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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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에서 아이들로 돌아왔다는 말을 몇 해 전부터 한 적이 있다. 특히 케이팝을 보면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아이돌은 대개 10대들의 우상을 뜻한다. 10대이지만 10대가 아닌 뭔가 다른 존재이다. 아이돌에는 우월과 선망이라는 심리가 들어 있다. 다른 국가로 가게 되면 동방에서 온 특별한 존재를 넘어서서 엑소(EXO)처럼 외계에서 온 존재가 되기도 했다.

우월과 선망의 존재는 항상 특별하게 자신을 꾸며야 한다. 실제와 다른 존재가 되기 때문에 연출과 필수 가공은 당연한 일이다. 매번 연출과 가공을 해야 하기 때문에 실제 삶과 분리된다. 이러한 간극이 벌어질수록 본인 스스로 압박과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허구와 위선이 많아질 가능성이 높고, 그럴수록 폭로 저널리즘이 농간을 부릴 가능성도 커진다. 심지어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에 이른다.

더구나 모바일 문화가 발달하면서 사실은 물론 진실은 속일 수 없게 됐다. 해법은 단하나 밖에 없었다. 그대로 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만 역할 놀이처럼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될 뿐이다.

방탄소년단을 보면 그들은 다른 누군가가 아닌 청춘들의 또다른 분신들이다. 흙수저 정서들이 반영된 점이 이를 잘 나타내준다. 실력은 있지만 기회를 갖지 못해 배제되고 사라져야할 운명의 수많은 청춘들, 이들이 바라는 것은 자신들의 상황을 대리 타개해 주는 존재이다. 현실에서 좌절한 무수한 청춘들이 자신의 분신인 이들이 성공하기를 바라고 응원하게 된다. 이는 선망을 중심으로 한 일상 탈주의 팬덤 문화와는 전혀 다른 작동원리를 갖게 된다.

이런 아이돌에서 아이들로 귀환하는 현상은 비단 케이팝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요즘 드라마 주인공들은 여신과 같은 이미지를 갖고 있지 않다. 한편으로 올드 팬들이 좋아하는 여배우들이 대거 복귀하기는 했다. 전도연(인간실격), 전지현(지리산), 고현정(너를 닮은 사람)이 대표적이며 여기에 이영애(구경이)도 나섰다. 하지만 더 이상 새로운 세대에게는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감정이입과 공감의 폭은 여신보다는 일상 또래, 자기의 분신과 같은 캐릭터에 더 몰입을 쉽게 할 수 있다. ‘원더우먼’의 이하늬를 봐도 조폭 출신에 망가진 캐릭터를 마다하지 않는다. ‘검은 태양’의 김지은(유제이)은 말할 것도 없고, ‘유미의 세포들’에서 열연 중인 김고은은 매우 전형적이다. ‘천추 태후’ 시절의 채시라는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남성들처럼 말을 타고 격투기를 해야 했다. ‘연모’의 박은빈은 세자이기는 해도 남성 콤플렉스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 20대 여성들도 즐겨본 느와르 ‘마이 네임’의 한소희는 여성적 장점을 살려 액션도 새로운 경지를 보여줘 호평이다.

어디 드라마에만 한정될까. SBS ‘골 때리는 그녀들(골때녀)’은 여성 특유의 본질과 그들의 삶이 그대로 드러나는 여성 예능의 새로운 코드를 잘 잇고 있다. 못하면 못하는 대로 열심히 축구라는 종목 자체에 몰입을 할 뿐이다. 남성들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 축구를 남성들처럼 할 필요도 없고, 여성 그들이 펼치는 경기 자체가 중요하다. 더구나 남성처럼 경기를 하지 않아도 남성에게서 조차 특유의 흥미를 유발한다.

댄스 서바이벌 ‘스트릿 우먼 파이터(스우파)’도 남성을 의식하지 않는다. 대중음악의 여성 댄스는 주로 남성의 시선을 의식하지만 이 경연 프로그램에서는 스스로 자신을 표현하는 데 초점이 있기 때문에 때로는 ‘걸 크러시’라는 개념으로 규정되기도 한다. 걸그룹 블랙 핑크도 그렇지만 새로운 자기 스타일로 보는 이들의 자아를 실현시켜주는 역할이면 충분하고, 이 때문에 팬덤이 생기는 일은 당연하다. 오히려 당당한 개성적 표현의 스타일이 남성 팬들을 거느리게 한다. 더구나 혼자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적 연대와 공동체성을 구가하는 모습들은 자못 이 시대 개인주의적 파편화의 현실을 넘어서서 드라마보다 감동적이다. 아이돌에서 아이들의 시대로, 영웅과 여신의 시대에서 이제 우리 스스로를 대변하는 캐릭터에 더 응원과 몰입을 하는 시대에 우리 사회의 리더상도 달라지고 있는 것이겠다. 공감할 수 있고 감정이입이 가능한 또 하나의 분신을 응원하고 지지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정치만 이를 모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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