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계첩 표지. (제공: 아산시) ⓒ천지일보 2020.12.22
기사계첩 표지. (제공: 아산시) ⓒ천지일보 2020.12.22

기사계첩 영구히 보존·활용 방안 협의

문화재 가치발굴을 위해 지속해서 노력

[천지일보 아산=박주환 기자] 보물 제639호 기사계첩(1978년 12월 7일 지정)이 국보 제334호 ‘기사계첩 및 함’으로 승격 지정됐다.

22일 아산시에 따르면 기사계첩은 아산시 배방읍 세교리에 터전을 잡은 풍산홍씨 만퇴당 홍만조 후손가에 300여년 세전된 유물이다. 1719년(숙종 45년) 59세가 된 숙종이 11명의 신하와 함께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간 것을 기념해 제작한 계첩으로 18세기 전반 궁중기록화 및 초상화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기사계첩은 당시 총 12첩을 만들어 기로신(耆老臣) 11명에게 반사(頒賜, 임금이 녹봉이나 물건을 내려 나누어 주던 일)하고 1부는 기로소에 보관했으나 현재 남아있는 유물은 총 6점(국내 5, 일본 1)만 알려져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이 국보 제325호(2019년 3월 6일 승격),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소장본이 제638호(1978년 12월 7일 지정)로 각각 지정됐으며 다른 기사계첩은 비지정이다.

아산 소재 기사계첩은 당시 기로소에 참석한 만퇴당 홍만조의 종가에 지속적으로 세전돼 왔을 뿐만 아니라, 화첩 안에 ‘만퇴당장(晩退堂藏, 만퇴당 소장)’ ‘전가보장(傳家寶藏, 가문에 전해 소중히 간직함)’이라는 글씨가 수록돼 있어 현존하는 기사계첩 중 수급자를 분명히 알 수 있는 유일한 사례다.

더구나 내함(內函), 호갑(護匣), 외궤(外櫃)로 이루어진 삼중(三重)의 보호장치까지 보존돼 있어 당시 왕실 반사품의 원형을 복원할 수 있는 중요 근거로 활용될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다.

이처럼 아산 소재 기사계첩은 조선시대 기로소라는 역사적 사실을 담고 있고 이후의 모범이 되었다는 점, 18세기 전반 궁중 기록화의 정수로 평가받고 있는 점, 제작시기 제작자 제작경위 등을 분명히 알 수 있어 학술적 가치가 높다는 점, 계첩과 동시에 만들어진 함을 통해 당시 왕실 공예품의 제작 기술 등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 등을 높게 인정받아 국보로 승격됐다.

기사계첩 내부 기록화. (제공: 아산시) ⓒ천지일보 2020.12.22
기사계첩 내부 기록화. (제공: 아산시) ⓒ천지일보 2020.12.22

특히 아산 소재 기사계첩은 종손이 서울로 이주함에 따라 2000년 소재지가 변경되는 곡절이 있었으나 시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2019년 다시 원래의 소장처로 돌아온 이력을 갖고 있다. 이후 시는 원지역으로 돌아온 기사계첩의 가치와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자 국보 승격을 2년 가까이 노력한 결과 그 결실을 드디어 맺게 됐다.

아산시 관계자는 “기사계첩을 영구히 보존 관리하고 활용할 수 있는 체계를 소장자와 긴밀하게 협의해 추진할 계획”이라면서 “시는 지정문화재와 비지정문화재의 가치발굴을 위해 충남도와 협력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기사계첩 내 홍만조 초상. (제공: 아산시) ⓒ천지일보 2020.12.22
기사계첩 내 홍만조 초상. (제공: 아산시) ⓒ천지일보 2020.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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