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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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가운데 문화 할인율(Cultural Discount)이 높은 분야가 바로 예능 프로그램이다. 문화 할인율은 한 문화권에서 다른 문화권으로 문화 상품이나 콘텐츠가 이동했을 때 문화 차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 가치가 낮게 평가되고 받아들여지는 현상을 말한다. 문화적 배경이나 맥락은 물론이고 기초지식조차 없기 때문에 이해와 공감을 하지 못하는 현상이다. 예능의 경우 이른바 문화 코드가 다르기에 받아들이기 힘들다.

심형래 감독의 ‘라스트 갓파더(The Last Godfather)’는 2010년 12월 29일 국내에서 개봉됐는데 한국의 흥행은 나쁘지 않아서 256만명을 기록했다. 흔히 이 영화를 영구와 땡칠이 웃음 코드라고 했지만, 이는 어느 정도 통하고 있었다. 물론 고상한 문화 전문집단은 다르게 봤을 것이다. 그들이 영구와 땡칠이를 명작으로 보지 않을 때 엄청난 흥행을 한 바가 있다.

그런데 미국 전역에서 이 영화가 개봉을 했는데 참패를 하고 말았다. 현지 영화 평론가들도 혹평을 내렸다. 비록 갓파더(대부)의 패러디 영화라는 콘셉트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웃음 코드는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 시대에는 어떨까. 2021년 6월 ‘논스톱’ 시리즈와 ‘하이킥’ 시리즈 제작진이 참여했다는 것만으로도 크게 화제가 된 ‘내일 지구가 망해버렸으면 좋겠어’는 단번에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큰 기대는 큰 실망으로 되돌아왔다. 웃음 코드에 대한 부담은 다문화 코드에 의존하게 했다. 국제기숙사에서 8명의 캐릭터가 등장해 스토리를 만들어 갔지만 어수선했고 어느 캐릭터에 몰입을 해야 할지 난감했다. 로컬을 통한 보편성을 추구하는 넷플릭스 문화 전략의 배경에서 봐도 이질적이었다.

예능에서 뜻하지 않게 글로벌 트렌드를 일구어낸 것은 역시 영원한 예능의 핫 아이템인 사랑의 작대기였다. 한국에서는 논자에 따라서 매우 민감하게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연애 데이팅 프로그램은 확실히 마니아층을 가지고 있었다. 아니 그것은 넷플릭스의 기본전략이라는 점을 모르는 이들이 드물다.

물론 일반적인 짝짓기 프로그램과는 다른 점이 있었다. 첫 번째는 일반인들이기는 하지만 일반인이 아니었다. 참여자들은 스스로 자존감이 매우 깊거나 높은 이들이었다. 자기 스스로 외모뿐만 아니라 철저한 자기관리에 대한 자부심이 충만해 있었다. 패자부활전 같은 느낌은 오히려 국내에서만 맞을 뿐이었다. 대리 충족이라는 대중문화 속성에 충실했다.

셀럽 효과도 작용했다. 논란을 많이 일으키기는 했지만 송지아 같은 핫한 출연자도 있었다. 역시 주목받는 캐릭터가 있는 것은 대중적 주목을 끌어내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비록 짝퉁이나 10대 교복 성 상품화 논란이 있음에도 말이다. 동양적인 정서도 있다. 직접적인 육체적인 접촉이 이뤄질 수 있는 섬이라는 제한 공간 그리고 호텔 공간이라는 로맨틱한 공간임에도 정신적인 교감과 정서적 터치를 통해 감각적인 설렘과 기대감을 충만하게 했다.

액자식 관찰 토크 예능을 결합하면서 미묘한 심리들을 잡아내 부각하면서 더욱 흥미를 유발했다. 커플이 돼야 지옥도를 탈출할 수 있다는 연대와 공동체성도 한국적이어서 연애 게임에서 차별화되는 요소이다. 문화 할인율을 줄이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언어를 남발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해외에 나갈 때 말이 많은 코미디물은 더욱 호응을 받기 힘들다. 스탠딩 코미디는 말할 것이 없다. ‘솔로 지옥’이 자막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사용했던 것도 이에 부합한다. 자막을 통해서 깨알 같은 재미를 주려고 하는 국내 예능과는 다른 접근을 했다. 연애 데이팅 예능은 상황이 주는 흥미 요소에 이성 간의 선택이라는 본능적인 욕구 코드가 작용하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가 있다. 영화나 드라마가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는 것에 비해서 훨씬 더 저렴하다. 우리 드라마나 영화가 가성비가 좋다는 말을 많이 듣는데, 예능까지 성공하면 더욱더 가성비가 좋다는 브랜드 효과를 구축하게 된다. 더구나 출연자들은 유명한 스타들도 아니다. 오히려 제작진들이 더 많은 몸값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결국 보편적 아이템과 포맷에 우리만의 남다른 아이디어와 시도의 실현이 성공 사례들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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