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남승우 기자]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회원들이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처벌의 시대로 되돌아갈 수 없다! 낙태죄 완전 폐지하라’ 기자회견을 마친 뒤 항의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0.10.8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회원들이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처벌의 시대로 되돌아갈 수 없다! 낙태죄 완전 폐지하라’ 기자회견을 마친 뒤 항의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0.10.8

정부, 임신14주 내 낙태허용

24주 이후 낙태시 형사처벌

여성·법조 ‘낙태죄부활’ 비판

일각선 ‘청와대 개입설’ 제기

[천지일보=홍수영·이수정·최빛나 기자] 정부가 형법상 ‘낙태죄’를 유지하되 ‘임신 14주 이내’에만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내용의 법개정안을 입법예고한 것과 관련해 여성·법조·의료계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낙태죄의 위헌성을 인정한 헌법재판소의 결정 취지와 달리 정부는 낙태죄를 폐지하지 않고 꼼수를 부리고 있다는 비판이다. 또한 일각에선 해당 법안 입법예고에 청와대가 관여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며 낙태죄 유지에 찬성하는 기독교계의 표심을 사기 위한 게 아니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여성계 “반인권적인 행위” 지적

10일 여성계 등에 따르면 ‘낙태죄 전면 폐지’를 요구해온 여성단체들은 이번 정부의 입법예고에서 임신 주수에 따른 처벌 조항이 유지된 점 등을 두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가 입법예고한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에 따르면, 여성이 동의할 경우 임신 14주 이내의 낙태는 허용된다. 하지만 24주 이후에는 임신중지한 여성을 형사처벌하도록 규정했다.

이에 여성단체는 임신중지를 했다는 이유로 여성이 처벌받지 않도록 형법 제27장 ‘낙태의 죄’가 반드시 삭제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성단체 연합인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은 정부가 여성들의 현실과 목소리를 외면하고, 낙태죄 전면 폐지를 포기한 것이라며, 법조항이 전면 폐지될 때까지 릴레이 기자회견과 청와대 앞 1인 시위 등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은주 한국여성단체연합 활동가는 천지일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낙태라는 행위를 찬성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임신중절수술을) 결정한 여성들에 대해 처벌 조항을 두는 것은 반인권적인 행위”라며 “낙태죄를 폐지하고 태아의 생명과 여성들이 출산을 결정할 수 있는 사회 인프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임신중절수술을 하거나 약을 먹는 것이 좋아서 하는 여성이 어디 있겠냐. 여성을 처벌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일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박 활동가는 “여성들이 거리에 나와 외치고, 사회인식도 바꿔놓고 헌법불합치 결정까지 이끌어 냈는데 오히려 정부는 그것을 역행하는 안을 내놓은 셈”이라며 “피임, 임신, 출산, 양육을 하는 과정에서 그것을 지원할 사회적 시스템이 일단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여성들은 사회생활 전반에서 차별을 많이 겪고 있다. 사회적인 낙인도 그렇다”며 “비혼인 여성이 아이를 낳고 싶더라도, 사회가 허용하지 않는데 이런 사회에서 임신중지를 결정했다고 처벌하겠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덧붙였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헌재의 낙태죄 처벌 위헌 여부가 헌법불합치로 결정된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는 시민단체 회원들이 기뻐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4.11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헌재의 낙태죄 처벌 위헌 여부가 헌법불합치로 결정된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는 시민단체 회원들이 기뻐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4.11

◆법조계 “헌재 결정 취지에 위배”

법조계에서도 정부 개정안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정부안이 헌법재판소 결정 취지에 반한다고 주장했다.

민변은 논평을 통해 “정부안은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며 “형사처벌의 기준으로 삼으려면 임신 주수를 특정할 수 있어야 하지만 이는 의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초음파 검사를 하더라도 태아 크기 등에 비춰 임신 주수를 ‘추정’할 수 있을 뿐이라는 점에서 불명확한 기준을 내세워 임신중지한 여성을 형사처벌하는 조항은 위헌적이라는 것이다.

또 “24주 이후에는 사유 불문하고 임신중지한 여성을 형사처벌하도록 규정한 것도 헌법상 기본권제한 원칙인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된다”며 “여성은 임신을 지속해 건강을 해치거나 더 나아가 사망하거나, 임신중지를 하고 형사처벌을 받거나 둘 중 하나의 상황에 내몰린다”고 꼬집었다.

이밖에도 민변은 ▲여성으로 하여금 강간으로 임신한 사실, 사회적, 경제적으로 양육할 수 없는 사실 등을 설명하고 입증하게 함으로써 여성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침해 ▲의사의 임신중지시술 거부권을 명시해 여성의 건강권을 침해 등의 이유를 들어 개정안을 비판했다.

한국여성변호사회(여변)도 입장문을 내고 “입법예고안이 안전한 인공임신중절 환경을 조성하고 임신부에 대한 사회적 지원을 강화하는 방안을 담고 있는 것은 환영할만한 하다”면서도 “헌재의 결정인 22주보다 짧은 14주로 기간을 단축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는 것은 헌재 결정 취지에 반한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헌재는 위헌 결정문에서 임신 22주를 일종의 ‘데드라인’으로 제시했다. 그 이후엔 태아가 모체를 떠나 독립적으로 살 수 있을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에 태아를 하나의 인간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취지였다.

여변은 “(정부는) 여전히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오롯이 보호하지 못하고 여성을 범죄자로 낙인찍고 있으며 사실상 사문화된 낙태죄를 부활시켰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낙태의 허용 예외요건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변의 공보이사를 맡고 있는 장윤미 변호사는 천지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여변이 22주까지 보장안을 제시한 것과 관련해 “여변 내부에서 설문을 했는데 헌재가 제시한 22주로 하는 걸로 입장이 모아졌다”고 밝혔다.

이어 “낙태죄가 형법에 남는다는 것에 문제가 있긴 하지만 대단히 여러 의견들이 충돌하고 있고 전격적으로 없애는 건 다른 반발을 살 수도 있어 헌재가 제시했던 안을 마지노선으로 하는 게 적절한 것 같다는 의견이었다”고 설명했다.

‘주수제한’이나 ‘상담과 숙려 기간 의무화’ 등이 임신중지 접근성이 떨어지는 이들에게 미칠 피해에 대해선 “자기 신체에 자기결정권 행사가 어려운 분들이 문제인데, 법적 해결보다는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른 해결책을 모색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1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낙태죄 헌법 위헌 여부 선고가 유남석 헌법재판소장 주재로 열리고 있다. 이날 헌재는 지난 1953년 낙태죄 조항을 도입한 지 66년 만에 ‘헌법불합치 선고’를 내렸다. ⓒ천지일보 2019.4.11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1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낙태죄 헌법 위헌 여부 선고가 유남석 헌법재판소장 주재로 열리고 있다. 이날 헌재는 지난 1953년 낙태죄 조항을 도입한 지 66년 만에 ‘헌법불합치 선고’를 내렸다. ⓒ천지일보 2019.4.11

◆의료계 “무조건적 처벌은 잘못된 것”

의료계에서도 입법예고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오정원 산부인과 전문의는 이날 천지일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낙태는 일종의 자신의 몸에 대해서 앞으로 어떻게 살고 유지할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기결정권”이라며 “단순히 임신했다고 해서 무조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아이를 책임질 수 있는 건강, 경제 등 여건이 되지 않는데 의도치 않은 임신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낙태를 해야 되는 경우도 있다”며 “건강권 측면에서 봐도 낙태를 범죄화해선 안 된다. 낙태는 (여성들이) 마땅히 받아야 되는 의료서비스”라고 덧붙였다.

오 전문의는 임신 14주 이내 낙태 전면 허용에 대해서 “낙태 허용 기준이 사실 굉장히 경계가 모호하다”며 “실제 임신 인지가 늦은 청소년이나 장애인, 건강이 좋지 못한 경우는 임신 24주가 지나도 낙태를 해야하는 경우가 있다. 무조건적으로 (낙태죄로) 처벌하기에는 어렵다”고 말했다.

◆‘청와대, 기독교계 표심 의식’ 의혹

낙태죄 전면 폐지가 이뤄지지 않은 것과 관련해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개입했기 때문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경향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낙태죄를 유지하려는 청와대의 의지가 강했고 이런 입장이 법 개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이 나왔다.

복수의 정부 관계자들이 ‘낙태죄 개정안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청와대의 입장이 크게 작용했다’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낙태죄 개정안은 정부부처가 추진할 수 있는 법안 수준이 아니다. 청와대의 의중이 가장 크게 작동한 법안이라 볼 수 있다. 법무부가 양성평등정책위원회를 통해 권고안도 냈지만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가 낙태죄 유지에 찬성하는 기독교계의 표심을 의식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실제로 종교계 중에서도 특히 기독교계의 낙태죄 폐지 반대 입장은 완고하다.

이들은 헌재의 결정에 대해서도 우려의 입장을 표명하며 낙태죄 폐지를 강하게 반대한 바 있다.

헌재가 임신 초기 낙태까지 예외 없이 처벌하는 현행 낙태죄 조항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결정을 내린 지난해 4월, 70개 교단이 참여한 ‘2019 한국교회 부활절 연합 예배’에서 발표된 부활절 선언문에선 “한국교회는 낙태죄 폐지를 반대한다”는 입장이 명시됐다.

보수성향의 개신교 단체인 ‘샬롬 나비’도 성명을 내고 “그리스도의 창조질서에 순응하는 길만이 한국사회가 소돔과 고모라처럼 멸망하지 않을 유일한 길”이라며 “한국사회가 진정으로 생명을 존중하는 국가의 사회질서를 세워갈 때 생명으로 충만한 사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낙태 반대를 주장하는 시민들이 시위하고 있다. 앞서 정부는 낙태죄 폐지를 요구해온 여성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현행 낙태죄를 유지하고 임신 14주까지 낙태를 허용하는 내용의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지난 7일 입법예고했다. ⓒ천지일보 2020.10.8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낙태 반대를 주장하는 시민들이 시위하고 있다. 앞서 정부는 낙태죄 폐지를 요구해온 여성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현행 낙태죄를 유지하고 임신 14주까지 낙태를 허용하는 내용의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지난 7일 입법예고했다. ⓒ천지일보 202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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