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최재형 감사원장이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국정감사에 출석, 의원질의를 경청하고 있다.ⓒ천지일보 2019.10.21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최재형 감사원장.ⓒ천지일보DB

2018년에는 최재형 감사원장 환영 입장

‘탈원전’ 반한다는 이유로 사퇴 요구까지

진중권 “수틀리면 감사원장도 바꿀 사람들”

통합 “최 원장 사태, 윤석열 총장 생각나”

[천지일보=이대경 기자] 문재인 정부의 주요 정책인 탈원전으로 운영이 중지된 ‘월성 원전 1호기’에 대한 감사를 놓고 최재형 감사원장과 정부‧여당을 포함한 여권의 갈등이 표면화됐다. 특히 청와대가 감사위원 임명에 대해 대통령의 인사권에 해당한다는 입장을 내면서 갈등이 커지고 있다.

이번 사건은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인사가 정권과 정면으로 대립하는 두 번째 사건으로서 일각에서는 ‘제2의 윤석열 사태’로 정치 쟁점화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최 원장은 2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해 4개월째 공석인 감사위원에 대해 “중립적이고 직무상 독립적으로 할 수 있는 분을 제청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임명권자와 협의하고 제청하는 것이 순리”라고 밝혔다.

앞서 지난 4월 3일 법조인 출신인 이준호 전 감사위원이 퇴임하면서 감사위원 한석이 넉 달째 공석이다. 감사위원(차관급)은 감사원장과 함께 감사위원회(총 7인)를 구성해 감사 사항을 최종 의결해야 하기 때문에 감사위원의 장기간 공백은 이례적인 상황이다.

이날 문재인 대통령이 김오수 전 법무부 차관을 감사위원에 임명하려고 했으나 최 원장이 두 차례 반대했다는 내용도 보도되기도 했다. 김 전 차관은 지난 2018년 6월부터 1년 10개월간 문재인 정부 두 번째 법무부 차관을 지낸 바 있다.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윤호중 법사위원장이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주택임대차보호법’을 상정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천지일보 2020.7.29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윤호중 법사위원장이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주택임대차보호법’을 상정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천지일보 2020.7.29

법사위 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무려 3시간 동안 최 원장을 질타했다. 우선 지난 4월 열린 감사위원회에서 최 원장이 문재인 정부를 폄훼하는 발언을 했다는 의혹이 도마에 올랐다.

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대선에서 41%의 지지밖에 받지 못한 정부의 국정과제(탈원전)가 국민 합의를 얻었다고 할 수 있겠느냐’ ‘대통령이 (원전 폐쇄를) 시킨다고 다 하느냐’ 같은 발언을 한 적이 있느냐”고 질의했다. 이에 최 원장은 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을 언급한 것은 인정하면서도 “발언 맥락은 사실과 차이가 있다”고 답했다.

최 원장은 “해당 회의에서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이 ‘(월성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은) 대선 공약이었으니 국민적 합의가 도출됐고, 국민 대다수가 지지한다’고 주장했다. 저는 그 발언이 정확하다고 볼 순 없다는 취지로 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의도와 관계없이 정치적 논란이 됐다는 점에 대해 저의 발언이 부적절한 부분이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했다. 최 원장은 ‘대통령이 시키면 다 하느냐’는 발언에 대해선 “회의 녹취록을 다시 살펴봤으나 그런 기록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열린민주당 김진애 의원은 친인척까지 문제 삼으며 최 원장을 압박했다. 그는 “최 원장의 동서가 원자력연구소의 연구직을 맡고 있는데,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과 관련이 있는 감사는 회피해야 한다’는 감사원법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최 원장은 “민간기업이 아니고 국책연구소 연구직인데 월성 1호기 조기폐쇄와 무슨 연관이 있는지 의문”이라며 “제척하거나 스스로 회피해야 할 사항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아울러 여권은 해당 감사를 담당하는 공공기관 감사국장이 21대 총선 직후 교체된 것을 두고 최 원장이 입맛에 맞는 감사 결과를 내려고 일부러 인사를 진행한 것으로 보고 있다. 최 원장은 “월성 1호기는 감사 내용에 부족한 게 있어서 추가 조사하기로 했고, 마침 국장 이동에 관한 인사 소요가 있었던 것”이라고 부인했다.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21대 국회 개원식에서 개원축하 연설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천지일보 2020.7.16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21대 국회 개원식에서 개원축하 연설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천지일보 2020.7.16

민주당 신동근 의원은 최 원장의 면전에서 사퇴까지 거론했다. 신 의원은 “대통령 국정 운영 철학과 맞지 않으면 감사원장을 사퇴하라”고 몰아붙였다. 소병철 의원은 “이제라도 원전 관련 업무에서 원장이 회피하는 게 맞다”고 촉구했다.

여기에 청와대까지 압박에 가세해 최 원장의 입지를 좁혀가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날 청와대는 최 원장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감사원의 독립성을 강조하면서 신중한 태도를 보였지만, 감사위원 임명에 대해 “임명권은 대통령에게 있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정부‧여당이 합심해 최 원장을 압박하면서 갈등이 증폭되는 가운데 야권에서는 여권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향해 총공세를 펼치는 것처럼 자신들이 임명한 감사원장을 찍어내려고 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1월 최 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스스로 자신을 엄격히 관리해 오셨기 때문에 감사원장으로 아주 적격인 분이시다. 잘 부탁드린다”고 했다. 민주당은 지난 2017년 12월 최 원장의 후보자 추천 당시 김현 대변인 논평을 통해 “합리적이며 균형감각을 갖춘 적임자”라고 환영한 바 있다. 최 원장의 임명 2년 6개월 정도가 지나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반하는 행동을 보였다는 이유로 여권의 태도가 180도 변해버린 것이다.

이에 대해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페이스북에 “혹시 감사에서 뭔가 걸렸나. 갑자기 왜 감사원장을 공격하고 나선 거지”라며 “이 사람들 평소에 하는 짓을 보면, 수틀리면 감사원장도 갈아치울 사람들”이라고 맹폭했다.

미래통합당 최형두 대변인은 논평에서 “최 원장에 대한 여당의 겁박이 도를 넘고 있다”며 “대통령은 감사원장 지명과 임명 당시 최 원장을 높이 평가했지만, 월성1호기 원전 조기폐쇄 감사를 원칙대로 진행하자 사정이 180도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여당 의원들이 ‘대통령의 뜻’을 받드는 양 감사원장을 집중 공격하고 있다”며 “자신들 구미에 안 맞는다고 헌법과 감사원법이 독립성을 보장한 국가 최고 감사기구 수장을 핍박하고 공격하는 모습에, 국민들은 ‘살아있는 권력도 엄정히 수사하라’며 대통령이 임명한 윤석열 검찰총장의 지금 모습을 함께 떠올린다”고 꼬집었다.

배준영 대변인도 구두 논평을 통해 “감사 사항을 최종 의결하는 감사원 최고협의체에 ‘내 편’을 앉히겠다고 한 것도 억지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이를 거부했다고 감사원장 흔들기에 나서고 있다는 사실”이라며 “불리한 결과가 나오지 않도록 압박하려는 의도로 의심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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