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한파가 몰아치던 한겨울에 경기도 포천의 한 숙소용 비닐하우스 기숙사에서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 속헹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질병으로 인해 숨졌다는 소식이 나왔지만, 질병 외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엄청난 고통을 받았다는 동료들의 얘기가 많았다. 당시 이 지역에는 영하 20도에 육박하는 맹추위가 닥쳤으나, 숙소에는 난방이 가동되지 않았다고 한다. 캄보디아에서 온 속헹씨는 더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심지어 5년 가까이 일하면서 직장 건강검진도 한 번 받지 못했다고 했다.

속헹씨 유족 측은 사망 1주기인 지난해 12월 20일 근로복지공단에 유족보상금과 장례비 등이 포함된 산재 보상금을 신청했다. 이에 근로복지공단도 속헹씨가 업무상 질병에 의해 사망했다고 판단하고 산재 승인을 결정한 것이다. 만시지탄이다. 이주노동자 기숙사 산재사망 대책위원회도 3일 논평을 내고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 속헹씨가 사망한 지 2년 5개월 만에 산업재해 승인이 결정됐다”며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국내 이주 인권단체 등도 정부의 산재 승인 결정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사실 국내 이주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 되었으며, 민주주의와 인권에서도 선진국 대열에 올라선 대한민국에서 특히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빈곤했다. 주로 동남아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을 ‘기회의 땅’으로 생각하고 어렵게 한국 땅을 밟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녹치 않았던 것이다. 물론 이전보다 훨씬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고되고 위험한 노동은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속헹씨처럼 한겨울에도 비닐하우스 기숙사 등에서 온 몸으로 추위를 견뎌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주노동자들은 힘들고 고된 노동은 감수하더라도 죽음에 내몰리게는 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좋은 숙소는 아니더라도 비닐하우스나 임시 가건물에서 겨울을 버티기는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복지 혜택은 몰라도 최소한 건강보험이라도 가입케 해서 아프면 병원이라도 찾을 수 있게 해달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사업주의 ‘갑질’에 대한 최소한의 견제장치라도 마련해 달라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오죽했으면 우리는 ‘기계나 노예가 아니다’는 말까지 할까 싶다. 이제는 정부가 답해야 한다. 마침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있다.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시급하다는 얘기다. 이번 속헹씨의 산재 승인을 계기로 이주노동자들의 꿈이 조금이라도 더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정부를 비롯한 국민적 관심이 매우 필요한 시점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