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신라 화랑 효종랑의 설화는 고대 서라벌 사회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풍속을 보여 준다. 왕도에 지은(知恩)이라는 처녀가 30세가 넘도록 시집을 가지 않고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그런데 가난해 쌀 10섬에 팔려 가는 몸이 된다.

모녀가 붙들고 통곡하는 것을 지나가던 늠름하고 인자한 화랑 효종랑이 들었다. 화랑은 부모를 설득해 곡식 1백섬을 받아 구해준다. 한번 팔려 가면 평생 노비가 되는 것을 딱하게 여긴 것이다. 효종랑을 따르는 낭도 수천명이 각각 쌀 한 섬씩을 가져다줬으며 대왕도 벼 5백섬과 집 한 채를 지어주기도 했다.

갑자기 지은의 집에 곡식이 많아지자 도둑이 들까 걱정돼 대왕은 군사를 보내 번갈아 지켜주게 하였다. 지은이 사는 마을을 효양방(孝養坊)이라 부르게 했으며, 당나라 황실에 까지 표문을 올려 미담을 자랑했다고 한다.

조선 정조 때 임금을 감동시킨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장본인은 남자가 아닌 여성이었다. 바로 기녀 출신 김만덕이다. 그녀는 열두 살 때 부모를 잃고 기적에 올랐으나, 스물세 살이 되는 해에 기적에서 신분을 벗고 양인이 돼 객주에 몸담았다.

그녀는 여러 사업을 시작해 큰 부자가 됐다. 당시 제주도는 극심한 가뭄이 계속 돼 굶주리는 백성들이 많았다. 김만덕은 전 재산을 풀어 굶주린 1천여명의 백성들을 구해 냈다. 정조는 김만덕의 선행을 전해 듣고 크게 칭찬했으며 ‘한양에서 임금님을 뵙고, 금강산을 보고 싶다’는 그녀의 소원까지 들어주었다.

유한양행을 창립한 고(故) 유일한 박사는 평생 모은 재산을 사회에 기부했다. 1971년 별세 이후 고인의 유언장이 공개 됐는데 36억 2천만원이라는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내용이었다.

유서에는 아들의 딸 학자금으로 남긴 1만달러를 제외한 모든 돈을 교육 사업에 기부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막상 유 박사의 유품은 낡은 구두와 양복, 40년 전 딸에게 사준 장갑 한 켤레뿐이었다.

유명한 홍콩 영화배우 주윤발도 기부 왕으로 꼽힌다. 주윤발은 청소년 시절 너무 가난해 고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했다. 세계적인 배우로 성장한 그의 재산은 홍콩달러로 대략 13억 불(한화 2천여억원). 엄청난 재력이 있는데도 평소 지하철을 이용한다는 그는 2018년 10월에는 56억 홍콩달러(한화 약 8100억원)를 자선단체에 기부해 화제가 됐다.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기부 문화의 전통을 세우고 싶다’. ‘더 기빙 플레지(The Giving Pledge·기부 서약)’ 운동은 올해로써 창립 12년째를 맞는다고 한다. 빌 게이츠 MS 회장, 워런 버핏 회장, 엘리슨 오라클 창업자 등 세계 25개국 200여명의 재력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배달의 민족’ 김봉진 의장이 ‘기빙 플레지’를 통해 재산의 절반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선언했다. 그의 재산이 1조원대로 추정되는 만큼 기부액은 5천억원이 넘을 것이란 전망이다.

그는 30가구가 채 안 되는 전남 외딴 섬 ‘구도(鳩島)’ 출신이다. 작은 식당을 운영한 부모님 슬하에서 자란 김 의장은 식당 안 쪽방에서 새우잠을 자는 등 어렵게 성장했다. 그는 2017년에도 3년간 100억원을 기부한다는 약속을 칼 같이 실천했다고 한다.

‘작은 부자는 근면이 만들고, 큰 부자는 하늘이 낸다’는 말이 있다. 얼마 전 김범수 카카오창업주도 10조원에 달하는 재산 중 5조원 가량을 사회적 문제 해결에 내놓겠다고 천명했다.

이들 신흥 갑부들의 잇단 재산 기부 선언은 감동적 휴먼 인터레스트로 꽃샘추위를 녹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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