질 않는다. 이런 현실에서 어린이날 100주년을 맞아 다시 읽어보는 어린이헌장은 마음 한켠으로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숨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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