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선권 씨는 음악감상실 쎄시봉에는 DJ와 통기타, 젊음 그리고 낭만이 가득했다고 회상했다./사진 김지윤 기자 ⓒ천지일보(뉴스천지)

“쎄시봉, 혼탁한 문화를 정화시킬 수 있는 힘”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전폭적 사랑 받아삶과 음악 그리고 이야기가 있는 시절

[천지일보=백은영 기자] “그 시절의 음악은 지금 들어도 좋아요. 젊은이든 나이 든 사람이든 똑같이 열광하고 있어요. 시대를 아우르는 좋은 음악은 유행이 없는 거죠. 그런데 요즘은 그런 음악을 찾기가 쉽지 않아요. 노래라는 것이 그래요. 성경 말씀에도 있지만, 가사에 배어있는 게 우리의 혼을 찌르고 쪼개야죠.”

삶에 지쳐 힘들어하는 이들의 마음에 평안을 주고, 퇴색되어진 것들에 새로 색을 입힐 수 있는 아름다운 노랫말들이 다시 유행하는 것을 반기는 이유가 담긴 대목이기도하다.

의미 없는 읊조림이나 알아듣기도 힘든 노래가 아닌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고,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노래가 많이 나오길 바란다는 그에게 쎄시봉은 추억이자 혼탁한 문화를 정화시킬 수 있는 ‘힘’이다.

쎄시봉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는 그는 한국경음악평론가 이백천(78, 한국포크싱어연합회 고문) 씨에 대해 “그 당시에도 21세기를 가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앞서가신 분이었다”고 소개했다.

“동양텔레비전 프로듀서로 활동하시면서 쎄시봉에서 MC를 보셨어요. 쎄시봉의 프로그램과 문화를 만드는 데 일등공신이셨죠. 너무 똑똑하시고 차원이 높으셔서 당시에는 ‘현실 가능한 것을 얘기하십시오’라는 말도 많이 했었어요. 그런데 그런 게 지금 현실로 다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에요.”

‘데이트 위드 쁘띠 리’를 진행하던 이백천 씨가 새롭게 시작한 ‘대학생의 밤’은 그야말로 히트를 쳤다. 피아노와 스포트라이트가 준비됐고, 패기 있는 젊은이들이 나와 노래를 불렀다.

당시 피아노 반주는 김강섭(전 KBS 악단장), 김용선(TBC 악단 편곡자 겸 피아니스트) 씨가 교대로 맡았으며, 이 무대를 통해 한국대중음악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코코브라더스의 박상규와 장우, 이창림, 조영남, 송창식, 윤형주, 이익균, 이장희 등이 탄생했다. 미국에서 돌아올 때 미니스커트를 입어 화제가 됐던 윤복희 씨도 쎄시봉 무대에 섰다고 한다.

또한 쎄시봉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DJ 스태프로 TBC TV ‘쇼쇼쇼’ PD와 음악케이블 방송 Mnet 전무를 역임한 조용호 PD, 동아방송 아나운서이자 KBS 속초지국 총국장을 지낸 박광희 PD, 현 명동예술극장장 구자흥, 영문학자이자 수필가 피천득 교수의 아들 피세영(성우, 라디오 DJ) 씨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쎄시봉은 가수들의 탄생뿐 아니라 명 MC들의 데뷔 무대이기도 했다. 당시 홍익대 미대 학생이던 이상벽 씨도 쎄시봉에서 ‘삼행시 백일장’과 ‘대학생의 밤’ MC를 맡으면서 명 MC로서의 발판을 만들어갔다.

재치 있는 입담과 능숙한 진행을 눈여겨 본 이선권 씨는 자신이 프로듀서로 있던 CBS 라디오의 한 프로그램 MC로 이 씨를 소개해주기도 했다.

요일별로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됐던 쎄시봉의 프로그램 중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또 하나는 ‘성점(星點)감상실’이다.

별의 개수로 영화나 음악 등에 점수를 매기는 방식으로 지금은 흔하지만 당시에는 가히 파격적인 시도였다.
가수들도 그곳에서 자신의 신곡을 선보이고 반응을 보는 경우가 있었다고 하니 그 인기가 보통이 아니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성점감상실 또한 이백천 씨의 아이디어라고 한다. 주간한국에 창간될 당시 ‘뭔가 좋은 아이템’을 위해 이 씨를 찾았던 정홍택 기자와의 만남으로 탄생하고 진행된 것이란다.

“쎄시봉은 단순히 노래만 부르고 듣는 곳이 아니었어요. 학생들, 청년들의 대화와 소통의 장소이자 새로운 문화가 시작된 곳이었죠. 노래하는 사람이 있고, 듣는 사람이 있고 또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고, 모두가 어울릴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던 낭만의 장소라고 말할 수 있어요.”

한 번은 ‘대학생의 밤’에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강사로 초청돼 학생들과 토론하고 얘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고 한다. 그의 말처럼 쎄시봉은 그저 단순히 노래만 듣고 부르던 장소는 아니었다. 개개인의 고뇌 외에도 정치․사회적 문제를 함께 고민하던 청년들이 머리를 맞댄 곳이기도 했다.

150~200평 남짓한 공간. 수천 장에 이르는 앨범이 DJ가 들어앉은 사각형의 작은 방 사면에 빼곡히 꽂혀져 있던 곳. 피아노와 통기타의 선율에 맞춰 때론 웃고, 때론 울며 한 시대를 살아갔던 청춘들.

쎄시봉 주인의 아드님이자 DJ 이선권 씨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문득 그 시절의 낭만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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