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불=AP/뉴시스] 17일(현지시간) 수백 명의 사람이 아프가니스탄 카불 국제공항 밖에 모인 가운데 한 남성이 미국을 위해 일했음을 증명하는 증서를 들고 있다.
[카불=AP/뉴시스] 17일(현지시간) 수백 명의 사람이 아프가니스탄 카불 국제공항 밖에 모인 가운데 한 남성이 미국을 위해 일했음을 증명하는 증서를 들고 있다.

아프간 주민들 공항 몰려

“숨쉬기 힘들고 압사까지”

공항 안팎서 15명 사망

美도운 주민들 보복 우려

지방경찰철장 기관총 처형

“희망 없다, 美 신뢰 잃어”

[천지일보=이솜 기자] “제발 우리를 여기서 나가게 해주세요, 우리는 지옥에 갇혔습니다.”

사라는 아프가니스탄 카불 국제공항 출입구 밖에서 수천명의 사람들 사이에서 가족과 함께 필사적으로 미국 대피기에 탑승하려고 했다.

지난 며칠 동안 사라는 아이들을 포함한 15명 이상이 눈앞에서 총살당하는 것을 봤고, 삼촌이 탈레반에 잔인하게 구타당하는 것을 목격했다. 사라는 군중이 숨쉬기 힘들 정도로 공항에 꽉 들어차 있고 이 가운데 짓밟혀 죽는 사람이 있으며 쓰레기 악취가 심해지고 있다고 21일(현지시간) 일간 가디언에 전했다.

사라와 그의 네 가족은 모두 아프가니스탄에서 탈출하기 위해 미국 비자를 발급받았고, 지난 18일 카불 공항의 미군 기지인 캠프 설리번으로 직접 가라는 미 영사의 지시를 받았다. 그러나 이날 그들이 도착했을 때 이미 수천명이 그 입구를 막고 있었으며 모든 문이 닫혀 있었다. 공항 출입구 밖에 진을 치고 있는 사람들은 미국 비자, 여권, 영주권을 소지하고 있었으나 대피 비행기나 그들의 운명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사라는 “여기는 너무 무섭다. 모든 사람들의 눈에는 공포가 깃들어 있다”고 말했다.

◆‘아비규환’ 카불 공항

지난 15일 카불이 함락된 이후, 공항 주변의 절박한 장면은 탈레반 통치의 첫 주를 결정짓는 이미지가 됐다.

많은 사람들이 필사적인 탈출 시도로 공항까지 계속 몰려들고 있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 활주로에서 비행기 바퀴를 붙잡거나 밀항하는 과정에서 추락해 숨진 사람들도 발생했다. 폐쇄된 공항 출입문을 통해 맞은편에 있는 미군에게 아기들이 건네졌고, 아프간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들만이라도 해외로 탈출하기를 간절히 바랬다.

공항 안팎에서 탈레반은 공중과 군중을 향해 총을 발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항에서는 최소 15명의 사망자가 공식적으로 확인됐으나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이 수가 훨씬 더 많았다고 전했다.

사라는 가족의 대피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탈레반이 미국,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서방 단체와 협력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다는 보도가 나온 가운데, 그녀의 가족들은 그들 역시 사냥당할 것을 우려했다. 한 친척은 카불의 이전 정부 정권과 협력해 일을 해왔고 여성 인권 운동가 친척들도 있었다. 사라 자신도 대학 교육을 받아 타깃이 될 가능성이 컸다.

탈레반 반군이 22일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와지르 아크바르 칸 인근 도로 검문소에서 차량을 수색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탈레반이 22일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와지르 아크바르 칸 인근 도로 검문소에서 차량을 수색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블랙리스트 잡아가는 탈레반

탈레반은 자신들이 평화를 원하며 오랜 적에게 복수하지 않겠다고 밝혔으나 이미 ‘피의 보복’은 시작됐다.

노르웨이의 한 정보 단체는 탈레반이 블랙리스트를 검거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탈레반은 아프간 정보기관의 파일을 이용해 미국을 위해 일했던 아프간인들의 신원을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SNS에서는 탈레반의 타깃이었던 바드기스주 경찰청장이 두 눈이 가려지고 손이 묶인 채 기관총으로 처참하게 처형당하는 동영상이 퍼져 충격을 줬다.

미군 및 서방 구호단체의 한 전직 통역관은 최근 탈레반에 전화를 받았다고 뉴욕타임스(NYT)에 전했다. 탈레반은 그에게 “결과를 받아드려라, 우리는 당신을 죽일 것”이라고 말했다. 전날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려고 시도했던 그는 수많은 군중 속에 묻혔다가 집에 돌아왔다. 그는 “희망을 잃고 있다”며 “아마 그 결과를 받아들여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직 미군 통역관도 이날 카불에 은신해 있었다. 그는 공항까지 두 번이나 끔찍한 여행을 한 후 자신과 가족이 비행기를 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버렸다고 밝혔다. 그는 “동맹을 대피시키겠다고 약속한 미국 정부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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