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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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강수경 기자] 부활(復活)절이다. 부활(復活)은 다시 산다는 뜻이다.

기독교를 부활의 종교라고 지칭할 만큼 부활절은 기독교의 정체성을 대변한다. 부활은 예수가 인류의 죽음을 해결한 첫 주인공임을 나타낸 사건이다. 또 석가모니가 평생을 구했던 생로병사(生老病死)의 답이 기독교에 있음을 입증한 사건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탄생 과정부터 범인(凡人)들과 구별된다. 태어나기 전에 일대기가 미리 기록된 사람은 인류 역사상 예수가 유일하다. 예수의 삶은 태어나기 수백년, 수천년 전부터 구약 선지자들을 통해 미리 기록됐고 성경대로 와서 성경대로 살며 구약의 예언을 이뤘다. 예수의 십자가 지심, 부활 역시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 ‘인류의 죄’를 해결해 인간과 다시 함께하려는 창조주의 계획 아래 이뤄진 사건이었다. 예수 부활 후에야 제자들은 창조주의 심오한 뜻을 깨닫고 자신들도 부활할 수 있다는 소망을 갖고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파했다.

그 결과 예수와 12제자로 시작된 기독교 인구는 2015년 퓨리서치 인구 통계 기준 23억명으로 인류의 31.2%를 차지한다.

◆ 사도바울이 기록한 ‘부활과 영생’의 모습

예수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요한복음 11장)”이라고 했다.

부활과 영생을 비과학적이라고 말하지만, 원래 종교(宗敎)는 초과학적이다. 사도바울은 고린도 전서 15장을 통해 부활과 영생에 대해 자세히 기록했다. 특히 부활이 없다는 자들을 질책하면서 죽은 자의 부활이 있음을 단언하고 산 자의 영생에 대해서도 기록했다.

기록을 보면 당시 그리스도인들도 죽은 자들이 생전 모습으로 부활하는지, 육체 이대로 영생하는지를 궁금해 했다. 이에 대해 사도바울은 ‘이런 질문 자체를 어리석다’면서 씨와 열매의 모습에 빗대 부활과 영생을 설명했다. 즉 씨와 열매가 근본은 같으나 모습이 다르듯 육신이 죽었다 부활한 자들은 원래 모습이 아닌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고, 살아서 영생하는 자들도 현재의 육체 그대로가 아니라 ‘변화되어’ 영생하게 됨을 기록했다. 이 모든 일은 마지막 나팔이 불릴 때 이뤄질 것을 함께 기록하고 있다.

◆ 사도신경 속에도 부활과 영생, 정말 믿는지는 의문

기독교가 공인된 후 신학자들은 논의 끝에 ‘사도신경’을 만들어 신앙고백을 하게 했다. 사도신경의 결론은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는다”는 것이다. 문자 그대로 ‘몸이 다시 사는 것(부활)’을 믿었기에 오랜 세월 교회에서는 화장(火葬)을 못하게 했다. 영원히 사는 것(영생)은 문자 그대로 현재 육체 이대로 (변화 없이) 영생하는 것을 믿는다는 것이어서 성경과는 차이가 있다.

이런 대단한(?) 신앙고백을 하는 기독교인들에게 ‘부활과 영생을 믿느냐’고 물어보면 답을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되레 ‘영생을 믿는다’는 이유로 특정종단을 이단시하는 게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행태다. 이는 자신이 하는 사도신경의 뜻도 모르고 성경에 약속된 ‘영생과 부활을 믿지 않는다’고 고백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부활절은 단순히 예수가 부활했다는 것을 기념하는 날이 아니다. 부활과 영생을 바라며 순교한 선진들을 생각하며 그리스도인 스스로 예수처럼 부활에 들어가기를 소망하고 그런 자격을 갖춰갈 것을 다짐하는 날이다.

‘밤새도록 울고 나서 누가 죽었냐고 물었다’는 속담이 있다. 오늘 부활절 예배를 드리는 기독교인만이라도 부활과 영생의 의미를 알고 믿는지 자문자답하며 성경에 자신을 비쳐보는 부활절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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