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남편과 의붓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고유정이 20일 오후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제주지법에 도착해 호송차에서 내리고 있다. 2020.2.20 (출처: 연합뉴스)
전 남편과 의붓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고유정이 20일 오후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제주지법에 도착해 호송차에서 내리고 있다. 2020.2.20 (출처: 연합뉴스)

항소심, 1심과 같은 前남편 살해만 인정한 무기징역

의붓아들 살해 혐의 “동기 부족…직접 증거 불충분”

전 남편 살해 혐의 “졸피뎀 먹이는 등 계획 범행”

1심도 “남편 다리 눌려 사망 가능성 배제 못해”

유족 측 “얼마나 잔인해야… 국민 법 감정과 동떨어져”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전 남편을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유기하고, 또 의붓아들을 숨지게 한(살인·시체손괴·은닉)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고유정(37)이 항소심에서도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이번에도 ‘의붓아들 살해’ 혐의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광주고법 제주재판부 1형사부(왕정옥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10시 고유정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을 열고 1심과 같은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전남편인 피해자를 면접교섭권을 빌미로 유인, 졸피뎀을 먹여 살해하고 시신을 손괴·은닉하는 등 계획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며 “그럼에도 피고인은 피해자가 자신을 성폭행하려다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질렀다는 변명으로 범행을 부인하고 있어 중형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의붓아들 살해 혐의에 대해선 살해 동기 부족과 직접 증거가 미흡한 점을 등을 들어 무죄로 봤다.

지난 6월 1일 오전 10시 32분께 충북 청주시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제주동부경찰서 형사들에 의해 살인 등 혐의로 긴급체포되는 고유정의 모습. (출처: SBS·세계일보)
지난해 6월 1일 오전 10시 32분께 충북 청주시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제주동부경찰서 형사들에 의해 살인 등 혐의로 긴급체포되는 고유정의 모습. (출처: SBS·세계일보)

재판이 끝난 뒤 피해자 측은 모두 결과에 불만을 나타냈다.

전 남편 측 강문혁 변호사는 “시신을 알아볼 수조차 없게 손괴하고 은닉했는데도 사형 판결이 나오지 않은 점에 동의할 수 없다”며 “이런 잔혹한 범행에 있어서 국민의 법 감정과 동떨어진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의붓아들의 아버지인 현 남편 측 이정도 변호사도 “살인죄의 경우 합리적 의심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는 엄격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에 따른 것으로 보이는데, 이 사건과 같이 밀실에서 이뤄진 범행인 경우 가해자가 증거를 인멸하고 이에 더해 부실한 수사가 더해진다면 살인죄를 입증할 방법이 요원해진다”며 “이런 상황에서 간접 증거만 존재한다는 이유로 살인죄를 적용할 수 없다는 논리는 인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고유정은 지난해 5월 25일 오후 8시 10분에서 9시 50분 사이 제주 조천읍 소재 한 펜션에서 전 남편 강모(35)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하고 유기한 혐의(살인·사체손괴·은닉)로 구속기소됐다.

이후엔 의붓아들 살해 혐의까지 추가돼 재판을 받았다. 검찰은 고유정이 지난해 3월 2일 오전 4~6시쯤 충북 자택에서 잠을 자던 의붓아들(5)의 등 뒤로 올라탄 뒤 의붓아들의 얼굴을 침대 매트리스에 파묻고 뒤통수를 10분 정도 강하게 눌러 피해자를 살해했다고 판단했다.

전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고유정(36)이 제주동부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와 진술녹화실로 이동하고 있다.앞서 지난 5일 제주지방경찰청은 신상공개위원회를 열어 고씨의 얼굴, 실명 등 신상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출처: 연합뉴스)
전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고유정(36)이 제주동부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와 진술녹화실로 이동하고 있다.앞서 지난해 6월 5일 제주지방경찰청은 신상공개위원회를 열어 고씨의 얼굴, 실명 등 신상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출처: 연합뉴스)

앞서 1심 재판부는 지난 2월 20일 전 남편 살해 혐의는 유죄를 인정하고, 의붓아들 살해 혐의는 범죄의 증명이 부족하다며 무죄로 보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1심은 “간접증거만으로 유죄를 입증할 수 있다하더라도 간접 사실 사이에 모순이 없어야 하고 과학법칙에 부합돼야 한다”면서 “의심사실이 병존할 경우 무죄추정의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고 이유를 밝혔다.

이어 “피해자의 사망 원인이 비구폐쇄성 질식사로 추정됐으나, 피해자가 같은 또래의 아이들에 비해 왜소하고 통상적 치료 범위 내에 처방받은 감기약의 부작용이 수면 유도 효과임을 고려해 봤을 때 아버지의 다리에 눌려 사망했을 가능성 등을 배제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 “현 남편의 모발에서 수면제 성분이 검출됐으나 고유정이 차에 희석해 먹였다고 확증할 수 없다”고도 덧붙였다. 의붓아들 사건에 대한 검찰 증거 대부분을 인정하지 않은 셈이다.

살인죄는 경험칙과 과학적 법칙 등으로 피고인이 고의적으로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배제할 수 없다면 인정할 수 없는 것이고, 그것이 우리 헌법상 원칙이자 대법원의 일관된 법리라는 게 1심 재판부 설명이었다.

검찰은 항소심에서도 고유정에 대해 사형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얼굴 가리고 2차 공판 출석하는 고유정【제주=뉴시스】‘전 남편 살해 사건’ 피고인 고유정(36)이 2일 제주지방법원에서 열린 2차 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법정에 출석하고 있다.
전 남편 살해 사건’ 피고인 고유정. (출처: 뉴시스)

지난달 17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부검결과를 토대로 누군가 고의로 피해아동을 살해한 것이 분명하다”며 “외부 침입 흔적도 없다면 범인은 집 안에 있는 친부와 피고인 중에서 살해동기를 갖고 사망추정 시간 깨어있었으며, 사망한 피해자를 보고도 보호활동을 하지도 슬퍼하지도 않은 사람”이라고 고유정을 피해아동 살인자라고 재차 지목했다.

또 검찰은 고유정이 자신의 살해욕구 충족을 위해 3개월 이내에 잇따라 2건의 살인을 저질렀다며 이 사건이 ‘연쇄살인’이라고도 강조했다.

검찰은 “고유정이 아버지 앞에서 아들을, 아들 앞에서 아버지를 살해하는 연쇄살인 범죄를 저질렀다”며 “범행 수법이 지나치게 잔혹하고 지난 공판동안 반성의 기미가 전혀 없는 점 등을 종합해 사형을 선고해 달라”고 1심과 유사하게 구형 이유를 밝혔다.

전남편 살해 혐의로 구속기소된 고유정이 16일 오후 세 번째 재판을 받기 위해 제주지법으로 이송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전남편 살해 혐의로 구속기소된 고유정. (출처: 연합뉴스)

고유정은 최후진술에서 “법원이 지켜보는 면접교섭권이 진행되는 동안 전 남편을 죽일 계획을 세우는 사람이 어디 있냐”며 “찔러 죽일 생각이었다면 카레며 갈비탕, 황태 등 며칠간 먹을 음식을 살 필요도 없었을 것”이라면서 전 남편 살인이 우발적인 사고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재판장님도 아실 것”이라며 “전 남편이 마지막으로 통화한 사람은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중국여자다. 통화가 무엇을 떠올리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접촉을 시도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나는 보수적인 여자여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전 남편의 접촉 시도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며 “저를 큰 몸으로 제압했고, 그가 집중하는 사이에 손에 잡힌 칼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항변했다.

의붓아들 살해 혐의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없어 드릴 말씀이 없다”고 말을 아꼈다. 앞선 재판과정에선 현 남편 측이 의붓아들 죽음을 꾸몄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또 고유정은 “저의 희망은 이제 앞에 계신 3명의 판사님 뿐”이라며 “무자비한 언론의 십자가를 지셔야 되지만, 어려우시더라도 부디 용기를 내달라”고 선처를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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