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살 현장에 일본 자경단들이 조사하고 있는데 우측에 한 명이 시신 위에 소변을 보고 있는 만행 장면이다. (제공: 정성길 사진연구가) ⓒ천지일보 2019.9.4
학살 현장에 일본 자경단들이 조사하고 있는데 우측에 한 명이 시신 위에 소변을 보고 있는 만행 장면이다. (제공: 정성길 사진연구가) ⓒ천지일보 2019.9.4

 

관동대지진 사건 96주기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본지가 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사건 96주기를 맞아 관련 미공개 사진을 단독으로 추가 공개한다.

지난달 21일 일본 고등형사가 죽은 여성 시신의 음부를 대나무 막대기로 찔러보는 만행 사진에 이어 이번 사진에서는 학살된 시신에 자경단 한 명이 소변을 보는 만행사진이 포함돼 있다. 지진으로 희생된 자국민 시신이라면 이 같은 행동을 하지 못하며, 죄책감 없이 이 같은 행동이 가능한 것은 결국 학살한 시신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방증하는 사진인 셈이다.

2000년대 초반 일본 고등학교 국정교과서를 확인한 결과에 따르면 교과서에는 한국인을 6천명 살해했고, 중국인은 200명 살해했다고 기술돼 있다. 곧 대부분 학살된 시신이 우리 선조들이란 얘기다.

일본 고등형사가 학살로 죽은 여성 시신의 음부를 대나무 막대기로 찔러보고 있는 모습이다. 지진과는 상관없는 해안가 뚝길에서 학살과 만행이 있었음을 입증하는 사진이다. 지진 속에서도 그들의 만행이 드러났고, 여성 시신에 다시 악랄한 행위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 성추행으로 단죄를 받아야 할 행동이다. (제공: 정성길 사진연구가) ⓒ천지일보 2019.8.21
일본 고등형사가 학살로 죽은 여성 시신의 음부를 대나무 막대기로 찔러보고 있는 모습이다. 지진과는 상관없는 해안가 뚝길에서 학살과 만행이 있었음을 입증하는 사진이다. 지진 속에서도 그들의 만행이 드러났고, 여성 시신에 다시 악랄한 행위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 성추행으로 단죄를 받아야 할 행동이다. (제공: 정성길 사진연구가) ⓒ천지일보 2019.8.21

관동대지진 사건은 다음과 같다. 1923년 9월 1일 일본 관동지역은 규모 7.9의 대지진으로 인해 건물이 무너지고 화재가 발생하는 등 대부분 폐허가 될 정도로 피해가 심각했다. 당시 이 지진은 일본의 경제가 좋지 않은 공황상태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민심의 추락은 상당했다. 이에 일본 정부는 곧바로 계엄사령부를 설치하고 지진으로 인한 경제파탄으로 울분이 터진 민심을 달래기 위해 희생양을 조선인으로 돌렸다.

일본 계엄사령부는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킨다’ ‘조선인이 방화했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넣었다’ 등으로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계엄사령부는 언론에 거짓으로 흘려 일본 민심을 자극시키게 했고, 무전과 전단, 포스터 등을 이용해 유언비어를 유포시킴으로써 관동 일대 조선인들이 숨을 곳이 없도록 했고, 형무소에 수감 중인 죄수들까지 다 내보내 자경단을 구성하도록 해 대학살을 자행하도록 부추겼다.

자경단의 마구잡이 조선인 사냥에 중국인이나 일본인이 일부 죽기도 했으나 조선인의 피해는 엄청났다. 이들에 의해 학살된 조선인은 독립신문에서는 6천여명으로 발표됐으나 독일 문헌에서는 2만 3000명 이상으로 기록됐다. 곧 일본의 자작극으로 인해 우리 선조들이 무참히 학살된 사건이다.

함께 공개한 사진에는 한국 여성들이 관동대지진이 있기 전 요코하마에서 외국 상선에 석탄을 머리로 운반하고 있는 힘든 노동의 모습이다. 머리에 물건을 이고 나르는 것은 우리나라의 풍습이다. 일본인을 대신해 고된 작업을 하며 일본의 경제활동을 도운 우리나라 여인들이었지만 결국 지진으로 이유 없이 모두 학살되고 말았다.

한국 여성들이 외국 상선에 석탄을 머리에 이고 운반하고 있는 힘든 노동의 모습이다. 그러나 지진이 난 후 이유 없이 학살됐다. (제공: 정성길 사진연구가) ⓒ천지일보 2019.9.4
한국 여성들이 외국 상선에 석탄을 머리에 이고 운반하고 있는 힘든 노동의 모습이다. 그러나 지진이 난 후 이유 없이 학살됐다. (제공: 정성길 사진연구가) ⓒ천지일보 2019.9.4
한국 여성들이 외국 상선에 석탄을 머리에 이고 운반하고 있는 힘든 노동의 모습이다. 그러나 지진이 난 후 이유 없이 학살됐다. (제공: 정성길 사진연구가) ⓒ천지일보 2019.9.4
한국 여성들이 외국 상선에 석탄을 머리에 이고 운반하고 있는 힘든 노동의 모습이다. 그러나 지진이 난 후 이유 없이 학살됐다. (제공: 정성길 사진연구가) ⓒ천지일보 2019.9.4

또 이번 공개된 사진 중에는 경시청 직원들이 우물을 검사하면서 소독을 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깃발에는 경시청이라 적혀 있다. 한국인들이 우물에 독약을 넣었다는 괴소문 때문에 직접 각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우물을 검사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우물에 독을 탄 흔적은 나타나지 않았고, 일본이 민심을 이용해 우리 선조들을 희생양으로 명백히 삼은 학살사건이다.

경시청이 우물까지 검사해가며 단서를 찾고자 했으나 결국 찾을 수 없었던 이 사건은 당시 일부 의식 있는 일본 언론들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잘못된 유언비어에 의해 많은 조선인이 무고하게 학살됐다고 기사와 사설 등으로 내보냈다. 이에 일본 교과서에도 명백히 일본인이 조선인을 학살했다는 내용을 기술해왔다.

그러나 시간이 점차 흐르면서 일본은 학살이라는 표현을 ‘살해’라고 수정한 데 이어 ‘희생’이라고 변경하더니 급기야 2013년 초에는 교과서에서 내용을 삭제하는 등 자신의 선조들이 저지른 행위에 대해 미화 혹은 왜곡시켜 왔다. 자신의 선조들이 당시 많은 조선인을 죽였다는 사실을 기록으로 남기고 그간 교육해 왔음에도 이를 무시하면서까지 왜곡하려는 것이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약을 넣었다는 괴소문 때문에 경시청 직원들이 우물을 검사하며 소독하고 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우물에 독을 탄 흔적은 나타나지 않았다. (제공: 정성길 사진연구가) ⓒ천지일보 2019.9.4
조선인이 우물에 독약을 넣었다는 괴소문 때문에 경시청 직원들이 우물을 검사하며 소독하고 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우물에 독을 탄 흔적은 나타나지 않았다. (제공: 정성길 사진연구가) ⓒ천지일보 2019.9.4

일본은 계속해서 학살에 대해 부인해오고 있으나, 본지는 계속해서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사진들을 모아온 정성길 사진연구가를 통해 일본의 학살 만행을 알려왔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우리나라다. 부끄러운 현실이지만 우리는 국사 교과서에조차 지금껏 관동대지진에 대한 언급이 거의 안 되고 있다. 정부차원의 규명작업 역시 없다. 지난 2014년 19대 국회 여야 의원 103명이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위원회’를 설치하는 특별법안을 발의했으나 통과되지 못하고 폐기된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유엔 국제법에서는 중국의 난징대학살과 나치에 의한 유태인 학살을 제노사이드(genocide, 집단학살) 범죄로 적용했다. 관동대지진 대학살 사건은 제노사이드로 인정돼야 할 중대한 사건이 분명함에도 아직 정부 차원의 움직임이 없다.

정성길 사진연구가는 “위안부와 강제징용문제는 수도 없이 얘기하고 있으나, 사실상 그 2배 버금가는 관동대지진 대학살 사건을 잊고만 있다. 확실한 사진 입증자료가 있음에도 왜 정부가 나서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답답해했다. 이어 “현재 일본이 수출규제로 경제보복을 하고 있는 시점에서 문재인 정부는 더 이상 일본 눈치를 보지 말고 적극 규명에 나서 100주기를 맞기 전에 우리 선조들의 한을 풀어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편 관동대지진 사건과 관련한 수백 장의 사진을 모은 정 연구가는 이 사건의 실체를 낱낱이 밝히기 위해 수년간의 작업을 통해 500여장의 사진을 책으로 묶은 ‘사진으로 본 관동대지진의 실체’를 최근 발간했다. 이 책은 온라인(옥션)에서만 판매되고 있다. 또 그는 조만간 대대적으로 이를 알리기 위한 전국순회 전시에 나설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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