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시절] 멋쟁이 ‘코코 장’ 코코브라더스 장우
[그때 그 시절] 멋쟁이 ‘코코 장’ 코코브라더스 장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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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코브라더스와 포다이마믹스로 활동하며 70~80년대를 풍미했던 가수 장우 씨. ⓒ천지일보(뉴스천지)

“낭만의 쎄시봉 문화가 재현돼 기쁘다”
KBS 전속가수… 당시 TV 최다 출연
팝송 백과사전… 팝‧재즈계의 거장

[천지일보=백은영 기자] 통기타 하나만 있으면 그 어디라도 축제의 장이 될 수 있었던 시절. 생활은 어렵고 사회는 뒤숭숭했지만 음악이 있어 위로가 됐고, 노래가 있어 낭만을 느낄 수 있었던 그때 그 시절. 1960~70년대는 바로 그런 낭만의 시대였다.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들은 음악을 통해 하나가 되고, 음악 속에서 자유를 느꼈다. 팝송을 비롯해 당시 유행했던 음악을 마음껏 그리고 자유롭게 느낄 수 있던 음악감상실이 젊음과 자유의 상징처럼 유행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으리라.

추억할 수 있어 아름답지만 너무 빠르게 지나가버려 아쉬운 그 시절, 그 낭만의 때를 풍미했던 주인공들.

‘코코브라더스(박상규, 장우)’의 멤버이자 ‘포다이나믹스(Four dynamics)’ 멤버인 장우(본명 장영기) 씨 또한 팝과 재즈, 통기타로 통하는 60~70년대 낭만의 중심에 있었다.

장우 씨가 패션에 남다른 감각이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인터뷰를 위해 만난 그를 보니 ‘멋쟁이 코코 장’이라는 수식이 괜히 붙은 것은 아니구나 싶었다.

인사를 건네는 그의 목소리도 깊고 그윽했다. 조용조용 말하는 것 같지만 목관악기에서 나는 소리마냥 깊게 울리는 맛이 느껴졌다. 당시 유행하던 음악감상실에서의 인기도 대단했을 것 같다.

“당시 음악감상실은 젊은 세대들에게 새로운 문화였죠. 당시 유행하는 음악을 마음껏 들을 수 있던 곳이자 노래하는 이들에게는 맘껏 노래할 수 있는 무대였습니다. 당시 음악감상실 ‘쎄시봉’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젊음의 열기가 느껴질 정도였죠.”

일명 ‘코코 장’으로 불리면 60~70년대를 주름잡던 장 씨는 공군을 제대한 후 KBS 전속가수로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고등학교 밴드를 시작으로 대학 1학년 때 화양프로덕션 시험에 합격해 군대에 가기 전까지 미8군에서 활동한 경력이 공군 제대 후 KBS 전속가수, 미8군 전속가수(유니버설)로서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바탕이 됐다.

또 하나, 그가 가수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쎄시봉’에서 노래할 수 있었던 것도 몇 백 개가 넘는 팝송을 모두 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 모든 팝송을 거의 다 기억하고 부를 수 있을 정도라니 그 당시 팝송에 열광하던 젊은이들에게 그는 어쩌면 ‘걸어 다니는 (AFKN)라디오’와 같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인가. 사람들은 그를 ‘팝‧재즈계의 거장’으로 부른다.

한 번은 아프리카 세이셸(Sey chelles)공화국 독립기념일에 세이셸공화국 수상의 요청으로 직접 국가를 부르기도 했다니 당시 그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상상이 되는 대목이다.

▲ ‘따로 또 같이’ 활발한 활동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포다이나믹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준, 차도균, 장우, 박상규 씨. (사진제공: 코코브라더스)

‘따로 또 같이’ 활발한 활동

방송국 전속가수가 있었다는 것이 조금은 생소하다고 하니 당시엔 그랬었다며, “우리가 KBS에 응시할 당시 경쟁률이 높았어요. 예비로 몇몇 분은 있었지만 남자들 중에는 저하고 박상규 씨만 합격했었죠. 활동도 우리가 제일 많이 했어요”라고 회상했다.

그렇게 박상규 씨와 인연을 맺은 그는 1972년 코코브라더스로 함께 활동을 시작, 이듬해인 1973년에 예명 ‘코코 장’ 앨범을 전 세계에 보급하게 된다. 같은 해 우리나라 최초로 리사이틀(코코 장) 공연을 펼치는 등 한국 대중음악계의 새로운 문화를 창출해내는 것에도 힘을 쏟았다.

또 하나 특이할 만한 것은 각자 따로 활동하는 그룹이 있으면서도 1969년부터 지금까지 ‘포다이믹스’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준(쟈니브라더스), 박상규‧장우(코코브라더스), 차도균(키보이스)이 함께 펼치는 포다이나믹스의 공연은 4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결 같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그는 “각자 활동에 대한 외도가 아닌 ‘따로 또 같이’를 표어로 내건 서클활동 같은 것”이라며 “개성이 강한 네 사람이 모여 음악을 하니 묘한 매력이 생긴 것 같다”고 설명했다.

‘포다이나믹스’라는 이름은 한국경음악평론가이자 쎄시봉 문화를 만든 주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이백천 씨가 지어줬다고 한다. 원래 이들보다 먼저 포클로버(최희준, 박형준, 위키 리, 유주용)가 있었고 이 이름 역시 이백천 씨가 만들었다.

“당시 미국의 유명한 4중창단 브라더스 포(Brothers Four)가 시민회관(현 세종문화회관)에서 내한공연을 했어요. 그때 우리 네 친구가 구경하러 갔다가 그들과 사진을 찍으며 ‘우리는 한국의 멋쟁이 가수들이다’라고 소개했는데 그 모습이 이백천 씨 눈에 패기 있게 보였었나 봐요. 우리를 부르시더니 ‘포다이나믹스’라는 이름을 지어주셨죠.”

열정과 패기 외에 작사와 작곡에도 일가견이 있는 그는 ‘가시나요(장우 작사‧곡)’ ‘우정의 노래(김준 작사, 장우 작곡)’ ‘미련 때문에(최진희 노래, 장우 작사‧곡)’ 등을 만들어 대중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기도 했다.

음악, 따뜻함 그리고 아름다움

▲ 장우 씨는 음악을 통해 인간 본성의 아름다움을 찾아주는 것이 음악인이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사진제공: 코코브라더스)
당시 가요는 노래를 넘어서 감성을 자극하는 시적(詩的)인 면이 많았다. 그렇기에 더욱 사랑받을 수 있었고,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요즘 ‘쎄시봉’이 다시 주목받고 있잖아요? 저는 쎄시봉 문화가 다시 뜨고 있는 것을 굉장히 반기고 있는 사람입니다. 쎄시봉의 뜻도 ‘좋다’는 말 아닙니까?”

그는 조영남, 윤형주, 송창식과 같은 친구들이 나와서 쎄시봉 문화를 다시 부활시킨 것에 감사하다고 말한다. 비록 당시 쎄시봉을 이끌어왔던 1세대들과 또 다른 식구들이 주목받고 있지는 못하지만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그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라고 재차 강조한다.

그가 쎄시봉 문화를 반기는 이유는 다름 아닌 ‘아름다움’과 ‘따뜻함’ 때문이다.

“그 당시 음악은 가사가 아름다운 시로 돼 있었어요. 그때가 아날로그 음악시대라 할 것 같으면 지금은 디지털이라고 할 수 있어요. 모든 것들이 너무 발달돼서 음악도 기계처럼 되어버리는 것 같아요. 그래서 가사를 음미하려면 한참 걸리고 너무 분주하고, 난해하기도 하고. 우리 때는 그러지 않았는데….”

물론 지금도 좋은 음악들이 있다. 그렇지만 유행하는 음악의 대부분은 아날로그적이기보다는 디지털적이다. 아무래도 눈을 감고 음악을 들으며 시를 읊조리듯 따라 부르던 그 시절의 낭만은 찾기 힘들다.

“모든 것이 디지털이 된다고 해도 사람들은 디지털이 될 수 없어요. 사람들은 아날로그예요. 누구나 마음 깊은 곳에는 아날로그 정서가 있어요. 어느 사람이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성향이 있죠. 사람들 본연의 정서가 다시 그 아름다움을 찾아가려고 하기 때문에 ‘쎄시봉 문화’를 반기지 않나 싶어요. 그렇지 않나요?”

그는 개인이나 단체, 사회적으로 불안정한 모든 요소들이 안정을 찾고 본연의 선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그 누구보다도 음악을 하는 사람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 음악인들의 몫이라는 것이다.

‘통기타’라는 단어가 ‘포크송’ ‘팝’ ‘향수’ ‘젊음’ ‘낭만’을 떠올리게 하는 것처럼 그 시절의 음악은 한마디로 자유와 아름다움의 상징이었다.

이렇듯 사람의 마음을 울리고 설레게 만들었던 음악이었기에 깊고 그윽한 목소리의 ‘코코 장’이 사랑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었나 싶다.

음악에 대한 남다른 철학이 있다 했더니 그의 또 다른 명함이 ‘목사’라고 한다. 그보다 3년 정도 먼저 목사가 된 친구 윤항기 씨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음악 활동도 계속 하고 있기에 목회보다는 (문화)선교 쪽으로 일하면서 세계연예인선교회를 맡고 있는 그는 올드팝 중에도 선교하기에 적합한 노래가 많다고 말한다.

1990년대 중반 목사 안수를 받았을 때 일부 교계인사들이 더 이상 세상음악을 하지 말라고 했었지만, 세상 속에 신앙을 전파하라는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고 한다.

열린 신앙인의 마음, 또 음악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 있었기에 인생의 70대를 맞이한 그를 무대 위에서 만날 수 있게 됐으니 참 감사한 일인 것 같다.

포다이나믹스가 중심이 돼 정기적으로 호주 시드니 타운홀에서 교민들을 위한 공연을 펼치는 것도 이젠 호주이민사회에서는 유명한 일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유명 재즈가수와 함께 시드니에서 공연을 펼칠 것이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청춘은 나이가 아닌 열정과 패기라는 것이 다시 한 번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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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진 2011-04-11 13:50:55
음악의 따뜻함과 아름다움은 시대를 초월하여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고 어려운 시절을 이겨낼 수 있는 위로가 된다고 공감합니다. 쎄시봉의 문화 부활이 우리나라 경제에도 좋은 영향력을 줄 것이라 믿습니다. ~!^^

이방진 2011-04-11 13:37:37
세시봉 시대에 옛날이 그리워지네요

박지은 2011-04-10 23:15:16
시간이 많이도 흘렀습니다
모두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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