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로고와 SK브로드밴드 로고. (제공: 각 사)
넷플릭스 로고와 SK브로드밴드 로고. (제공: 각 사)

세계가 지켜보는 ‘망 이용료’ 분쟁

넷플릭스-SKB 갈등, 유럽도 참전

통신 업계 전문가들도 의견 분분

“섣부른 입법… 후폭풍 우려 나와”

“망 대가 지급 당연해… 선례 있어”

“2심 재판, 구체적 금액 나올 것”

[천지일보=손지아 기자] 유럽 통신사들이 넷플릭스·유튜브 등 거대 플랫폼 기업을 대상으로 네트워크 비용을 일부 부담할 것을 촉구했다. 한국이 넷플릭스에 ‘망 이용료’를 내라는 압박을 거세게 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 통신사와 넷플릭스의 갈등이 세계 통신사와 글로벌 거대 플랫폼 사업자 간 갈등으로 번지는 형국이다.

28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도이치텔레콤, 보다폰 및 기타 11개 주요 유럽 통신사 최고경영자(CEO)들이 공동 성명을 내고 미국 빅테크가 유럽 통신 네트워크 개발 비용의 일부를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기업명을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로이터는 넷플릭스, 유튜브 등 주요 콘텐츠 제공업체(CP)를 겨냥했다고 분석했다.

CEO들은 통신 업계가 급증하는 콘텐츠 및 클라우드 서비스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5G, 광섬유에 막대한 투자를 요구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유럽의 통신 부문 투자는 지난해 525억 유로(약 70조 7144억원)로 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날 13개 유럽 통신사의 CEO들은 “플랫폼 빅테크는 네트워크 트래픽의 상당 부분을 소비하고 이를 바탕으로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며 “빅테크의 트래픽을 감당하기 위해선 통신 부문의 지속적이고 집중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빅테크 플랫폼이 네트워크 비용에도 공정하게 기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역대급으로 흥행에 성공한 한국 콘텐츠 ‘오징어 게임’에 나온 녹색 추리닝을 입은 딘 가필드 넷플릭스 정책총괄 부사장이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JW메리어트 동대문스퀘어에서 열린 ‘넷플릭스 미디어 오픈 토크’에서 발언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역대급으로 흥행에 성공한 한국 콘텐츠 ‘오징어 게임’에 나온 녹색 추리닝을 입은 딘 가필드 넷플릭스 정책총괄 부사장이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JW메리어트 동대문스퀘어에서 열린 ‘넷플릭스 미디어 오픈 토크’에서 발언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CP의 트래픽이 점차 늘어남에 따라 통신 복지에 기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미 포털, 게임사 등 부가통신사업자도 방송통신발전기금을 내도록 하는 법률 개정안이 상정된 상태다. 또 넷플릭스에 망 사용료 부과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망 이용료 법제화 움직임에 위기를 느낀 넷플릭스는 이달 초 딘 가필드 공공정책 부사장을 한국으로 보내 한국 정부·국회 고위 관계자들을 만나게 한 바 있다. 지난 23일과 25일에는 토마 볼머 글로벌 콘텐츠 전송 부문 디렉터까지 망 사용료 관련 세미나에 참석해 ‘오픈 커넥트(OCA: 넷플릭스의 자체 캐시서버)’를 통한 기술적 협력으로 트래픽 부담을 덜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별다른 소득은 얻지 못했다. 국내 반발이 여전히 거셌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망 이용료를 내지 않겠다는 기존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를 위해 나름대로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 망 이용료를 국가가 규제하면 안 된다고 설명했지만 한국 정부와 통신 업계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양측의 갑론을박을 지켜보는 전문가들의 의견은 제각각이다.

익명의 한 통신 전문가는 사업자 간 분쟁이 해결되는 것과는 별개로 넷플릭스 패소 후 후폭풍이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넷플릭스가 패소해서 SK브로드밴드에 망 사용료를 내게 되면 우리나라 OTT를 포함해 해외로 진출하고자 하는 CP도 해당 국가의 통신사에 같은 명분으로 돈을 내야 한다”고 우려했다.

이 전문가는 망 사용료를 넷플릭스가 부담하는 모양새도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넷플릭스가 SK브로드밴드의 라스트마일(통신사→이용자 전송 구간)의 트래픽 부담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분도 네트워크(통신망)의 끝부분을 말하는 것이라서 통신사가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넷플릭스를 포함해 볼 만한 콘텐츠가 많아야 통신사도 가입자가 생긴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에 넷플릭스가 패소해서 망 사용료를 내게 되면 나머지 국내외 CP도 모두 다 따라서 이중징수를 당해야 형평에 맞게 된다”며 “통신사가 앞·뒤로 돈을 받는 희대의 엽기 판결이 나오게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관련 세미나에 참석한 법무법인 린의 구태언 변호사도 “현행 대한민국 사법 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시점에서 다소 성급한 입법이 아닌가”라며 “법령의 이해관계자와 용어에 대한 정의가 불확정적인 상황과 철학적 관점에서 성급한 법령 개정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딘 가필드 넷플릭스 공공정책 부사장이 3일 오전 국회 과방위원장실에서 이원욱 위원장과 만나 망 사용료 문제와 콘텐츠 상생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딘 가필드 넷플릭스 공공정책 부사장이 3일 오전 국회 과방위원장실에서 이원욱 위원장과 만나 망 사용료 문제와 콘텐츠 상생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반면 넷플릭스가 망 이용료를 내는 게 지당하다는 시각도 있다. 조대근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겸임교수는 “미국 시장에서 ISP의 CP 과금 행위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 분명히 확인됐으며 ISP(인터넷 서비스 사업자)가 CP에 과금하는 것은 요금 이중 부담이 아닌 개별 주체의 인터넷 접속을 위한 비용으로 봐야 한다”고 제언했다.

윤상필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 실장은 “OTT 확산으로 인터넷 데이터 트래픽 폭증하고 있으며 해외에서도 CP의 ISP에 대한 대가 지급 사례가 있어서 넷플릭스가 ISP에 대가를 지급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넷플릭스는 가입자를 볼모로 대가 지급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조속한 입법화가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넷플릭스와 마찬가지로 SK브로드밴드의 입장도 강경하다. SK브로드밴드가 주목하는 점은 넷플릭스가 자사의 전용 회선을 쓰고 있고 과도한 트래픽을 발생시키고 있는 부분이다. SK브로드밴드 관계자는 “전체 가입자가 누리는 서비스가 아닌 넷플릭스 가입자라는 ‘소수의 인원’을 위한 망 고도화 작업인데 당사가 망 부담을 지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앞서 SK브로드밴드는 전용 회선에 대한 대가를 넷플릭스에 공문을 보내 요청했지만 넷플릭스는 ‘채무부존재’ 소송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1심에서 패소했고 이에 불복해 항소를 제기한 상태다. SK브로드밴드는 반소를 제기했다. 망 사용료를 내는 대신 OCA로 대신 망 부담을 줄이겠다는 것이 현재까지의 넷플릭스 측 입장이다. 그러나 OCA만 가지고는 SK브로드밴드의 라스트마일 트래픽 부담을 덜어주진 못한다.

SK브로드밴드는 1심 재판이 지불 의무에 대한 판결이었다면 향후 진행될 2심 재판에서는 넷플릭스가 SK브로드밴드에 망 사용료를 얼마나 내야 하는지에 대한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넷플릭스가 납부하지 않은 망 사용료가 300억원이 넘는다”며 “확정은 아니지만 재판 결과에 따라 몇천억까지도 낼 수 있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한편 넷플릭스가 망 사용료를 내게 되면 국내 CP와의 역차별 논란은 일부 해소될 전망이다. 웨이브·왓챠·티빙 등 토종 OTT들은 지난 11일 공동 성명을 내고 국내외 사업자의 역차별 해소를 위해 나서달라고 정부에 촉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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