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AP/뉴시스] 키릴 러시아 정교회 총대주교가 6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의 구세주 그리스도 성당에서 크리스마스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모스크바=AP/뉴시스] 키릴 러시아 정교회 총대주교가 6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의 구세주 그리스도 성당에서 크리스마스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러시아 정교회 키릴 총대주교

푸틴의 우크라 침공 합리화

“중재자 역할 기대 어려워”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김민희 수습기자] 러시아 정교회 키릴 대주교에 대해 비난이 거세지고 있다. 급기야 러시아 정교회에서 이탈한 교회까지 나왔다. 키릴 대주교가 ‘형제살해의 피 흘림’을 막을 수 있는 평화의 사자 역할을 사실상 포기한 채, 우크라이나 침공을 주도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적극 옹호하며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합리화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정치와 밀접하게 연관된 러시아 정교회가 전쟁의 중재자 역할에 나서기엔 어려울 거라고 보고 있다.

최정화 서울대 박사는 22일 한국종교문화연구소에 기고한 ‘우크라이나 전쟁을 합리화하는 러시아 정교회 수장’이란 제목의 글에서 “푸틴은 러시아 정교회를 국가 정체성의 중요한 구심점으로 활용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정교회 신자들은 키릴이 푸틴을 향해 전쟁을 멈춰 주길 호소하는 담화를 기대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세계교회협의회(WCC)는 지난 2일 키릴 총대주교에게 “희망이 없는 시대에 많은 사람이 당신을 평화로운 해결을 위한 희망의 표지를 물어다 줄 사람으로 보고 있다”며 “부디 수난받는 형제자매를 위해 목소리를 크게 내달라. 우크라이나 국민 대부분도 정교회의 신실한 구성원들”이라고 호소하는 내용이 담긴 공개서한을 발송하기도 했다.

전쟁의 부당과 화해에 대해서 푸틴을 향해서 전쟁을 멈춰 주기를 호소하는 담화를 기대했지만 전 세계 교회와 신자들의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키릴 총대주교는 지난 6일 모스크바에서 연 설교에서 이번 전쟁에 대해 ‘게이 프라이드(성 소수자 권익 증진)’를 지지하는 곳과 반대하는 곳 가운데 하느님의 인간성이 어느 쪽에 머물지를 둘러싼 분쟁이라고 주장했다. 프라이드 행진은 게이·레즈비언·양성애자·성전환자·퀴어 등 성 소수자를 사회적으로 포용하자는 취지로 개최하는 행사다.

또 이날 키릴 총대주교는 프라이드 행진이 서방국가에 충성심을 보여주기 위한 시험대로서 우크라이나를 갈라놓았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최 박사는 “러시아가 형제의 영토에 들어갈 수 있는 주요 이유 중 하나로 우크라이나의 친서방 행보로 인한 도덕적 타락을 꼽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는 우크라이나 침략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서방 세력에 물이 들어서 도덕적인 면에서 ‘타락’한 우크라이나에 대한 응징이자 일종의 교정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와 서방국가를 ‘죄악’으로 규정하는 러시아 정교회 수장의 태도는 향후 사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최 박사는 “러시아 정교회로부터 독립돼가는 우크라이나 정교회의 독자적 노선을 더 공고히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러시아는 정치와 종교 양쪽에서 우크라이나를 강력히 단죄하고 있다”며 “러시아의 정교회 수장은 정치의 꼭두각시가 됐다고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강하게 누를수록 더 거세지는 법이다. 우크라이나인들은 정치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점점 더 러시아와 멀어질 것”이라고 했다.

한편 우크라이나 정교회 성직자들도 러시아 정교회 수장에 대해 강하게 저항하고 있다. 모스크바 소속의 우크라이나 정교회(UOK-MP) 소속 수미교구의 성직자들은 최근 키릴 대주교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앞으로 모스크바 총대주교를 상관으로 언급하지 않겠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더불어 앞으로는 총대주교를 위한 기도도 멈추겠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최 박사는 “군사적 투쟁보다 소극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현재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의 성직자들이 러시아 정교회 수장에게 보일 수 있는 최대치의 분노를 토로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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