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 청렴연수원 청렴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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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단재 신채호).’

1898년 9월에 무술변법이 좌절되자 일본으로 망명한 양계초(1873~1929)는 1910년 9월 14일 상해에서 발행한 ‘국풍보’에 ‘조선 멸망의 원인’을 게재했다. 글은 계속된다.

“조선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관념이 매우 박약하다.… 벼슬하는 사람들 또한 그러하다. 다만 오늘 벼슬을 하고 권세가 있으면 내일 나라가 망하더라도 상관할 바가 아니다.… 이번에 합병조약이 발표되자 이웃 나라의 백성은 오히려 조선을 위해 흐느껴 울며 눈물 흘렸는데, 조선 사람들은 술에 취해 놀며 만족했다. 더구나 고관들은 날마다 출세를 위한 운동을 하고, 새 조정의 영예스러운 작위를 얻기를 바라며 기꺼이 즐겼다.… 대체로 조선 사회에서는 음험하고 부끄러움이 없는 자가 번성하는 처지에 놓였고, 정결하고 자애하는 자는 쇠멸하는 처지에 놓였다. 사람들이 악을 행하는 것은 반드시 천성에서 나온 것은 아니며, 과반수는 사회현상이 핍박해 그렇게 한 것이다.”

양계초는 조선은 썩어 문드러져 스스로 망한 것이라고 논평했다.

“조선 백성은 본래 안일을 탐해 생산에 종사하지 않고, 정부는 또 착취를 그치지 않으니 농민들은 1년 내내 부지런히 움직여도 먹을 것을 얻지 못했다. 관리들은 후임자가 정해지지 않은 공석(空席)을 파는 것을 공공연하게 거리낌 없이 했다.… 대체로 조선 정치의 문란함은 다스릴 수도 없고, 썩어 문드러져 가까이 갈 수도 없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어지러움을 도모함에 부지런히 힘쓰고, 분발해 스스로를 죽이는 것이었다.… 조선이 망하는 길을 취하지 않았다면 비록 100개의 일본이라고 하더라도 저들이 어찌하겠는가? 스위스·네델란드·벨기에를 보지 못했는가? 국토 면적과 인구가 모두 조선보다 훨씬 못하지만, 유럽의 여러 강국이 그들을 멸망시킬 수 없었다. 이런 까닭에 조선을 망하게 한 것은 조선이지 일본이 아니다. 무릇 조선 사람들은 망하는 것을 스스로 즐겼으니, 또한 무엇을 가엾게 여기겠는가? 저들로 인해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두 차례의 전쟁이 일어나, 세 나라의 백수십만명의 생명을 죽이고 세 나라의 인민이 피땀으로 만들어낸 자원을 전쟁 비용으로 짜냈다. 일본 사람들은 이를 얻어 그 대가가 물론 적지 않았다. 그러나 큰 손실을 입어서 영원히 회복할 수 없게 된 청나라와 러시아는 조선의 장례를 거들었다. 아! 이제 조선은 끝났다. 황실의 위엄이 어디 있으며, 관리의 권세가 어디 있으며, 양반의 가문이 어디 있으며, 백성의 기름을 짜내서 이룬 경복궁이 어디 있으며, 삼청동의 여러 민씨의 웅장하고 아름다운 저택들이 어디 있으며, 일진회·대한협회가 어디 있으며, 뇌물을 쌓고 쌓던 허리춤 전대가 어디 있겠는가? … 오직 한 매국노의 이름을 사적(史籍)에 길이 남겨 만세에 비웃음과 욕을 먹게 됐다. 이제는 모두 재처럼 타다가 날라가 버렸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 그랬던가? 그런데도 조선 사람들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량치차오 지음·최형욱 엮고 옮김, 량치차오, 조선의 망국을 기록하다, 2014, p 98-105).”

이처럼 양계초는 조선은 국왕에서부터 정부 관리 그리고 백성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망국의 길을 자초했다고 평가하면서 중국인들에게 각성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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