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메이지 신정부를 수립한 제122대 일왕인 명치(앞줄 오른쪽 2번째)를 중심으로 각국 수상급의 모습. 다같이 모여 기념촬영을 한 것처럼 보이나 일본이 당시 외교력을 과시하기 위해 조작한 사진이다. 러시아 마지막 황제인 니콜라이 2세(뒷줄 왼쪽 2번째)와 초대 주한미국 공사 루셔트 푸트(맨 왼쪽)의 모습이 보인다. 고종황제(뒷줄 맨 오른쪽)는 용포가 아닌 평상복 차림을 넣어 신분을 격하시킨 것에서 일본의 민족근성을 엿볼 수 있다. (제공: 정성길 기록사진연구가) ⓒ천지일보 2021.9.1
일본의 메이지 신정부를 수립한 제122대 일왕인 명치(앞줄 오른쪽 2번째)를 중심으로 각국 수상급의 모습. 다같이 모여 기념촬영을 한 것처럼 보이나 일본이 당시 외교력을 과시하기 위해 조작한 사진이다. 러시아 마지막 황제인 니콜라이 2세(뒷줄 왼쪽 2번째)와 초대 주한미국 공사 루셔트 푸트(맨 왼쪽)의 모습이 보인다. 고종황제(뒷줄 맨 오른쪽)는 용포가 아닌 평상복 차림을 넣어 신분을 격하시킨 것에서 일본의 민족근성을 엿볼 수 있다. (제공: 정성길 기록사진연구가) ⓒ천지일보 2021.9.1

외교 능력 과시 위해 ‘사진합성’

각국 수상급 천왕 주변으로 모아

고종황제는 ‘평상복’ 신분 격하

일본의 왜곡 근성 알 수 있어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일본의 메이지 신정부를 수립한 제122대 일왕인 명치(재위 1867~1912)가 당시 고종황제를 포함해 한반도에서의 각국 주요 인사들과 함께 찍은 것처럼 보이는 희귀사진을 본지가 정성길 기록사진연구가로부터 입수해 단독으로 공개한다.

사진에는 허리에 칼을 차고 흑백이지만 마치 휘황찬란한 것처럼 보이는 훈장이 달린 정복을 입은 명치를 중심으로 여러 주요 인사들이 마치 기념사진을 찍은 것처럼 자세를 잡고 있다. 초대 주한미국 공사인 루셔트 푸트(1826~1913)도 보이며,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1868~1918)도 보인다.

또 러시아 제국의 대공(大公) 세르게이 알렉산드로비치(1857~1905)와 그의 배우자이자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녀인 옐리자베타 표도로브나(1864~1918)도 사진 속에 있다. 그 외에 중국 왕족인 것으로 보이는 인물과 서양인 3명 등 총 10명이 마치 정상회담으로 모인 것처럼, 또 일왕을 떠받치고 있는 분위기처럼 기념사진을 찍은 모습이다.

당시 한반도 패권을 둘러싸고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이 벌어지고 결국 일본이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삼는 등 급박하게 돌아가는 속에서 관련 국가들의 수상급이 한자리에 모였다면 그야말로 획기적인 사건이다. 그러나 이 같은 기록은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사진은 조작된 사진이기 때문이다.

고종황제나 일본 일왕만 해도 서로 만나거나 상대국을 방문했다는 기록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게 아니더라도 사진을 면밀히 살펴보면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사진 속 인물들의 시선이 모두 제각각이다. 각자 자신의 포즈대로 찍었다고 하기엔 너무 엉성하다.

정면 카메라를 응시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각국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인물들이 약속이나 한 듯 이렇게 찍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면 엄청난 역사적인 사건인데, 당시 그런 기록은 전무하고 세상은 조용했다. 그럼 이들이 비밀리에 한자리에 모였을까. 이 역시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사진에서 눈여겨 볼 것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고종황제의 복장이다. 용포가 아닌 평상복 차림의 옷을 입고 있다. 각국 정상급들이 모인 자리에 고종황제가 혼자서만 예의를 무시하고 평상복을 입고 나타난 게 가당키나 한 일일까. 결국 답은 하나다. 일본이 의도적으로 조작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명백한 사진인 것이다. 일본이 외교적으로 자신들의 품위를 나타내면서도 고종황제는 평상복을 입은 사진을 넣으면서 신분을 격하시켜 장난을 친 것이다.

여기에서도 일본의 민족성이 여실히 나타난다. 일본은 대내외적으로 일왕의 외교력을 과시하려고 이 같은 사진을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데, 아무리 식민지 국가여도 한 나라의 임금인데 친밀감이라도 있었으면 용포라도 입은 것으로 넣어야지, 혼자만 평상복을 입고 단체사진 찍은 것처럼 한 것은 우리나라를 천하게 업신여겼다는 얘기다.

120년 전인 1900년대 초에도 흩어져 있는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사진편집 기술을 갖고 있었다는 게 혀를 내두를 정도로 놀랍기도 하다. 그럼에도 당시 신기원과 같은 이 기술을 일본이 악용했단 점에서는 그들의 민족성은 늘 조작과 뻔뻔함이 예부터 있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해준다.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역사적인 근거자료가 나옴에도 일본은 계속해서 자신들의 땅이라고 우기고 있다. 일본은 수십년 전부터 광개토대왕릉비문을 조작하고 훼손함으로써 인위적으로 왜곡해 ‘왜가 신라를 궤멸시켰다(倭滿倭潰)’며 임나일본부설을 끈질기게 주장해왔는데, 이는 우리 학계가 비문 내용을 연구 끝에 ‘신라에 침입한 왜구를 크게 궤멸시켰다(倭滿倭潰)’는 내용으로 밝혀내 종지부를 찍었다. 그럼에도 일본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1923년 9월 1일 일본 관동지방에서 발생한 대지진(규모 7.9 )때는 흉흉해진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당시 관동지방에 머물고 있던 우리 조선인을 희생양 삼아 무차별 학살을 저질렀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넣었다’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키려 한다’는 유언비어를 퍼트려 그 말을 믿은 자경단들이 조선인을 닥치는 대로 학살했다. 살해된 숫자가 독립신문에서는 6천여명으로 발표됐으나 독일 문헌에서는 2만 3000명 이상으로 기록됐다. 일본 고등학교 국정교과서에서도 한국인을 6천명 살해했다고 기술됐다.

이 사건은 당시 일부 의식 있는 일본 언론들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잘못된 유언비어에 의해 많은 조선인이 무고하게 학살됐다고 기사와 사설 등으로 내보내면서 진실이 밝혀지자 일본 교과서에도 명백히 일본인이 조선인을 학살했다는 내용으로 기술돼왔다. 그러나 시간이 점차 흐르면서 일본은 학살이라는 표현을 ‘살해’라고 수정한 데 이어 ‘희생’이라고 변경하더니 급기야 2013년 초에는 교과서에서 내용을 삭제하는 등 점점 미화 혹은 왜곡시키고 있다. 그리고 본지가 수차례 관동대지진 학살 증거사진을 공개하고 있지만 묵묵부답이다.

일본 고등형사가 학살로 죽은 여성 시신의 음부를 대나무 막대기로 찔러보고 있는 모습이다. 지진과는 상관없는 해안가 뚝길에서 학살과 만행이 있었음을 입증하는 사진이다. 지진 속에서도 그들의 만행이 드러났고, 여성 시신에 다시 악랄한 행위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 성추행으로 단죄를 받아야 할 행동이다. (제공: 정성길 사진연구가) ⓒ천지일보 2019.8.21

일본 고등형사가 학살로 죽은 여성 시신의 음부를 대나무 막대기로 찔러보고 있는 모습이다. 관동대지진과는 상관없는 해안가 뚝길에서 학살과 만행이 있었음을 입증하는 사진이다. 지진 속에서도 그들의 만행이 드러났고, 여성 시신에 다시 악랄한 행위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 성추행으로 단죄를 받아야 할 행동이다. (제공: 정성길 기록사진연구가) ⓒ천지일보 2021.9.1

 

학살 현장에 일본 자경단들이 조사하고 있는데 우측에 한 명이 시신 위에 소변을 보고 있는 만행 장면이다. (제공: 정성길 사진연구가) ⓒ천지일보 2019.9.4
관동대지진 학살 현장에 일본 자경단들이 조사하고 있는데 우측에 한 명이 시신 위에 소변을 보고 있는 만행 장면이다. (제공: 정성길 기록사진연구가) ⓒ천지일보 2021.9.1

일본은 또 대동아전쟁을 앞두고 우리나라 백두산에 올라 전쟁에서 이기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침탈야욕을 숨기지 않았다.

또한 1940년대 수많은 조선인들이 강제징용당한 일명 ‘군함도(軍艦島)’라고 불리는 ‘하시마’ 섬에 대해서도 일본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앞두고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알릴 수 있도록 유네스코 측의 권고를 받았고, 일본도 이를 이행하겠다고 약속했으나 등재 이후 그 약속은 언제 했냐는듯 지키지 않고 있다. 위안부 피해할머니에 대해서도 부인하며 사과와 반성은 여전히 하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일본의 민족성은 이번 조작된 사진을 통해서도 전통적으로 그대로 대물림 됐음을 알 수 있게 된다.

일왕 명치 아들인 요시히토 일왕. 말년에 5년간 정신질환 환자로 여생을 보내다가 47세로 사망. 정신이 온전치 못한 상태에서 복장을 갖춰 입혀 놓고 사진을 찍게 한 모습이다. (제공: 정성길 기록사진연구가) ⓒ천지일보 2021.9.1
일왕 명치 아들인 요시히토 일왕. 말년에 5년간 정신질환 환자로 여생을 보내다가 47세로 사망. 정신이 온전치 못한 상태에서 복장을 갖춰 입혀 놓고 사진을 찍게 한 모습이다. (제공: 정성길 기록사진연구가) ⓒ천지일보 2021.9.1
고종황제가 앳된 모습의 순종과 용포를 입고 찍은 사진 (제공: 정성길 기록사진연구가) ⓒ천지일보 2021.9.1
고종황제가 앳된 모습의 순종과 용포를 입고 찍은 사진 (제공: 정성길 기록사진연구가) ⓒ천지일보 2021.9.1

다른 사진에서는 고종황제가 앳된 모습의 순종과 함께 용포를 입고 나란히 찍은 모습이다. 또다른 사진에서는 일왕 명치의 아들인 요시히토 일왕의 독사진이다. 요시히토는 말년에 5년간 정신질환을 앓다 47세에 사망했다. 이 사진은 요시히토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당시 찍은 사진으로, 앉은 모습과 칼을 들고 있는 모습이 부자연스러우며 눈에 초점이 흐려져 있다.

정성길 기록사진연구가는 “말년에 제구실을 못하는 환자였던 요시히토는 저렇게 정상적으로 갖춰 입히고 사진을 찍었으면서 우리 고종황제는 용포입고 찍은 사진이 있었음에도 평상복 사진을 넣는 만행을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대에 있는 기술을 과거에 시도했다는 점에 놀랍다”면서도 “100년 훨씬 전부터 사기를 치기 위한 시도를 볼 때 일본의 근성을 알 수 있는 사진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자신들의 자존심 세우는 것을 사진에 다 나타내는 동시에 우리 민족은 하찮게 대했다. 이번 본지가 공개한 사진은 무심코 봤다간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사진이다. 이 같은 사진이 돌아다닌다면 역사의 혼동을 주기 때문에 이를 지금이라도 바로잡고, 또 일본이 바른 역사의 길을 가길 바라는 차원에서 정성길 기록사진연구가를 통해 공개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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