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떠나볼까] “한글, 아주 반듯하게 담았다”… 시월에 찾은 이촌 ‘국립한글박물관’
[잠시 떠나볼까] “한글, 아주 반듯하게 담았다”… 시월에 찾은 이촌 ‘국립한글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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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체험학습에 나온 어린이집 아이들이 박물관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천지일보 2019.10.24
한글 체험학습에 나온 어린이집 아이들이 박물관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천지일보 2019.10.24

개관 5주년, 다양한 기획전 등 마련

한글, 창제부터 전파까지 험난한 길

한글을 입은 다양한 작품도 전시 중

국민 뽑은 한글을 빛낸 사람 소개도

한글 수난시대, ‘말모이’ 관심 높여놔

[천지일보=김성완 기자] “우리글에 ‘한글’이라는 명칭을 만들고 한글 보급과 대중화에 힘쓰신 국어학자는?” “서재필” “땡” “주시경” “딩동댕”

가까이서 보니 어린 학생들과 선생님이 야외 수업을 하고 있었다. 건물 계단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아이들이 선생님의 질문에 작은 바위손을 들며 “저요” “저요”라고 질문 경쟁을 한다. 한 학생을 지목하자 나머지 아이들은 실망하는 기색이 보이다가도 금세 웃음꽃이 피었다.

어디에서의 풍경일까? 바로 동작구 이촌동에 위치한 ‘국립한글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맑고 높은 하늘에 청량한 바람이 부는 10월, 선생님과 학생 사이에 오가는 주고받음을 보고 있자니 보는 이의 입가에도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국립한글박물관’은 한글과 한글문화 가치의 보존, 확산, 재창조를 위해 2014년 10월 9일 한글날 개관했다. 올해는 개관 5주년을 맞아 다양한 기획전과 문화행사를 마련하고 있어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박물관은 아이들 학습 장소로도, 어른이 함께 찾기에도 좋은 곳이다. 뿐만 아니라 10월은 ‘한글의 달’인 만큼, 늘 우리 곁에 있지만 소중함을 잊은 채 살아가는 한글의 의미를 되새기는 장소로도 제격이다.

지하철 4호선을 이용하면 지하철에서 박물관으로 바로 진입할 수 있는 입구가 있다.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해 출구로 나오면 정면에 국립중앙박물관, 오른편엔 ‘한글박물관’이 위치해 있다. 건물은 규모도 상당했고 또한 독특한 구조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국립한글박물관 전경. ⓒ천지일보 2019.10.24
국립한글박물관 전경. ⓒ천지일보 2019.10.24

궁금해서 자료집을 보니, 건물은 한글 모음의 제자 원리인 하늘·땅·사람을 형상화하고 한글의 합자 원리를 시각화하는 등 한국 전통 가옥의 처마와 단청의 멋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가을이 물씬 느껴지는 박물관 입구를 지나 들어가니 넓은 잔디 마당이 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평일이었는데도 마당에는 아이들과 중고등학생들 뛰노는 소리로 가득했다. 무리를 지어 걸어가는 어린이집 아이들, 체험학습 나온 중고생, 연인들로 북적거렸고 심지어 외국인들까지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잠시 머물렀던 눈길을 돌려 전시관을 향해 걸었다. 전시 공간은 상설관과 기획관으로 구성됐는데 2층과 3층으로 분리돼 있다.

2층 상설 전시관. ⓒ천지일보 2019.10.24
2층 상설 전시관. ⓒ천지일보 2019.10.24

◆한글이 걸어온 길을 아시나요

1443년(세종 25), 한글이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낸다. 한글은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으로 창제됐으며, 3년 뒤인 1446년에 그 문자를 해설한 훈민정음 해례본이 나왔다. 28개의 자모로 이뤄졌으며 한 음절을 초성, 중성, 종성으로 구분한 최초의 문자다. 30개를 넘지 않는 자모음만으로, 수많은 음절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안내 책자의 설명이다.

2층 전시관 정면, 훈민정음 서문을 기록한 조형물이 관람객들을 맞이했다.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자와로 서로 사맛디 아니할쎄…’ 고등학교 시절 공부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한글에 대한 정인지의 글도 인상 깊었다. “이 스물여덟 글자를 가지고 전환하는 일에 제한이 없어 간략하면서도 요령이 있고 자세하면서도 통하게 되었다. 그런 까닭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아침나절이 되기 전에 이를 깨치고 어리석은 이라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다.”

조형물 뒤에는 과학적으로 만들어진 한글 자모의 원리가 영상으로 재현되고 있었다.

한글 자모의 원리를 영상으로 재현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10.24
한글 자모의 원리를 영상으로 재현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10.24

그렇다면 한글이 없던 시대에는 어땠을까?

당시에는 이두·향찰·구결 등 한자의 음이나 뜻을 활용해 우리말을 쓰고 읽었는데, 이에 대해서도 예시와 함께 자세하게 설명돼 있었다.

“한글이 없었다면 어려운 한자를 쓰고 있었을 거야. 공부는 배로 힘들었겠지?” “웅. 맞아.”

전시물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꼼꼼하게 살펴보는 두 모자의 모습이 눈에 띈다.

정인지의 말처럼,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한글! 그렇지만 이 한글은 창제부터 전파까지 정말 험난한 길을 지나왔고 또한 금방 실생활에 적용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주로 왕실 주도로 쓰였는데 용비어천가 등이 대표적이다. 아울러 법화경, 금강경 등 불교 경전이나 논어, 맹자, 대학 등 유교 경전을 번역하는 데 많이 쓰였다.

조선 후기 들어서야 한글은 점점 사람들 생활 속에 자리잡게 되는데, 이런 상황을 잘 보여주는 것이 당시 오고갔던 한글 편지들이다. 흔히 ‘언간’으로 불렸는데, 위로는 임금부터 아래로는 평범한 백성에 이르기까지 조선 시대의 다양한 사회상을 담고 있다. 정조가 4살 무렵에 큰외숙모 여흥 민씨에게 보낸 한글 편지도 전시됐는데 서툰 글씨가 웃음짓게 했다.

한글 전파의 일등공신은 단연 ‘딱지본 소설’이었다. 딱지본 소설은 근대에 들어온 활판 인쇄기로 찍어낸 국문 소설류를 말한다. 값이 싸서 ‘육전 소설’이라고도 했는데, 대체로 일반 책보다 작고 표지가 화려해 ‘딱지본’이라고 불렀다. 딱지본 소설 중에서도 높은 인기를 끌었던 춘향전은 100여 번 가깝게 간행이 됐다고 한다.

주시경 선생의 ‘국어문법’을 비롯해 조선어학회의 ‘조선말 큰 사전’ 편찬 등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한글을 지키기 위한 우리 조상들의 노력도 엿볼 수 있다. 나아가 우리나라 최초의 국어사전인 ‘말모이’ 원고를 비롯해 오늘날 디지털 환경 속에서의 다양한 한글의 쓰임새까지 한눈에 접할 수 있다.

상설전시실 한쪽에선 한글 자판 50주년을 맞아 ‘한글 타자기 전성시대’가 마련됐는데, 1914년부터 1980년대까지 타자기의 역사를 통해 디지털 시대로 이끈 타자기의 열풍을 한눈에 볼 수 있다.

3층 기획 전시관. ⓒ천지일보 2019.10.24
3층 기획 전시관. ⓒ천지일보 2019.10.24

◆훈민정음, ‘디자인’을 입다

“이게 뭐지? 생각보다 예쁜데.”

한글을 두른 옷을 바라본 여성 관람객이 꽤 의외라는 표정으로 한편으로는 ‘만족스럽다’는 말을 내뱉었다. 디자인을 전공하는 학생인 듯도 했다.

3층 전시관에는 다양한 작가들이 한글이라는 글자의 형태를 주제로 삼은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한글의 모아쓰기 구조를 서로 다른 모양과 색상으로 시각화한 ‘모아쓰기’,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새긴 마루를 관객이 함께 걸을 수 있는 체험형 작품 ‘한글마루’, 훈민정음 28자의 형태를 기본적인 구조로 삼아 의자, 탁자, 옷걸이 등의 가구로 만든 ‘자음과 모음의 거실’ 등 실험적인 작품들이 눈길을 끌었다.

낯선 모양의 한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발견하는 한글의 아름다움이 눈을 즐겁게 만들었다. 관람객들은 한글의 변화 시도와 확장에 긍정적인 반응들을 내놓기도 했다.

다만 전체적으로 아이들 대상으로 하기보단 ‘예술전시회’의 성격이 강해서일까?

학예연구사의 설명을 듣는 학생들은 산만했다. 자꾸 딴청을 부리는 통에 학예사의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아이들 시선을 마주쳐 가며 하나라도 설명해내려는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했지만, 한글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3층 왼쪽 기획전시관. ⓒ천지일보 2019.10.24
3층 왼쪽 기획전시관. ⓒ천지일보 2019.10.24

◆한글의 큰 스승 또 누가 있을까?

“Do you know who he is?(누구인지 아느냐)” “Yes(예), 윤동주.” “How…(어떻게)” “세종학당에서 배웠다.”

한 외국인이 윤동주 시인을 보고 있길래 ‘윤동주를 알까’라는 생각에 말을 걸어봤다. 윤동주를 알아서 놀랐고 한국말을 잘해서 머쓱해졌다. 한글의 유래와 지나온 과정 등을 알고 싶어서 찾았단다.

한글의 현재가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땀이 함께 했을까?

3층 왼편 전시관에선 한글 발전에 이바지한 사람들 즉, ‘한글의 큰 스승’ 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

한글을 널리 퍼뜨린 개척자인 주시경, 한글로 섬세한 감정을 담은 청년 시인 윤동주 등 일제 강점기 우리말과 글로 나라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 인물들과 한글을 널리 퍼뜨리는 데 큰 역할을 한 한글소설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 한글로 외국어를 가르친 역관 최세진, 그리고 다양한 분야에서 한글 쓰임새 확장을 위해 노력했던 한글 점자를 만든 박두성, 타자기로 한글 사랑을 실천했던 공병우 등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전시관 여기저저기를 둘러보다보니 꽤나 시간이 흘렀다. 학예사의 설명이 있어서 그나마 행운이었다. 일일이 살핀다면 하루라도 부족하겠다.

한글 수난시대다. 우리 한글이 외래어에 밀리고 신조어에 몸살을 앓고 있다. 한글 사용을 장려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으나 뾰족한 수가 없다. 다만 올해 초 ‘말모이’란 영화 개봉 이후 한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 다행일 뿐이다.

전시관 말미에 쓰인 글이 눈에 아른거린다. ‘앞으로 한글을 빛낼 스승. 바로 당신입니다.’

한글의 스승 기획특별전. ⓒ천지일보 2019.10.24
한글의 스승 기획특별전. ⓒ천지일보 2019.10.24

한편 국립한글박물관의 주요 전시관은 크게 전시 공간과 한글 놀이터와 한글 배움터의 체험 공간으로 이뤄졌다. 2층의 상설전시실은 ‘한글이 걸어온 길’이라는 주제로 1443년 한글이 창제된 때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를 관련 유물과 영상, 조형물을 다뤘다.

3층의 기획전시실에서는 ‘한글디자인:형태의 전환’이라는 주제로 ‘제3회 한글실험프로젝트’ 전시회와 국민의 참여로 직접 뽑은 한글을 빛낸 인물과 숨은 주역들을 소개하는 ‘한글의 큰 스승’ 기획특별전을 마련했다.

같은 층의 한글 놀이터는 6세부터 9세까지의 아이들을 위한 체험 공간으로, 한글의 원리, 사용을 놀이를 통해 체득할 수 있도록 했다. 또 한글 배움터는 한글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과 다문화 주민을 위한 공간으로 한글 자음과 모음의 종류와 구조, 합자 방법을 발음과 살펴보고 체험해 한글을 쉽게 배울 수 있도록 꾸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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