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길게 뻗은 몽촌토성 능선의 모습이다. 끊긴 능선 앞으로 인도가 나있다. 현재 능선 위는 주민들의 산책로로 이용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박선혜 기자] 한강 줄기의 하류.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올림픽 공원이 조성될 무렵 대규모 취락촌으로 추정되는 터가 발견됐다. 무늬 기와, 철제 무기류, 뼈갑옷 등 수도성과 군대가 주둔한 곳으로 추측할 수 있는 유물ㆍ유적도 발견됐다. 외적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요새로 보이는 몽촌토성의 흔적을 찾아가봤다.

몽촌토성은 성 안에 ‘곰말(또는 꿈말)’이라는 마을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이름이 생겨났다고 한다.

흔히 돌로 쌓아지는 성이 아니고 ‘토성(土城)’이라는 점도 특이할 법 한데, 그 규모는 작은 산봉우리 두세 개를 합친 것만큼 광활하다.

토성은 하늘에서 내려다본다면 마치 마름모꼴 6면이 모여 있는 모습이다. 성벽 둘레 길이는 2285m나 되고 내부 총 면적은 21만 6000㎡ 규모로 해발 30~40m 높이에 흙으로 쌓아 다듬은 나지막한 구릉들이 연결돼 있다.

▲ ‘뼈갑옷’은 몽촌토성이 군사적 요새였음을 입증해 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천지일보(뉴스천지)

현재 몽촌토성에는 올림픽 공원이 들어서 있다. 초기 한성시대에 요새였던 이곳에 체육시설이 세워져 주민들의 건강 지킴이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은 많이 깎이고 허물어져 중간 중간에 능선이 끊긴 것을 볼 수 있지만, 아직도 바깥 부분에 남아있는 구릉은 30m를 훌쩍 넘는다.

토성의 서벽 중간지점에서는 비밀통로인 암문(暗門)이 1개소 발견됐다. 또한 북문 동쪽에는 남북으로 길게 뻗은 외성(外城)이 본성에 붙어 있는데 이를 이용해 철저히 적군의 출입을 막았던 것으로 보인다.

토성 벽은 자연적인 구릉을 이용해 축조됐다. 경사가 완만한 지점은 흙을 깎아 면이 급하게 만들었으며, 낮은 지점은 점토를 판축해 성벽을 높게 만들었다. 이때 축조에 쓰인 ‘판축공법’은 입자가 곱고 점성이 강한 점토를 5~10㎝ 두께로 얇게 펴서 다진 것이다. 한편 토성 서북쪽 일부에서는 판축한 벽에 목책을 설치해 성벽을 보강한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성의 서북쪽, 동북쪽 일대에는 인근 성내천과 연결되는 해자(垓字)를 만들어 외부로부터 접근이 어렵도록 만들었다. 이는 몽촌토성이 군사적 방어 시설인 동시에 한 나라의 도읍지였음을 입증해 주는 좋은 증거다.

몽촌토성이 보여준 규모와 주변 환경ㆍ역사들은 초기 한성백제의 모습을 그대로 그려냈다. 이렇게 광활한 규모의 요새를 품었던 백제는 고구려 장수왕의 남진정책에 밀려 475년 수도 한성을 잃고 만다. 이후 개로왕마저 죽게돼 웅진으로 도읍을 옮기게 됐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