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not caption

과거 김정일 시대, 더 올라가 김일성 시대에 북한의 음악정치는 동원과 전투의 필수적 수단이었다. 이는 전체주의 시대 어디서나 공통적이었다. 레닌그라드가 독일군에게 함락당하기 직전 스탈린은 ‘국가합창단’을 레닌그라드로 급파해 총소리보다 음악소리가 레닌그라드를 진동하도록 만들었다. 그 음악 소리를 들으며 소련군은 최후 결전에 나서 파죽지세로 밀려오는 독일군을 막아내는데 성공했다.

김일성은 한국전쟁 당시 스탈린의 이와 같은 ‘음악폭탄’을 그대로 활용해 군인들의 사기를 충전하도록 만들었다. 생전의 김정일은 기운이 떨어질 때마다 국가공훈합창단을 불러 그 우렁찬 남성합창단의 노래를 들으며 사기를 재충전하였다.

그런데 이런 김 씨 왕조의 ‘음악정치’ 패러다임이 최근 좀 바뀌고 있다. 근래 북한의 국가공훈합창단은 그 모습을 구경하기조차 힘들어졌다. 한 때 북한판 걸그룹으로 불리던 ‘모란봉악단’도 화면에서 사라져 버렸고, 2018년부터 상승 가도를 달리던 ‘삼지연관현악단’ 역시 오리무중이다. 최근 김정은 음악정치의 핵심역량은 ‘국무위원회 연주단’이다. 국무위원회는 김정은 시대 ‘정상국가’ 제창론에 때 맞춰 등장한 북한의 최고 정권기관 즉 노동당 다음의 최고 국가권력기관이다.

국무위원회 연주단의 핵심 구성원 역시 북한 최고의 연주자와 지휘자, 가수들로 구성돼 있다. 얼마 전 열린 국무위원회 연주단 공연에는 요즘 북한에서 최고로 잘 나가는 명가수 김옥주가 등장했다.

지난 2018년 평창에 온 삼지연관현악단의 송영, 김주향 등 정상급 가수들이 사라진 반면 김옥주는 현재 북한에서 최고 인기를 누리는 가수다. 지난 2월 일명 광명성절 공연 당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김옥주에게 직접 2번의 앵콜을 보내 주위를 놀라게 만들었다. 이번 공연에서도 총 26곡이 연주되거나 불려졌는데 김옥주는 무려 22곡을 불렀다. 최근 북한에서 음악패턴이나 노래양식도 많이 변화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런 가운데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당 찬양가인 ‘우리 어머니’와 ‘그 정을 따르네’의 보급 열기가 뜨겁다고 보도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6일 ‘위대한 당을 따라 이 세상 끝까지 갈 전인민적 사상감정의 열화 같은 분출’이라는 제목으로 새 선전가요인 ‘우리 어머니’와 ‘그 정을 따르네’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해당 내용을 2면 면전에 배치해 집중적으로 다루며 “우리 마음이 그대로 가사가 되고 선율이 됐다”고 했다. 이어 “새 노래들이 온 나라를 격정의 도가니로 끓게 하고 있다”며 사람들이 일터와 가정 등에서 이를 즐겨 불러 큰 인기를 얻고 있다고 전했다. ‘우리 어머니’와 ‘그 정을 따르네’는 최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당 간부들이 관람한 국무위원회 연주단 공연에서 처음 공개된 노래로, 당의 애민정신을 강조하고 지도자를 일편단심 따르겠다는 충성심을 가사로 담고 있다. 북한은 지난 23일 노동신문 지면에 악보를 공개하는 등 신곡 보급 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신문은 “어디서나 새 노래들에 대한 이야기가 꽃펴나가고 있고 새 노래를 배우려는 열기가 차 넘치고 있으며 그에 따라 보급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지난 22일에는 조선중앙TV를 통해 국무위원회 연주단 공연 녹화 실황을 방영했고, 24일에는 뮤직비디오 형태의 영상편집물을 공개했다. 영상에는 녹음실에서 노래하는 가수들의 모습과 국무위원회 연주단이 바이올린을 켜는 장면 등이 담겼다. 신문은 국무위원회 연주단 공연에 대한 반향을 전하는 “우리 인민들 속에서 폭풍 같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며 “은은히 흐르는 노래의 유정한 선율은 온 나라 인민의 마음을 무한히 격동시켰다”고 신곡을 찬양했다.

우리는 북한이 어려운 경제사정으로 근래 체육단과 예술단에 대한 다운사이징을 진행해 많은 운동선수들과 예술인들을 노력전선으로 내보낸 소식을 접수한 바 있다. 당의 선전선동 분야가 다운사이징에 들어갈 정도면 보통 노동자 농민들의 생활이 어떤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흥겨움은 배부를 때 생기는 것이지 배가 고프고 몸이 고달프면 절대로 생겨나지 않는다. 북한 노동당은 어려운 시기를 우상화 노래로 극복하려 하지 말고 경제를 되살려 인민들이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을 만드는데 고군분투해야 할 것이다. 딴따라는 그 다음 순서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