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청주고인쇄박물관은 1992년 3월 17일 옛 흥덕사 터 위에 개관해 올해로 30주년을 맞이하고 있다. 청주고인쇄박물관 전경 모습. (제공: 청주시) ⓒ천지일보 2022.3.15
충북 청주고인쇄박물관은 1992년 3월 17일 옛 흥덕사 터 위에 개관해 올해로 30주년을 맞이하고 있다. 청주고인쇄박물관 전경 모습. (제공: 청주시) ⓒ천지일보 2022.3.15

청주고인쇄박물관

 

현존하는 最古 금속활자본

직지의 선구자 박병선 박사

긴 노력 끝에 ‘직지’ 인정받아

 

흥덕사 적힌 청동 금구 증거

금속활자의 증거 ‘인쇄특징’

“종이와 먹의 발전도 가져와”

[천지일보 청주=이진희 기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된 ‘직지’. 세계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으로도 알려진 ‘직지’는 인류문화 발전사에 가장 큰 공헌을 한 금속활자가 고려 시대에 발명된 것을 증명한다. ‘직지’가 세계적으로 인정받기까지는 박병선 박사의 노력이 많다. 박 박사는 한국 여성 최초로 비자를 발급받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다.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서로 일하게 된 그는 프랑스 국립도서관 동양문헌실에 있던 직지를 발견하고 “약탈된 고서들을 찾아봐라”는 은사의 말에 따라 오랜 시간 연구한 끝에 한국 고서 ‘직지’에서 ‘1377년 금속으로 찍은 활자본’이라는 구절을 발견하게 된다. 그의 노력으로 마침내 1972년 파리 국제 도서전에 참가해 직지심체요절이 세계 현존하는 최고의 금속활자본임을 발표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직지와 관련된 역사와 모형본을 청주고인쇄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고인쇄박물관은 올해로 30주년을 맞이한다. 이에 본지는 최근 고인쇄박물관을 찾아 선조들의 위대한 발명인 ‘직지’에 대해 알아봤다.

◆청주에 세워진 고인쇄박물관

청주에는 오래된 사찰이 하나 있었다. 고려사에도 존재하지 않는 작은 사찰의 이름은 ‘흥덕사’다. 1984년 국가 시책으로 공업단지를 조성하던 중 포크레인에 청동 금구가 찍혀 나오게 되면서 사찰의 위치가 드러났다. 청동 금구는 예불 시간을 알려주는 일종의 종이다. 이 종에 찍힌 ‘흥덕사’라는 이름으로 그곳이 흥덕사임이 밝혀졌다.

이를 계기로 1986년 ‘청주 흥덕사지 학술회의’가 열리고 흥덕사가 학계에 인정을 받게 된다. 이후 1992년 흥덕사 터 위에 청주고인쇄박물관이 개관했다. 2001년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직지를 등재함으로 그 가치를 세계적으로 공인받게 된다.

둥글둥글한 지붕이 유독 눈에 띄는 고인쇄박물관은 총 3개의 관으로 구성돼 있다.

[천지일보 청주=이진희 기자] 충북 청주고인쇄박물관 제1전시실에 직지 상·하권 활자판 78장을 전통 주물기법인 밀랍주조법으로 복원해 책 모양으로 배열한 조형물이 있다. ⓒ천지일보 2022.3.15
[천지일보 청주=이진희 기자] 충북 청주고인쇄박물관 제1전시실에 직지 상·하권 활자판 78장을 전통 주물기법인 밀랍주조법으로 복원해 책 모양으로 배열한 조형물이 있다. ⓒ천지일보 2022.3.15

제1전시관에는 ‘직지’를 중심으로 고려의 금속활자 인쇄술과 청주 흥덕사 관련 자료가 전시돼 있다. 직지 상·하권 활자판 78장을 전통 주물기법인 밀랍주조법으로 복원해 책 모양으로 배열했으며 비록 조형물이었지만 웅장하고 경이로움이 느껴진다.

제2전시관은 고려의 목판 인쇄술로부터 19세기 말까지 우리나라 전통 인쇄문화 전반을 소개하며 제3전시관은 동·서양의 옛 인쇄문화를 알려주는 공간이다. 일본·중국의 인쇄문화와 더불어 구텐베르크 ‘42행성서’로 대변되는 유럽의 인쇄문화를 볼 수 있다.

하지만 구텐베르크의 ‘42행성서’보다 우리나라의 금속활자를 사용한 ‘직지’가 78년이나 앞섰다. 인류사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 금속활자의 발명을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해낸 것이다.

◆불교의 가르침을 기록한 ‘직지’

직지의 정식 명칭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이다.

고려시대 백운경한(白雲景閑, 1298~1374) 스님이 석가모니와 역대 조사(祖師) 스님들의 법어와 어록 등에서 선(善)의 요체를 깨닫는데 필요한 내용만 발췌해 엮은 책으로 이름을 줄여 ‘직지’라 불렀다. 1372년 성불산 성불사에서 145가(家)의 법어를 가려 상·하 두 권으로 ‘직지’를 편집해 저술했다.

이후 백운스님의 제자 석찬과 달담이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직지를 금속활자로 간행했다. 직지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자 여주 취암사에서는 목판으로 직지 상·하권을 한 권으로 인쇄하기도 했다. 목판으로 인쇄된 것은 현재 국립중앙도서관과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및 영광 불갑사에 소장돼 있다. 금속활자본만으로는 알 수 없는 체제나 내용을 목판본을 통해서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천지일보 청주=이진희 기자]충북 청주시 금속활자전수교육관에서 임인호 국가무형문화재 제101호 금속활자장이 주물사주조법을 시연하고 있다. 주물사주조법은 나무에 글자를 새겨 어미자를 만들고 주물사에 거푸집을 만들어 그 사이에 쇳물을 부어서 활자를 만드는 방법이다. ⓒ천지일보 2022.3.15
[천지일보 청주=이진희 기자]충북 청주시 금속활자전수교육관에서 임인호 국가무형문화재 제101호 금속활자장이 주물사주조법을 시연하고 있다. 주물사주조법은 나무에 글자를 새겨 어미자를 만들고 주물사에 거푸집을 만들어 그 사이에 쇳물을 부어서 활자를 만드는 방법이다. ⓒ천지일보 2022.3.15

백재순 해설사는 “직지가 금속활자인 증거는 인쇄특징에서 찾아볼 수 있다”며 “본문의 항렬(行列)이 비뚤어져 있으며 글자가 옆으로 비스듬하게 기울어져 있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 “묵색((墨色)의 농도 차이가 심하고 반점이 나타나 있는 경우가 많다”며 “일(日)이나 일(一) 등 아예 거꾸로 된 식자도 있고 인쇄 도중에 탈락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또 “금속활자의 발명은 금속에 맞는 종이와 먹의 발전도 가져왔다”고 덧붙였다.

안타깝게도 직지는 우리나라에 있지 않고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 동양문헌실에 소장돼 있다. 우리나라 직지가 어떻게 프랑스까지 가게 됐을까. 이에 대해 백 해설사는 “1886년 한불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 후 초대 주한 프랑스 공사로 부임한 꼴랭 드 쁠랑시(Collin de Plancy, 1853∼1922)가 우리나라에 근무하면서 고서 및 각종 문화재를 수집했는데 그 속에 직지가 포함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박물관 앞에서 만난 김경희(가명)씨는 “비록 직지 원본을 볼 수 없지만 금속활자 최초 발명국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며 “박물관 근처에 산책도 할 겸 자주 찾는 곳”이라고 웃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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