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칼럼] 백선엽 장군의 서거와 박원순 시장의 사망
[호국칼럼] 백선엽 장군의 서거와 박원순 시장의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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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순휘 정치학박사/한국문화안보연구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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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밤 11시에는 구국의 명장 백선엽 장군의 서거라는 비보(悲報)가 있었다. 고(故) 백선엽 장군은 일제 치하 1920년 11월 23일 평안남도 강서에서 태어나 한국 근대사의 증인으로 특히 군인으로서 대한민국의 오늘을 지켜준 국민적인 영웅으로 존경받는 분이셨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몰지각한 자들의 친일파운운의 음해(陰害)로 노년에 많은 상처를 입으셨던 점이 있다.

백 장군을 흠집내고자 일본제국의 만주국 육군 중위(당시 22세)로 간도특설대 복무한 사실을 친일행적으로 침소봉대(針小棒大)해 마치 독립군 소탕작전의 책임자인냥 매도(罵倒)하는 것은 파렴치한 짓이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어느 나라의 군대이고 계급과 직책에는 그 역할과 임무가 제한돼 있다. 장교라고 다 같은 것이 아니고 계급과 직책에 따라 철저한 권한의 한계와 역할의 제한으로 통제되는 상하계급사회인 것이다. 1941년 육군 소위 백선엽(22세)이 임관해 부대배치를 받았다면 당연히 소대장이었을 것이고 지시대로 임무 수행하는 단순한 장교생활이었다. 그리고 만주지역 항일독립군이 활동하던 시기(1939~1943년)에 육군 중위 백선엽(24세)은 일개 참모장교로서 토벌작전과 관련해 주요임무나 역할이 주어질 수 있는 계급이 아닌 나이 어린 위관장교였을 뿐이었다. 그런데 영관급 지휘관이라도 돼 독립군을 토벌한 것처럼 죄과를 덮어씌우는 친일프레임으로 구국의 영웅을 폄훼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일본군의 간도토벌대는 백선엽 소위가 배치되기 전에 대대적인 만주지역 사전 토벌작전으로 독립군이 조직적으로 약화된 시기라는 기록된 사료가 있다. 백 중위가 일본군복을 입고 근무한 것은 사실이나 근거도 없이 독립군을 토벌하던 친일분자로 낙인을 찍어 인격살인(character killing)을 하는 행위는 더 이상 양해(諒解)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나라도 없고 군대도 없는 일제 식민지 시대에서 망국(亡國) 대한제국의 청년들이 내선일체(內鮮一體)라는 시대조류에서 직업에 대한 판단과 선택의 길이 과연 얼마나 있었겠는가? 왜 안중근, 이봉창, 윤봉길의 길을 가지 않았느냐고만 따진다면 그런 우리 선대(先代)의 분들은 그 시대에 무엇을 했다는 것인가? 물론 이러한 논지의 전개가 가정(假定)에 근거해 다소 무리한 바가 없지 않으나 이제는 친일도 친일 나름이라는 점을 분별하는 합리적인 시각을 재론(再論)해야 한다. 해방 후 대한민국을 위해 어떻게 헌신 봉사했는지도 면밀하게 평가한 관점에서 친일이니 부역이니 민족 반역이니 최종 판단하는 것이 사리에 맞다고 본다.

고인께서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편찬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는 수모를 안고 살았지만 선정기준에서 제시된 “이 중 민족반역자는 전부를, 부일협력자 가운데서는 일정한 직위 이상인 자를, 그 외 정치적 사회적 책임을 물어야 할 친일행위가 뚜렷한 자를 수록대상으로 선정하였다”는 카테고리에는 배제가 돼야 할 고려요소가 충분하므로 정정되기를 기대한다. 백 장군의 경우에는 ‘일정한 직위이상’을 적용해 본다면 일개 위관급 중위시절의 복무 사실만으로 ‘국권침탈, 식민통치, 침략전쟁’에 앞장선 친일파로 매도하는 것은 친북좌파적 관점에서의 접근기준으로 부적절한 측면이 많다.

더욱이 고 백 장군은 70년 전 1950년 6.25전쟁 시 백척간두(百尺竿頭)의 국가존망의 위기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북한공산군과 싸워서 대한민국을 지켜낸 참 군인으로 그 업적이 지대하고, 한미동맹의 상징적 인물로서 미군들에게도 존경을 받아오신 분이 아닌가? 과연 대한민국이 그 분에게 얼마나 많은 빚을 졌는지를 서거의 영전에서 성찰해봤으면 한다. 고 백선엽 장군은 ‘친일이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반면에 박원순 시장은 개인적인 비리 중에서도 가장 저질인 성추행 문제로 공직자로서 배임행위라고도 할 수 있는 자살(自殺)을 하는 추문을 남겼다. 이 의문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서울시민과 국민들이 충격을 받았으며, 전 세계적으로 대한민국의 국격을 떨어뜨리는 일이 됐다.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했느냐를 떠나서 고위 공직자로서 자살만이 탈출구였을까 하는 관점에서 소위 국민의 지도자로 살아왔다는 삶의 철학이 무엇이었기에 이리 무책임하게 자살했는지 유감스럽다. 불리하다고 자살하는 것은 비겁한 것이다. 박 시장의 조부와 부는 공산주의 운동을 했다는 점보다도 그의 시민운동에 봉사한 점을 평가받아서 그 자리에 오른 것 아닌가? 그렇다면 언행일치의 삶을 보여줬어야 했다. 그런데 이 부끄러운 자살의 수습이 가족장이 아니고 서울시장(葬)으로 10여억원의 세금을 사용한다고 하고, 청와대 민원청구에는 벌써 50여만명의 국민들이 반대를 하고 있다니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 국민들은 참으로 혼란스럽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죽음이 다 같지 않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두 장의 사진이다. 그의 아들이 귀국했다고 한다. 아들의 지혜로운 판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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