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복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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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만큼 동 시대에 다양한 이름을 가진 물고기는 없을 것이다.

‘행어(行魚)’ ‘추자(鰍者)’ ‘추어(鯫魚)’ ‘이추(鮧鰌)’ ‘용어(沌魚)’ ‘징어(徵魚)’ ‘멸어(蔑魚)’ ‘며어(旀魚)’ ‘멸아(鱴兒)’ ‘몃’ 등이 있다.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地理志)의 함경도 예원군(預原郡)과 길주목의 토산과,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제주목 정의현(旌義縣)과 대정현(大靜縣)의 토산으로 실려 있는 행어(行魚)를 멸치로 보기도 한다.

조선 후기의 학자인 오주(五洲) 이규경(李圭景, 1788~1863)이 쓴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有小魚如鰍者, 曰蔑魚, 或稱旀魚(유소어여추자, 왈멸어, 혹칭며어) 작은 고기가 있는데 추자라 한다. 멸어라고 하며, 혹 며어라고도 한다’라고 나온다.

그리고 한 그물로 만선하는데 어민이 즉시 말리지 못하면 썩으므로 이를 거름으로 사용한다고 했고, 마른 멸치는 날마다 먹는 반찬으로 삼는다고 했다. 그리고 중국과 우리나라의 온(鰮)은 속칭 멸어라고 하며 회를 할 수 있고, 구워 먹을 수 있고, 말릴 수 있고, 기름을 짜기도 하는데 한 그물로 산더미처럼 많이 잡는다고도 했다.

조선후기 김려(金鑢, 1766~1822)가 진해(鎭海) 앞바다의 해상 생물을 연구해 펴낸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에서는 멸아(鱴兒), 조선후기 실학자 손암(巽庵) 정약전(丁若銓, 1758~1816)이 흑산도에 귀양을 가서 쓴 ‘자산어보(玆山魚譜)’에서는 멸어라 했고 한자어로 추어(鯫魚)라 했다. 1798년(정조 22) 이만영(李晩永, 1789~1828)이 편찬한 백과사전류 ‘재물보(才物譜)’ 용어(沌魚)로 조선 후기 실학자 풍석(楓石) 서유구(徐有榘, 1764~1845년)가 쓴 ‘전어지(佃漁志)’에서는 몃이라 했다.

그러나 ‘일성록(日省錄)’ 정조 17년(1793) 5월 27일에 보면 경상 감사 정대용(鄭大容)의 장계에 ‘며어(旀魚 멸치)를 항구에서 잡는 자는 소잡어세(小雜魚稅)를 내는데’라고 나온다.

뿐만 아니라 지금은 어디인지 몰라도 거제도(巨濟島)에 헌종(憲宗)때 며어포(旀魚浦)로 불리는 곳이 있었다.

‘각사등록(各司謄錄)’에 수록된 ‘통제영계록(統制營啓錄)’ 헌종(憲宗) 13년(1847) 3월 23일 승정원 개탁에 ‘어느 날 경상도(慶尙道) 거제도(巨濟島) 며어포(旀魚浦)에 가서 어물(魚物)을 사서 싣고 11월 초4일에 순천 왜교(倭橋)로 가서 팔았습니다’라고 나온다.

멸치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한 한 것은 ‘균역행람(均役行覽)’으로 영조 26년(1750) 말 “전라도 균역사(均稅使)의 품의(稟議)에 멸치망(滅致網)”이라는 것이 보인다.

멸치(蔑致)는 물 밖으로 나오면 바로 죽어버린다 하여 붙인 이름으로 멸어(蔑魚), 멸치어(蔑致魚)에서 비롯됐다.

조선시대 서유구(徐有榘, 1764∼1845)가 1820년 어류에 관해 저술한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에는 멸치를 한자로 이추(鮧鰌)라고 쓰고 한글로는 ‘몃’이라고 쓰고, 멸치는 동·남·서해에 모두 있다는 것과 동해의 멸치가 방어에 쫓겨 대량으로 몰려올 때에는 그 세력이 바람·물결과 같아서 어부는 이를 보고 방어가 온 것을 안다는 것, 큰 그물로 이를 포위해 잡으면 온 그물이 모두 멸치로 차므로 그 중에서 방어를 골라내고 멸치는 사둘(攩網)로 퍼내어 모래사장에서 말려 육지에 파는데 값이 한웅큼에 1전이라는 것, 비가 계속 내려 부패될 때에는 비료로 쓴다는 것, 서·남해산은 동해에서 많이 생산되는 것보다는 못하나 역시 나라 안에 흘러넘치고 야인(野人)이 먹는 식품이 된다는 것 등이다.

경남 고성(固城) 사람인 월봉(月峰) 구상덕(具尙德, 1706~1761) 선생이 쓴 ‘승총명록(勝聰明錄)’ 영조 2년 병오년(1726년) 5월 7일(무술)의 일기다.

“날씨가 청명하고 미풍이 불었다. 속설에 도미어(道味魚)가 많으면 흉년이 든다고 했는데, 지난해 도미어와 오징어(烏賊魚)가 많았고, 지지난해 징어(徵魚 멸치)가 많았는데 과연 흉년이 들었다. 금년 이러한 물고기가 없으니, 이 또한 길조인가. 또 올해 봄비가 순조롭고 적절하여 농사짓는 집에서는 가뭄 걱정이 없으니 다행스럽다. 저녁에 동풍이 한 무리 구름을 불어와 벽방산 꼭대기를 가렸다”라고 돼 있다.

방언도 다양해 제주도에서는 행어, 남해안에서는 멸오치나 메레치, 전남에서는 멸이라 한다. 또 강릉에서는 큰 멸치를 앵매리, 포항에서는 중간 크기 것을 드중다리 멸치 또는 중다리, 작은 것을 사와멸치 또는 눈퉁이라 부르며 진도에서는 국수멸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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