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Alexandria Ocasio–Cortez). 우리에겐 다소 낯선 이름이지만, 미국 정치권에선 샌더스(Bernie Sanders) 이후 미국의 진보정치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2년 전 미 하원의원 선거를 기억한다면 당시 민주당 뉴욕주 당내 경선에서 10선의 민주당 거물 조 크롤리(Joe Crowley) 의원을 제치면서 2018년 중간선거 최대 이변을 만들어 낸 장본인이었다. 그리고 하원의원 본선거에서도 공화당 파파스(Anthony Pappas)와 싸워 압승을 이뤄내면서 미국 정치권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돌풍의 주역이었다.

1989년생이니까 당시 29세로 최연소 하원의원일 뿐만 아니라, 선거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한 레스토랑에서 바텐더로 일했던 신출내기 여성 정치인이었다는 점에서 정치권의 충격은 더 컸다. 게다가 민주당 내 진보 성향의 ‘미국 민주당 사회주의자(Democratic Socialists of America)’ 모임 회원이기도 한 오카시오-코르테스는 기업의 후원금을 거부하는 파격적인 선거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게다가 ‘건강보험 확대’와 ‘이민세관국(ICE) 폐지’ 그리고 ‘부유세 강화’ 등의 진보적 공약을 쏟아내면서 정책적으로도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미국 진보정치의 새로운 아이콘이 된 셈이다.

바로 그 오카시오-코르테스가 이번에 미 대통령 선거와 함께 치러진 연방 상․하원의원 선거에서 다시 압승을 거뒀다는 소식이다. 그가 공화당 후보를 두 배 이상의 득표로 이긴 것은 지난 2년의 의정활동에 대한 유권자들의 평가가 고스란히 반영됐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물론 그의 압승은 집권당인 공화당 후보보다 두 배에 달하는 후원금 모금(1700만 달러)을 할 때부터 이미 예견됐다는 평가도 있다. 미국의 선거정치는 종종 후원금 모금 액수로 놓고 후보의 지지도를 가늠키도 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젠 30세로 재선의원이 된 오카시오-코르테스, 그의 엄청난 저력을 보면 미국정치에서 형성되고 있는 하나의 새로운 단면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대목이 적지 않다.

오카시오-코르테스 의원은 변변한 경력은커녕 파트타임 노동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던 불우한 가정의 유색인종이다. 게다가 그가 내놓는 정책이라곤 개혁적이다 못해 진보적이라 할 만큼 파격적이다. 그를 ‘사회주의자’로 내몰고 있는 주류사회의 저항은 그런 배경이다. 그가 내세우는 진보적 가치는 4년 전 샌더스의 대선캠프에 참여할 때부터 확고한 것이었다. 말 그대로 ‘샌더스의 후예’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인물이다. 청년과 여성, 도시빈민과 이민자들의 삶은 그가 정치에 뛰어든 목적이었다. 그가 샌더스의 대선캠프를 찾은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지난 4년은 거의 완벽하게 오카시오-코르테스가 지향했던 가치와는 정반대였다. 미국의 기성 주류정치에 대한 반감으로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았지만, 지난 4년간 보여줬던 ‘트럼프 행정부의 추태’는 청년과 여성, 도시빈민과 이민자들의 눈물이 되고 말았다. 아니 미국의 명예와 자존심을 조금이라도 생각해 본 유권자들이라면 트럼프의 4년은 ‘악몽’이었을 것이다. 그런 트럼프 행정부를 보면서 오카시오-코르테스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뒷골목 어디쯤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을 사회적 약자들을 생각하면서 그들의 손을 잡으려 신발이 닳도록 뛰고 또 뛰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만날 때마다 자신의 길이 얼마나 엄중한지, 앞으로 또 얼마나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지를 수없이 생각하고 다짐했을 것이다. 이번에 거둔 압도적 승리도 그런 노력의 성과일 것이다. 동시에 오카시오-코르테스에게 희망을 품는 유권자들이 그만큼 더 늘어났다는 뜻이기도 하다. 마치 트럼프의 비극이 표출된 바로 그곳에 오카시오-코르테스가 있었다는 극적인 효과까지 거둔 셈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오카시오-코르테스의 재선을 간단히 볼 일이 아니다. 미국정치의 이면에는 이미 주류 기득권 정치세력에 대한 저항과 불만이 팽배해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트럼프에 대한 기대가 절망으로 바뀌는 순간, 미국의 진보정치는 새로운 모멘텀을 만들 수 있는 계기를 찾을 수 있다는 뜻이다. 4년 전 힐러리(Hillary R.Clinton)에 대한 반감이 ‘매드맨(madman) 트럼프’를 소환했다면, 트럼프에 대한 절망 그 이후는 무엇이 될지를 오카시오-코르테스를 통해 큰 그림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이다. 물론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럼에도 거대한 전환의 흐름을 막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마침 워싱턴 정가에서도 오카시오-코르테스에 대한 얘기가 연일 전해지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벌써부터 상원의원이나 예비 부통령 후보감으로 평가하는가 하면, 민주당 정부가 들어설 경우 행정부에 발탁될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물론 이제 30세에 불과한 재선의 여성 의원에 대한 과한 평가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정치의 거대한 변화와 유권자들의 저변을 형성하는 새로운 성향을 감안해 볼 때, 오카시오-코르테스는 분명히 오늘보다 내일이 더 빛날 수 있는 인물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기득권에 찌든 주류 언론이나 주류 정치권이 만들어 낸 주류 정치인의 시대는 이제 미국에서도 빠른 속도로 종언을 고하는 날을 맞게 될 것이다. 힐러리에게 ‘실망’한 유권자들, 이번에는 트럼프에게 ‘배신’을 당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오카시오-코르테스의 재선이 더 빛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사회의 어두운 곳을 응시하며 말보다 행동으로 다가선 오카시오-코르테스의 신념과 용기는 어쩌면 ‘미국정치의 미래’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는 생각이다. 이번 대선 이후, 그의 다음 행보가 더 주목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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