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아가는 이 세상은 사회와 종교의 측면에서 운행되어 가고 있다. 어떻게 보면 사회는 다시 종교의 보이지 않는 지배를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한 대표적인 예가 지난번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길자연 목사와 대통령의 무릎기도건과 같은 해프닝이 아닌가 싶다. 오늘날 참으로 많은 종교가 제각기 나름의 종교관을 앞세워 이 사회의 구성원이기도 한 신도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으며, 신도들은 또 그것을 좋게 여기며 따라가고 있다.

그래서 종교가 살아야 사회와 나라가 산다는 말이 있는가 보다. 그런 가운데서도 유별난 종교가 있으니 바로 기독교다. 다른 종교는 아직 제대로 들어나지 않았고 밝혀지지 않아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유독 기독교는 이 사회에 독선과 아집으로 소란과 소요를 끊이지 않게 하고 있으니 참으로 조홧속이란 말 밖에 할 말이 없다.

범종교지로서 많은 종교지도자들과 신앙인들을 접해 본 결과 역시 같은 결론을 얻게 된다. 몇억 년 전의 인류를 말하는 학자가 기독교 신앙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6000년 전 아담이 최초의 인류의 조상이라고 믿고 말하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발생한다. 이러한 이치와 상식을 떠난 종교관이 정리되지 않고서는 우리의 신앙도 이 나라의 미래도 요원하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그래서인지 의식 있는 목회자들의 회개가 이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각처에서 부정․음란․금전․권력의 욕심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는 고해성사가 들리고 있다. 지난 10일 저녁 기독교 100주년기념회관에서도 최요한 목사의 양심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대상은 역시 기독교 권력의 메카인 한기총의 수장 길자연 목사였고, 핵심은 금권타락으로 인한 부정과 비인간적인 처사에 대한 고발이었다.

최요한 목사는 길자연 목사로부터 한기총 대표회장 선거를 돕는 조건으로 1400만 원, 홍00 목사는 3000만 원의 돈 봉투를 각각 받았다고 털어놨다. 또 그는 CTS(기독교TV) 감경철 회장의 5억 횡령비리를 확실하게 밝혀주겠다는 약속 때문에 선거를 도왔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길 회장은 불법타락선거로 당선된 후에 외려 CTS 감 회장을 한기총 방송통신 특별위원장으로 세웠다고 분노했다.

하늘을 무서워하지 않는 자가 하늘의 하나님을 팔아 돈과 명예와 권력으로 신도들은 물론 세상까지 어지럽히고 있는 종교 정치현실을 똑똑히 보고 있다. 부정과 비리와 타락의 먹이사슬에 얽혀 있던 중세종교사회의 가장 더럽고 추하고 악랄한 망령들이 수백 년이 지난 지금 이 시대에 되살아나 우리를 혼란케 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신기한 것은 이러한 현실을 듣고 보고도 깨닫지도 분노하지도 않는 이 사회와 신앙세계가 더 놀라운 일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얼마만큼 그렇게 세뇌되고 길들여져 왔는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말이 있다. 자신들의 허물을 감추기 위해, 진리와 진실을 감추기 위해, 또 교인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매일 같이 연구하는 게 있다면 이단 만들기다. 그들이 왜 이단이냐는 질문에는 하나같이 ‘나 또는 우리와 다르기 때문이다’라는 어이없는 대답뿐이다. 이단이었다 할지라도 돈과 함께 하나가 되면 면죄부를 받게 되니 중세마녀사냥의 망령이 오늘날 다시 살아났다는 증거다.

그래서 종교권력이라 하는 것이며, 또 종교권력이 가능할 수 있는 것은 따르는 교인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맹(盲)신자로 양육하는 것이다. 즉, 눈과 귀를 가리고 못 듣게 하여 참과 거짓에 대한 분별력을 상실케 만들어 놓은 것이다. 또 무지한 백성으로 만들 수밖에 없는 이유는 지도자가 무지하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2000년 전 예수가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는 말씀을 남겼을까. 만약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보지 못한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종교는 하나의 약속 즉, 예언이다. 그런데 이 약속은 이루어지는 성취를 전제로 한다. 그리고 그 이루어진 것을 실상(實像)이라 한다. 예를 들면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혀 숨지기 전 그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했다. 구약이라고 하는 모세의 율법 속에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하여금 미리 약속한 말씀들을 하나하나 다 이루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당시 종교지도자(서기관/바리새인)들은 성경은 보고 있었지만 그 성경(구약) 속에서 하나님이 약속한 말씀들이 실상으로 다 이루어지고 있음을 깨닫지 못했으니,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마치 소경과 귀머거리나 다름없었다는 의미다.

다시 말하자면 못 본다 하는 것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들어 약속하신 일들을 하나님이 이룰 때가 되어 예수에게 와서 이루어 놓은 실상을 보여 줘도 보지 못하니 소경이 되고 귀머거리가 된다.

오늘날도 한 세대가 가고 한 세대가 오는 교차점 즉, 신약이라고 하는 성경이 이루어지는 시점에서 보고 듣는 눈과 귀가 없어 이뤄놓은 것을 보고 듣지 못한다면 이 시대 또한 그 때와 같은 과오를 저지르며, 온 세상을 소요케 할 수밖에 없음을 그야말로 귀 있는 자는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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