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용산구 서계동의 허름한 주택가 사진. 주민들은 “서계동이 서울역 인근에 있어 상당히 개발된 곳일 것이란 오해를 받는다”고 설명했다. (출처: 독자제공) ⓒ천지일보 2021.12.18
서울시 용산구 서계동의 허름한 주택가 사진. 주민들은 “서계동이 서울역 인근에 있어 상당히 개발된 곳일 것이란 오해를 받는다”고 설명했다. (출처: 독자제공) ⓒ천지일보 2021.12.18

서울역사 뒤편의 낙후 동네

“젊은 층 다 떠나고 노인만

경사로 많아 폭설 시 고립”

“일부 세대, 재래식 화장실에

상·하수도 시설까지 열악해”

내가 80세가 다 됐는데 재래식 화장실밖에 없는 이런 곳에서 산다고 말씀드리기도 너무 부끄럽고 창피합니다. 음식 배달시켜 먹기도 부끄럽고 ‘누가 이런 데 사냐’고 생각할 것 같아요. 가진 게 없어 이런 곳에 살아온 나를 원망해야지…

[천지일보=이우혁 기자] 서울시 용산구 서계동에서 50여년을 살아온 김모 할머니는 이같이 말하고는 흐느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20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전역의 낙후 지역에선 ‘신속통합기획(신통기획)’의 참여가 잇따르고 있다. 이달 말 서울시의 대상지 발표를 앞둔 가운데 본지는 지난 17일 낙후 지역인 용산구 서계동을 찾아가봤다.

◆서울역 인근 ‘허름한’ 동네

서계동은 서울역을 기준으로는 동편으로는 서울스퀘어, KDB생명타워 등 고층 빌딩에, 서편으로는 서울역센트럴자이, 한라비발디센트럴 등 매매가 16억원을 웃도는 아파트 단지가 즐비한 곳 사이에 있는 지역이다.

지역주민들은 서계동을 두고 ‘용산구의 슬럼(Slum, 도시의 빈민굴)’이라고 표현했다. 또 서울역 인근에 있어 상당히 개발된 곳일 것이란 오해를 받는다고 설명했다.

서계동에서 20여년간 공인중개업을 이어온 박모(70대)씨는 “서울역이 바로 앞이라 교통편 때문에 집을 구하러 온 2030 젊은 세대들이 동네를 한번 보고는 깜짝 놀라고 간다”고 설명했다. 언덕이 높고 가파른 데다 수리가 제대로 안 돼 무너져가는 집이나 폐가도 많아 밤낮 할 것 없이 음산하다는 것이다.

박씨는 “좁은 골목이 많고 어둡기까지 한 데다 접근금지 표찰이 붙어있는 폐건물도 많아 신혼부부들이 집을 보러 와서는 동네를 보고 그냥 간다”면서 “특히 젊은 층은 다 떠나가고 노인들만 남았는데 경사로가 많아 겨울에 눈이라도 내리면 주민들은 오도 가도 못한다”고 설명했다.

일부 서계동 주민들은 상하수도 설비마저 온전치 않은 열악한 주거환경 가운데 생활한다. 사진은 주민들이 사용하는 재래식 화장실. (출처: 독자제공) ⓒ천지일보 2021.12.18
일부 서계동 주민들은 상하수도 설비마저 온전치 않은 열악한 주거환경 가운데 생활한다. 사진은 주민들이 사용하는 재래식 화장실. (출처: 독자제공) ⓒ천지일보 2021.12.18

◆“어떤 사람이 ‘저런 데’ 살까 한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동안 옆으로는 무너져가는 집을 어떻게 해서든 고쳐 쓰려고 했던 수리의 흔적들이 눈에 들어왔다. 비가 새는 것을 막기 위해 비닐과 노끈, 돌 등으로 수리한 지붕이 있는가 하면 갈라진 틈을 시멘트로 대충 바른 벽이 이어졌다.

삐걱거리는 문을 지나 서계동 언덕 중턱에 사는 김모 할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김 할머니는 회백색 칠을 해놓은 재래식 화장실을 보며 “‘어떤 사람이 저런 데서 사나’ 할까 봐 음식을 배달 시키기도 부끄럽다”며 “재개발이 된다고 들은 것만 수십년이다. 그냥 반듯한 데서 살아보고 죽기라도 해야 싶었는데 그마저도 여의찮다”고 토로했다.

서계동 일부 주민은 전기는커녕 물도 안 나오는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하고 있으며 상하수도 시설도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곳에서 지낸다는 것이 김 할머니의 설명이다.

주민들은 이 외에도 동네가 지나치게 낙후돼 화재 등 사고에 치명적이라고 강조했다.

서계동 주민 고모씨는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집을 수리하기도 여의찮고 불이라도 나면 다 탈 수밖에 없어 커다란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 “경사가 가파르고 도로도 좁아 소방차가 드나들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또 “난방시설도 제대로 안 돼 있는 집이 많은 데다 기름값도 올랐다”며 “노인들은 난방도 제대로 안 되는 곳에서 겨울을 나야 할 판”이라고 호소했다.

주민 박모씨는 “벽에 스프레이로 빨갛고 파랗게 칠해놔서 낮에도 골목을 다니기 무섭다”면서 “개발한다고 표시는 해놨는데 진행이 안 된 지 벌써 20여년이 흐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주민들은 서계동이 급경사와 좁은 골목이 많고, 가로등과 같은 조명이 충분하지 않아 밤마다 음산하다고 토로했다. 사진은 서계동 골목. (출처: 독자제공) ⓒ천지일보 2021.12.18
주민들은 서계동이 급경사와 좁은 골목이 많고 가로등과 같은 조명이 충분하지 않아 밤마다 음산하다고 토로했다. 사진은 서계동 골목. (출처: 독자제공) ⓒ천지일보 2021.12.18

◆“吳, 신통기획으로 지역민 돌봐야”

주민들은 신통기획을 통해 낙후된 서계동을 고쳐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서계동 재개발 공모를 추진하고 있는 윤모씨는 “고(故) 박원순 전(前) 서울시장 이후 수백여곳의 재개발이 백지화됐고 이 때문에 주민들은 어쩔 수 없이 수십 년간 이런 곳에서 살 수밖에 없었다”며 “오세훈 시장은 신통기획을 통해 서계동과 같은 서울의 낙후 지역민들의 생활 여건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통기획이란 그간 지지부진했던 서울 내 재건축·재개발의 속도를 높여 빠른 주택 공급을 추진하는 정책으로 오세훈 서울시장의 공약인 ‘스피드 주택 공급’의 핵심이다.

신통기획이 주목받는 이유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도시재생사업으로 10여년간 묶어뒀던 낙후 지역의 재개발에 속도가 붙기 때문이다. 연말까지 서울 내에서 25개 구역을 뽑는 신통기획의 대상지로 선정될 경우 사업 시작에서 정비구역 지정까지 걸리는 기간을 통상 5년에서 2년까지 줄일 수 있고 층수 규제 완화 등의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을 전망이다.

오 시장은 최근에도 신통기획 대상지를 찾아 “서울에 신속하게 주택이 공급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실행되고 있다는 메시지를 시장에 드려 부동산 가격 안정에 기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지난 18일 서울 등 수도권 서부에 올겨울 첫 대설주의보가 내려진 가운데 경사로에 쌓여가는 흰 눈을 보는 서계동 주민들의 시름은 깊어져만 간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전날 내린 눈으로 도심 곳곳에 빙판길이 생긴 가운데 19일 오전 서울 용산구의 한 골목에서 한 시민이 계단을 올라오고 있다. ⓒ천지일보 2021.12.19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전날 내린 눈으로 도심 곳곳에 빙판길이 생긴 가운데 19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계동의 한 골목에서 한 시민이 계단을 올라오고 있다. ⓒ천지일보 2021.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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