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의욕적으로 성취해낸 검찰개혁의 핵심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신설일 것이다. 그동안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검찰에 대응해서 검사 등 고위 공직자들의 범죄를 엄중하게 처리하기 위한 독립기구로 신설됐다. 이에 검찰이 반발하면서 진통도 많았지만 ‘검찰공화국’의 오명을 벗기 위해서라도 국민은 공수처 신설에 힘을 실어줬다. 그만큼 공수처에 대한 기대가 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공수처 김진욱 처장이 취임한지 9개월이 벌써 지났다. 아직 제대로 된 수사 시스템을 정착시키기엔 시기상조일 수도 있다. 게다가 인적 자원이나 수사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공수처는 단 한 건의 수사를 하더라도 철저하게 해서 국민적 신뢰에 보답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자칫 공수처에 대한 신뢰가 깨지면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공수처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동안 신중한 행보를 보인 것도 이런 배경으로 보인다.

공수처가 며칠 전 출범 후 처음으로 현직 손준성 검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구속영장 청구 1호인만큼, 그리고 현직 검사에 대한 것인 만큼 만반의 준비가 됐을 것으로 봤다. 게다가 대선후보 지지율 1, 2위를 다투는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와도 연결돼 있기에 구속영장 청구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결행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법원이 지난 27일 이를 기각시켰다. 결국 공수처의 구속영장 청구 1호가 실패한 셈이다. 물론 이것을 손 검사에 대한 무죄라거나 공수처의 패배로 볼 수는 없다. 중요한 건 처음부터, 그것도 대선정국과 직결돼 있는 민감한 이슈에서 공수처의 역량과 신뢰에 금이 가고 말았다는 점이다.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된 후유증일까.

구속영장 청구 자체가 정치적이라거나, 또는 공수처가 이를 통보하지 않아 손준성 검사에게 사과를 했다는 등의 소모적인 공방전이 한 창이다. 공수처 입장에서는 싸우면 싸울수록 신뢰에 금이 가는, 그야말로 백해무익한 공방전이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공수처가 왜 첫 단추부터 치밀하게 준비하지 못했는지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아직도 무엇이 중요한지, 또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른 채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공수처의 현실을 보노라면 아쉬움을 넘어 정말 실망이다. 특히 ‘공수처 무용론’이 다시 불거지는 것은 아닌지, ‘정치검찰’의 멍에를 이젠 공수처가 뒤집어쓰는 것은 아닌지, 공수처가 처해 있는 작금의 현실이 너무도 불안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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