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3일 만에 불구속 재판으로
재판부 기피신청에 구속 장기화
재판 재개되자 바로 보석 청구
연락 제한 등 조건 걸고 인용
사법농단 관련 구속피고인 ‘0’
양승태도 지난해 7월 석방돼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이른바 ‘사법농단’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한 보석이 허가됐다.
13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윤종섭 부장판사)는 “피고인에 대해 보석을 허가할 수 있는 상당한 이유가 있다”며 청구를 받아들였다.
지난 3일 보석을 청구한 임 전 차장은 지난 10일 보석 심문에서 “단순히 공소사실을 다투거나 자백을 거부한다며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고 봐서는 안 된다”면서 “증거인멸에 분명한 혐의를 보여야 한다”고 증거인멸의 우려로 보석을 불허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임 전 차장은 지시 전 과정을 시행한 핵심 인물로 증거가 오염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반대했지만 재판부의 판단은 보석 인용이었다. 다만 재판부는 검찰의 우려를 받아들여 조건부 보석을 허가했다.
그 조건은 ▲법원이 지정하는 일시·장소에 출석하고 증거를 인멸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제출 ▲보증금 3억원을 납입(보증금은 보석보증보험증권 첨부 보증서로 갈음 가능) ▲법원이 지정하는 장소로 주거를 제한(변경할 필요가 있는 때는 미리 법원의 허가 필요) ▲출국을 할 경우 미리 법원의 허가 필요 ▲직접 또는 변호인, 기타 제3자를 통해서도 재판에 연관된 인물을 만나거나 어떤 방법으로도 연락을 주고받지 않을 것 등이다.
이로써 2018년 10월 27일 구속된 임 전 차장은 503일 만에 바깥 공기를 쐴 수 있게 됐다. 1심의 구속 기한은 6개월인데, 임 전 차장이 이토록 오래 구속 생활을 한 이유는 재판부 기피신청 때문이었다.
임 전 차장 재판은 그간 변호인의 전원 사임 등의 이유로 재판이 계속 파행을 겪으며 공전했다. 그 사이 임 전 차장의 구속 기한이 다가왔고, 법원은 임 전 차장이 풀려나는 것을 막기 위해 추가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에 반발한 임 전 차장이 재판부 기피 신청을 하면서 재판은 더욱 장기화됐다.
항고와 재항고까지 이뤄진 재판부 기피신청은 올해 1월이 돼서 대법원이 최종 기각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다시 재판이 재개되자 임 전 차장은 곧바로 보석을 청구하면서 1년 4개월의 수감 생활이 끝이 났다.
한편 임 전 차장이 풀려나면서 ‘사법농단’으로 기소된 전·현직 법관들이 모두 불구속 재판을 받게 됐다. 사법농단 의혹의 정점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이미 지난해 7월 재판부 직권 보석으로 석방된 바 있다.
당시 양 전 대법원장도 구속 기한 만료가 가까워진 시점에서 검찰이 의견서를 통해 “양 전 대법원장을 보석으로 석방하되 증거인멸 우려를 최소화할 수 있는 합리적 보석 조건을 부여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밝혔고, 재판부도 구속 취소 결정 대신 여러 가지 조건을 붙인 보석을 허가하는 방향으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해당 재판부도 임 전 차장과 비슷한 ▲주거 제한 ▲사건 관계자와 연락 제한 ▲보증금 3억원 납입 등의 조건을 양 전 대법원장에게 내걸고 보석을 허가했다.
구속 만료를 앞둔 양 전 대법원장으로선 부당해 보일 조건이었지만, 보석을 거부하는 전례를 찾기 힘들다는 점에서 보석 조건을 받아들이기로 결론이 난 것으로 추측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