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문화칼럼] 때 아닌 후궁 논란
[이재준 문화칼럼] 때 아닌 후궁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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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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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후궁은 왕의 본부인인 중전을 제외한 처첩을 지칭한 말이었다. 기록을 보면 후궁을 맞아들이는 제도는 초기 태종 시기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처음에는 고대 중국 제후들의 ‘일취구녀제(一娶九女制)’에 따라 1왕비, 3세부, 5처제를 채택했다. 세부를 ‘빈(嬪)’, 처를 ‘잉(媵)’으로 부르는 ‘3빈 5잉 제도’를 시행한 것이다. 그러나 태종은 명나라 눈치를 보아 ‘1빈 2잉 제’를 채택, 후궁을 3인 이내로 줄였다. 이런 제도가 잘 지켜진 것은 아니었다. 세종은 부왕의 뜻을 따르지 않고 ‘일취구녀제’를 실천했다. 세종의 후궁은 모두 12명이었으나 8명만 직첩을 주고 나머지는 비밀리 상관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어린 궁녀 하나가 후궁 가운데서 가장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이 후궁이 임금에게 청탁을 했다. 세종은 ‘아녀자가 감히 청탁했으니, 이는 내가 사랑을 보여서 그런 것이다. 이 계집이 어린나이에도 이러하니 자라면 어떨지 가히 짐작 하겠다’ 하고는 가까이 하지 않았다고 한다.

조선 연산군 때 역관 조신(曺伸)이 지은 야사 소문쇄록(謏聞鎖錄)에는 세종이 후궁을 특별하게 총애했다는 글이 있다.

-세종은 후궁 홍씨의 오라비 홍유근을 총애했다. 홍이 친위 기병인 겸사복(兼司僕)으로 연(輦)을 시위하게 됐는데 말 하나가 다리를 저는 것을 보고 까닭을 물었다. 홍이 연 끄는 말을 타고 다리를 저는 말로서 대신 연을 끌게 했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임금이 그 내용을 알고 내관들에게 말했다. ‘만일에 대간이 이 일을 알면 극형을 청할 것이니, 소문내지 말라’ 그런 다음 홍유근에게 걸어서 오게 했다. 그 뒤에 대간이 소문을 듣고 홍을 참형해야 한다고 극간했지만 임금이 듣지 않았다-

후궁들은 궁중 안에서 화려한 삶을 살았지만 이면에는 불행한 여인들이 많았다. 궁중 권력 암투에 숨을 죽이고 여기에 관련 되면 살아남지 못했다. 자신의 아들이 왕의 대를 이을 세자가 돼도 제대로 목숨을 부지하며 예우를 받은 후궁들이 많지 않았다.

가장 불행했던 후궁은 숙종때 경종의 어머니인 희빈 장씨와 사도세자의 어머니 영빈 이씨. 이들 두 숙명적인 여인은 아들이 모두 세자로 책봉됐으면서도 왕위에 오르는 것을 지켜보지 못했다. 장희빈은 본래 나인(內人) 출신으로 숙종의 총애를 받은 여인. 인현왕후를 저주한 사실이 발각돼 아들이 옥좌에 앉는 것도 보지 못하고 사약을 받았다. 영빈 이씨는 영조 후궁으로 사도세자가 왕에게 버림을 받자 아들을 죽여 달라고 간청해야만 했다. 그리고 사도세자가 죽은 후에는 손자인 정조가 임금이 되는 날 만을 눈물로 기다렸다.

혜경궁 홍씨가 쓴 한중록에는 영조가 세손으로 하여금 장자 효장세자(10세에 요절한 장자)의 장통(長統) 원칙을 지키라는 어명이 있은 직후 식음을 전폐했다고 한다. 손자마저 빼앗긴 비통함이 결국 죽음에 이르게 했다.

요즈음 여야 정치권에 ‘조선시대 후궁’ 논란이 뜨겁다. 국민의 힘 조수진 의원이 최근 페이스북 글에 총선 당시 고민정 의원이 정권 차원의 지원을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조선시대 후궁이 왕자를 낳았어도 이런 대우는 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썼다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논란이 확대 되자 조 의원이 사과하고 페이스북 글을 삭제했지만 민주당 고민정 의원은 명예훼손으로 고소까지 했다. 정권차원의 지원을 후궁의 대우에 비교한 것은 적절치 못한 표현이나 야당을 공격하는 호기로 삼는 것은 경계해야 할 일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어려운 현실에서 여야가 후궁논쟁으로 시간을 낭비할 때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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