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경산업 CI. (제공: 애경산업)
애경산업 CI. (제공: 애경산업)

주부경영 신화 이면에 가족들의 ‘일탈’

계열사끼리 키워주는 ‘일감 몰아주기’ 논란도

가습기 살균제 대응, 유족들 비난받아

줄어가는 주력 산업 매출도 리스크 요소

[천지일보=이우혁 기자] 직원 50여명 규모의 비누공장으로 시작해 지금은 40여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애경그룹’이지만, 현재는 위태로운 상태라는 평가가 나온다.

불화도 없는 끈끈한 가족애로 유명한 오너 일가지만, 가족 모두가 경영에 참여하면서 내부거래 등 ‘가족경영의 폐단’이 발생한다는 지적이 나오면서다.

또 수천명의 피해자가 발생했지만, 가해자는 없는 ‘가습기 살균제’ 논란도 애경그룹이 해결해야 할 과오 중 하나다.

◆주부경영 신화 이면엔 ‘가족들의 일탈’

남편인 채몽인 전 회장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면서 경영 일선에 나서 애경유지공업을 지금의 중견그룹으로 일궈낸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은 ‘최초의 주부경영 신화’ 등의 수식어가 붙으며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고 있다. 하지만 장 회장의 자녀들이 그룹 경영에 가세한 이후 애경그룹의 가족경영은 ‘오너 리스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채형석 애경그룹 총괄부회장. (제공: 애경그룹)
채형석 애경그룹 총괄부회장. (제공: 애경그룹)

시작은 장 회장의 장남이자 현재 애경그룹을 이끄는 채형석 총괄부회장이다. 채 총괄부회장은 지난 2008년 12월 회사 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그는 2005년과 2007년에 20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2009년 4월에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의 유죄를 선고받았다. 이후 2010년 8월 광복절 특사로 사면됐으나 재계의 지탄을 면치 못했다.

셋째 아들인 채승석 전 애경개발 대표는 프로포폴 투약 사건에 연루되기도 했다. 채 전 대표는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에서 2017~2019년까지 프로포폴을 100여 차례나 불법 투약해 지난해 1심에서 징역 8개월을 받아 법정 구속됐다. 하지만 올해 1월 보석으로 풀려났고, 이후 4월 2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일감 몰아주기’로 기업 성장 논란

오너 일가의 일탈 등도 문제가 되고 있지만, 업계에선 ‘가족경영의 폐단’을 지적하기도 한다. 덩치는 커졌지만 가족경영에 집착하면서 문제에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 온 식구가 그룹을 경영하면서 발생하는 그룹 내의 일감 몰아주기 논란은 한동안 애경의 발목을 잡을 리스크로 평가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2019년 애경그룹의 계열사 자산이 총 5조원을 넘어 공시대상 대규모 기업집단으로 지정했다. 공시대상으로 지정됨에 따라 그룹은 주요 경영상황을 공시해야 하고, 일감 몰아주기의 규제 대상이 된다.

규제에 따라 오너 일가의 지분이 20% 이상인 계열사에 대해 연간 200억원 이상 또는 해당 계열사 매출의 12% 이상을 지원해줄 경우, 과징금이 부과되거나 고발 대상이 될 수 있다.

특히 애경그룹의 백화점과 계열사의 전산망 유지·관리사업에 주력하는 ‘AKIS(전 애경유지공업)’의 경우 공정위의 지난해 감사보고서에서 채 총괄부회장 외 특수 관계인이 지분 100%를 갖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다만 AKIS의 지난해 매출은 467억원이었는데, 계열사들이 올려준 매출이 354억원(75.8%), 지난 2019년 매출 649억원 중 계열사들이 508억원(78.2%)의 매출을 올려줘 일감 몰아주기 논란을 피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애경그룹 내 사익 편취 대상 규제 기업 수는 총 10곳으로 AKIS, AK홀딩스, 애드미션, 에이텍, 비컨로지스틱스, 애경개발, 에이엘오, 우영운수, 인셋, 코스파 등이다. 이들 회사는 모두 장 회장과 자녀, 사위, 며느리, 사돈 등이 지분 대부분을 갖고 있어, 경쟁이 아닌 내부거래를 통해 성장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천지일보=이우혁 인턴기자] 가습기살균제 관련 보건전문가들이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법원의 제조·판매사 임직원 1심 무죄 선고에 의견 표명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1.1.19
[천지일보=이우혁 기자] 가습기살균제 관련 보건전문가들이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법원의 제조·판매사 임직원 1심 무죄 선고에 유감 표명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1.1.19

◆가습기 살균제 논란에 “판결 따라 대응할 것”

올해로 10주년을 맞은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국내 생활화학제품 중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피해자를 발생시켰다. 지난 2011년 임산부 7명과 신생아들이 돌연사하며 1000명이 넘게 사망한 것이다. 이는 보건 당국에서 공식 인정한 숫자며, 관련 사망 신고는 1700여건에 달한다.

유족들은 관련자들이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기업들이 사과는 했지만, 원료의 유해성이 입증되지 않으면서 애경그룹도 SK케미칼과 함께 무죄판결을 받은 것이다.

애경의 가습기 살균제의 원료인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의 유해성이 명확히 입증되지 않아, 애경은 지난 2016년 옥시 등 기업들이 공식사과할 때까지 책임을 피할 수 있었다. 다만 옥시 등의 공식 사과로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이 드러났음에도, 애경그룹은 침묵을 지켜 비난받기도 했다.

하지만 2019년 8월 사회적참사특별위원회가 오너 일가를 청문회에 소환하면서 처음으로 공식사과했고, 당시 청문회에 참석한 채동석 애경산업 대표이사 부회장은 “피해자와 가족분들에게는 죄송하다”면서도 “판결이 나오면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발언해 비난받았다. 채 부회장은 피해자와의 통화에서 자신을 ‘비서’라고 속인 일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검찰은 2018년 말 CMIT·MIT의 유해성과 관련된 역학 자료가 축적됨에 따라 장신영 애경그룹 회장의 사위인 안용찬 전 제주항공 대표(부회장)을 기소했지만, 법원은 관계성 입증이 어렵다며 지난 1월 1심에서 안 대표의 손을 들어줬다. 다만 피해자들은 여전히 애경 가습기살균제에 대한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결과라며 반발하고 있다.

[서울=뉴시스] 인체에 유독한 원료 물질로 만들어진 가습기 살균제를 유통·판매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가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후 법원을 나서고 있다. 2021.01.12.
인체에 유독한 원료 물질로 만들어진 가습기 살균제를 유통·판매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가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후 법원을 나서고 있다. (출처: 뉴시스)

◆주력 사업 부진도 ‘아킬레스건’

한편 주력 사업이 부진한 상황도 애경그룹의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유통업(AK플라자), 화장품(애경산업) 등이 매출이 지속적으로 줄어들면서다.

특히 백화점 부문 매출은 지난 2013년 5131억원을 기록했지만, 지난해에는 3004억원으로 해마다 줄고 있고, 지난 2019년에는 1호 백화점인 AK플라자 구로본점마저 닫았다. 또 지역친화형쇼핑센터(NSC) 형태의 쇼핑몰로 내놨던 신규 브랜드 ‘AK&’가 부진하면서 브랜드 전략을 수정하기도 했다.

화장품 부문 역시 부진한 것은 마찬가지다. 애경산업은 지난 2018년 화장품부문에서만 3581억원의 매출을 기록했지만, 지난해에는 786억원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큰 타격을 받았다.

또 제주항공 역시 코로나19 사태의 여파로 매출이 73% 급감해 지난해에는 매출 3770억원, 영업손실 3358억원을 기록했다. 다만 제주항공도 팬데믹으로 급감한 여객 수요를 항공 화물로 보완하는 등 구조개선에 나서 실적이 개선될 여지는 아직 남아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제주항공 항공기. (제공: 제주항공)
제주항공 항공기. (제공: 제주항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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