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지난해 성희롱 진정 173건… 구제율 67%” (제공: 국가인권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천지일보DB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됐지만

문제점 여전… ‘470명’ 괴롭힘 당해

피해자, 대인기피 등 트라우마 심각

신고자 절반, 제대로 보호받지 못해

[천지일보=최빛나 기자] 승진이나 임금인상 등을 전제로 성관계를 제안 받거나, 회식참여를 강요당하는 등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이후에도 체육단체 및 기관종사자에게 가해지는 인권침해의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가인권위원회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인권위)은 체육 관련 단체·기관 종사자에 대한 성폭력 등 인권실태를 조사한 결과, 최근 1년 이내 직장 내 괴롭힘 피해(34.1%), 성폭력 피해(10.0%)로 나타났다고 5일 밝혔다.

인권위의 의뢰로 ㈜한국정책리서치가 수행한 이번 조사에는 대한체육회, 대한장애인체육회, 국민체육진흥공단 등 체육 관련 단체 및 기관 종사자 1378명(여성 541명, 남성 837명)이 참여했다.

조사결과, 지난해 7월 16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체육단체 및 기관의 조직문화 내 괴롭힘이나 성폭력 피해사례가 다수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응답자의 86.0%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 관련 법령이 시행된 사실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소속 단체나 기관에서 최근 1년 이내 직장 내 괴롭힘을 한번이라도 당한 경험에 대해서는 470명(34.1%)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구체적인 괴롭힘 유형별 피해는 ‘회식참여 강요’가 16.7%로 가장 높았고, ‘개인사에 대한 뒷담화나 소문’ 16.2%, ‘욕설 및 위협적인 언행’ 13.4%, ‘음주 또는 흡연 강요’ 13.1%, ‘훈련·승진·보상’과 ‘일상적인 대우 등에서의 차별 경험’이 각 12.8%, ‘정당한 이유 없는 부서이동 또는 퇴사 강요’가 4.5%로 나타났다.

괴롭힘 피해를 당한 20대 비정규직 여성은 “평소에도 갑질이 심하지만 (계약기간이 끝나가는) 연말만 되면 더 심해지는 갑질에 화가 나고 짜증이 난다”며 “회식이나 식사자리에서도 어른이 숟가락 놓기 전에 먼저 놓지 말라느니 버릇이 없다는 말을 하고, 어깨를 주무르고 등 허리춤을 쓰다듬으며 성희롱도 한다”고 밝혔다.

빈도수로는 2~3회를 경험했다는 응답자 비율이 가장 높게 나타났고, 10명 중 1명은 10회 이상 괴롭힘 피해를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직장 내 괴롭힘의 가해자는 상급자나 상사가 가장 많았고, 기관 임원중 상근이 20%, 비상근이 7% 내외로 파악됐다.

체육 관련 단체와 기관 종사자들이 겪는 성폭력 등 피해와 이로 인해 발생되는 트라우마(후유증)도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성폭력의 유형별로는 ‘불쾌감을 주는 성적인 농담, 성적 이야기 등을 하는 행위(전화통화 포함)’가 6.2%, ‘회식자리 등에서 옆에 앉혀 술을 따르도록 강요하는 행위’ 4.5%, ‘포옹, 손잡기, 신체밀착, 안마, 입맞춤 등의 신체 접촉행위’ 3.3%로 나타났다.

주요 가해자는 상사와 동료가 가장 많았고, 상근 및 비상근 임원, 소속 선수와 지도자 또는 상급 기관 임직원과 관련 공무원인 것으로 파악됐다.

30대 정규직인 한 여성은 “최고 권력자가 여자지도자의 외모를 회의시간, 외부손님들 앞에서 평가하거나 ‘차는 여자가 타야 맛있다’고 하고, 쓰다듬는 듯 행동을 하며 어깨동무를 했다”고 토로했다.

최근 1년 이내에 직장 내 괴롭힘(성희롱·성폭력 포함)을 당한 응답자(484명)는 ‘분노·적개심·복수심(29.7%)’, ‘무기력·우울감(20.5%)’, ‘수치심(19.3%)’, ‘불안감(12.4%)’, ‘수면장애(10.2%)’, ‘대인기피(8.7%)’ 등 트라우마도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 내 괴롭힘이나 성폭력 등 피해를 당해도 조사나 구제를 받을 수 있는 체계는 미흡 한 것으로 조사됐다.

종사자들 중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내부 공식절차를 밟은 경우는 10.2%로, 피해자의 28.2%는 내·외부 신고기관에 신고도 하지 않고, 주변동료들에게 알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내·외부 기관이나 주변동료, 상급자에게 알리지 않은 이유로는 ‘구설수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서(52.2%)’가 가장 높았고, ‘어떤 행동을 해도 소용이 없을 것 같아서(41.9%)’, ‘항상 일어나는 일이고 다들 가만히 있으니까(39.7%)’,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 것 같아서(22.8%)’ 순으로 응답했다.

20대 비정규직인 한 남성은 “체육 단체다 보니 상명하복의 관계가 어느 집단보다 심해 거부의사를 표현하면 미운털이 박힌다”며 “확실한 징계 양정 기준에 맞춰 처벌해야 한다”고 밝혔다.

내·외부 절차를 통해 직장 내 괴롭힘 등이 확인된 경우 신고자의 12.9%만 유급휴가나 등 조치를 받았고, 절반이 넘는 53.3%는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조사를 수행한 한국정책리서치 관계자는 “스포츠 단체·기관의 조직문화가 상명하복의 권위주의 문화가 뚜렷하다”며 “남성 위주의 문화가 강하고 성희롱·성폭력의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다소 있다”고 설명했다.

인권위는 이번 조사결과와 이날 개최되는 전문가 정책간담회 등을 통해 관계기관과 이해당사자의 의견을 수렴한 후 체육 관련 종사자들의 인권보호를 위한 권고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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