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5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심판정에서 열린 'SK실트론 사익편취 의혹' 사건 전원회의에 출석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5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심판정에서 열린 'SK실트론 사익편취 의혹' 사건 전원회의에 출석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인수 당시 정당한 검토 없이 지분 양보

당시 장동현 SK㈜ 대표, 내년 부회장 승진

SK, 이후 대응 예고… ‘재벌 봐주기’ 지적도

[천지일보=이우혁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SK㈜에 각각 8억원씩 총 16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SK㈜가 SK실트론을 인수할 때 최 회장이 지분을 얻도록 도왔고, 그 결과 최 회장이 SK㈜의 사업기회를 가로챘다는 판결이 나오면서다.

다만 일각에선 ‘전형적인 재벌 봐주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 고발 조치도 없었고, 최 회장의 주식이 2000억원 가까이 올랐지만, 과징금은 0.4% 수준인 8억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22일 공정위는 최 회장에게 ‘사업기회’를 제공한 SK㈜와 이를 수수한 최 회장에게 이후 위반행위 금지명령과 과징금 8억원씩을 부과했다. 최 회장이 지난 2017년 비서실을 통해 당시 LG실트론 인수 의사를 드러냈고, SK㈜는 상당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회사의 사업기회를 정당한 검토 없이 그룹의 총수에게 양보했다는 판결이 나오면서다.

이 과정에서 최 회장은 지난 2017년 실트론의 주식 29.4%를 헐값에 사들였고, 공정위의 추산에 따르면 최 회장이 이때 사들인 실트론의 지분 가치는 3년 만에 1967억원 가까이 올랐다.

◆SK㈜, 긍정적 전망에도 최태원에 지분 30% 양보

공정위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SK㈜는 반도체 분야 사업 강화를 위해 지난 2017년 1월 반도체 웨이퍼 생산업체인 LG실트론의 주식 51%를 인수했다. 이후 SK는 주주총회 특별결의 요건 충족을 위해 같은 해 4월 잔여 지분 49% 중 19.6%를 추가 매입해 70.6%를 가진 대주주가 됐다.

문제는 이후 우리은행 등이 보유한 남은 지분 29.4%를 SK㈜가 아닌 최 회장이 단독으로 매입하면서 발생한다. 당시 SK는 실트론의 가치가 1조 1000억원에서 3년 후인 지난해 3조 3000억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SK는 추가 지분 취득을 포기했고, 이를 최 회장에게 양보했다.

사건 행위 사실의 흐름. (제공: 공정거래위원회)
사건 행위 사실의 흐름. (제공: 공정거래위원회)

이는 사업 기회를 그룹 총수인 최 회장이 가져가는 ‘이익충돌’ 상황이었으나 이사회 승인 등 상법상 의사결정 절차도 거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SK는 장동현 SK 대표이사의 결정만으로 사업기회를 포기했고, 지난 2일 장 이사를 사장에서 부회장으로 승진시킨다는 임원인사를 발표됐다. 또 이 과정에서 SK 측에선 총수인 최 회장의 지분 인수를 돕고, 경쟁자들의 실트론 실사 요청을 거절하기도 했다.

시민단체인 경제개혁연대가 2017년 말 총수 일가 사익편취 의혹을 제기하면서 시작된 이번 사건은 공정위가 SK㈜와 최 회장에게 위법성 인정 결론을 내리면서 일단락됐다.

◆공정위 결론 나왔지만, 반응은 ‘각양각색’

이날 공정위는 결론을 내렸지만, SK 측과 업계에선 각기 다른 반응이 나온다.

먼저 SK는 이 같은 결정에 “납득하기 어렵다”며 “향후 대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SK는 이날 “자사가 그동안 SK실트론 사건에 대해 충실하게 소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납득하기 어려운 제재 결정이 내려진 데 대해 유감”이라며 “의결서를 받는 대로 세부 내용을 자세히 검토한 후 필요한 조치를 강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재계에선 공정위의 판결을 두고 “총수의 계열사 지분 투자 자체는 경영 판단의 영역인만큼, 법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무리”며 “이 같은 사안이 문제가 될 경우 이를 제기하는 것은 정부가 아닌 주주들이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반도체 업계에서도 공정위의 판결과는 달리 당시 LG실트론은 미래를 보장할 수 없는 기업이라 SK가 최 회장에게 사업기회를 제공했다고 보는 것은 애매하다고 설명한다. 당시 실트론의 실적이 좋을 것이란 전망이 확실했다면, LG가 실트론을 SK에 매입비보다 싸게 팔진 않았을 것이라는 의문에서다.

한편 일각에선 공정위의 이번 조치가 ‘전형적인 재벌 봐주기’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발표에선 검찰 고발 조치가 빠졌고, 과징금도 최 회장이 거둬드린 수익에 비해 터무니없다는 지적이 나오면서다.

공정위는 미고발 사유에 대해 ▲위반행위가 절차 위반에 기인한 점 ▲정도가 중대·명백하지 않은 점 ▲최태원 회장이 직접 지시했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없다는 점 ▲법원에 선례가 없는 점 등을 고려해 이 같은 판단을 내렸다고 밝혔다.

특히 과징금의 경우 매출액 등 산정이 어려워 기존의 ‘정액 과징금’으로 부과했다고 밝혔다. 공정거래법상 주식을 파는 등의 매출이 없는 경우 20억원의 한도 내에서 과징금을 부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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