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폭발이 일어난 레바논 베이루트 항구에서 5일 구조대가 부상자를 들것에 실어 옮기고 있다. (출처: 뉴시스)
대폭발이 일어난 레바논 베이루트 항구에서 5일 구조대가 부상자를 들것에 실어 옮기고 있다. (출처: 뉴시스)

2014년부터 6번 편지 보내

“폭발물 수출하거나 판매해라”

레바논 국민적 공분 최고조

“지도층, 국민 상대로 죄지어”

[천지일보=이솜 기자]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대형 폭발로 최소 135명이 사망한 가운데 전 세관장이 폭발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항만 창고의 질산암모늄에 대해 2014년부터 6번 이상 경고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국민들의 분노가 높아지고 있다.

6일 AP통신,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하마드 하산 레바논 보건부 장관은 지난 4일 베이루트 항구에서 발생한 폭발로 5천명 이상이 부상당했으며 25만명에 달하는 이재민이 발생했다고 전했다.

관계자들은 항구에 안전하지 않은 상태로 수년간 보관돼 있던 많은 양의 폭발성 물질이 비축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미셸 아운 대통령은 질산암모늄 2750톤이 비료와 폭탄에 사용됐으며, 항구가 압류된 후 6년간 안전조치 없이 보관돼 왔다고 밝혔다. 질산암모늄은 폭발 가능성이 있는 비료의 성분이다. 일부 매체에 따르면 초기 화재는 창고에서 용접 작업 중 일어난 것으로 알려졌지만 공식적으로 발표된 바는 없다.

이날 아운 대통령은 대국민연설을 통해 “어젯밤 베이루트를 강타해 재난에 시달리는 도시로 변하게 한 그 공포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며 “가능한 한 빨리 조사해서 진상을 알아내고 관련자에게 책임을 묻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레바논 정부는 2014년부터 이 물질을 보관하거나 경비하는 항만 관리들에게 가택연금 명령을 내렸다. 또 정부는 베이루트에 2주간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이날 미 국방부 고위관계자는 이번 폭발이 국가나 군대의 공격이라는 징후는 없었으며, 부적절한 폭발물 저장으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AP통신에 밝혔다.

그러나 질산암모늄에 대한 위험성과 창고에서 이 물질을 옮겨야 한다는 경고가 이미 수차례 있었다는 증거가 발견되면서 이번 사태는 예정된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인터넷에서는 베이루트의 전 세관장이 수년 동안 항구에 저장돼 있던 질산암모늄의 엄청난 비축량이 위험하다고 거듭 경고하고 이를 제거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판결을 사법부 공무원들에게 요청해 왔다는 내용의 공문이 떠돌았다.

2013년 9월 베이루트 항구에 러시아 회사 소유의 배에 실린 질산암모늄이 레바논에 도착했는데, 2017년 세관장은 서한에서 “자재가 그대로 남아 있어 (항만) 직원들의 안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경고하고 판사에게 조치를 요청했다. 그는 2014년, 2015년, 2016년에도 비슷한 내용의 편지 5통을 발송했다고 밝혔다. 서한은 이 물질을 레바논의 폭발물 회사에 판매하던지 수출할 것도 제안했다. 이 서한에 대한 답이 있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배드리 다헤르 관세청장은 현지 LBCI TV에 사법부에 그가 이런 내용의 서한을 5~6통을 보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민적 분노는 최고조에 올랐다.

레바논은 이미 1975~1990년 내전 이후 심각한 경제 위기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속에 붕괴 직전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통화 위기로 저축을 날렸다. 또 레바논은 이웃 시리아에서 분쟁을 피해 도망치는 난민을 수용하고 먹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게다가 베이루트 항과 세관은 헤즈볼라를 비롯한 다양한 파벌과 정치인들이 장악하고 있는 레바논에서 가장 부패한 기관 중 하나로 악명이 높은 곳이었다.

베이루트 시내에 있는 르 그레이 호텔의 하산 자이터 매니저는 “이번 폭발은 레바논의 붕괴를 나타낸다. 이는 정말 지배층의 탓”이라고 말했다. 택시 운전사 아부 칼레드도 “장관들이 이번 재난에 대해 가장 먼저 책임을 져야 한다”며 “그들은 태만히 이 나라 국민들을 상대로 죄를 지었다”고 말했다.

또 AP가 촬영한 드론 영상에 따르면 폭발로 인해 레바논 곡물의 약 85%가 저장돼 있는 사일로의 구조물이 찢겨져 나와 곡식이 파편 속에 섞이는 모습도 담겨 있었다. 라울 네흐메 경제통상부 장관은 모든 밀이 오염돼 먹을 수 없다고 밝혔다.

마완 아바우드 베이루트 주지사는 알 하다트TV와의 인터뷰에서 폭발에 대한 직·간접적 손실이 100억~150억 달러에 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실종자들의 가족들은 소식을 얻기 위해 베이루트 항구로 향하는 저지선에 모였다. 사망자 중 상당수는 항구와 세관 직원, 이 지역에서 일하거나 근처에서 운전하는 사람들이었다.

적십자는 병원에 사상자들이 몰려들자 보건부와 병실을 새로 설치하기 위해 조정하고 있다. 보건당국은 병원들이 대규모 인명피해 유입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부상자와 중태에 처한 사람들을 돌볼 병상과 장비가 부족하다고 밝혔다. 베이루트의 클레멘소 메디컬 센터의 간호사 사라는 현재 의료 현장에 대해 “도살장처럼 복도와 승강기가 피로 뒤덮였다”고 전했다.

한편 터키와 이란 등 아랍 국가들과 레바논의 정치·경제적 변화를 요구해 온 미국, 영국, 유럽 등 서방 국가들도 레바논에 대한 지원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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